“우려가 현실로” 재계, 노심초사
“우려가 현실로” 재계, 노심초사
  • 정하성 
  • 입력 2004-04-28 09:00
  • 승인 2004.04.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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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의 국회 입성으로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재계는 이번 민노당의 원내진출에 따라 노사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재계에서는 근로시간 단축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과 관련, 노사간 극한 대립을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들은 이번 17대 국회에서 ‘지배구조 문제’, ‘경영권 세습 문제’등이 도마위에 오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오랜 숙원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노동계 인사의 말이다. 지난 4월 15일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민노당은 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 등 모두 10석을 확보해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에 이어 당당히 제3당의 위치에 올라섰다.

민주노동당은 “보수정당, 기득권 세력 일색의 국회에 민주노동당이 진출한 것은 50년 한국정치사를 새로 쓰는 쾌거 중의 쾌거”라며 “못 배우고 가난하고, 힘없는 것이 더 이상 한이 되지 않는 사회를 향해 힘차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민주노총도 성명을 통해 “부패와 수구의 정치를 청산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이번 민노당의 원내진출은 노동자, 농민, 서민 등 모든 국민들이 만들어낸 승리”라고 말했다.이처럼 이번 총선결과에 대해 노동계가 크게 반색하는 반면,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는 우선, 민노당의 총선승리로 노동계가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한국노총을 기반으로 한 ‘녹색사민당’이 이번 총선에서 크게 참패한데 비해, 민주노총이 지원한 ‘민노당’은 크게 약진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과 민노당을 중심으로 노동계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런 변화에 맞춰 민주노총과의 대화를 재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불참에 따라 그간 재계는 한국노총과 노사관계 및 노동정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해왔다. 하지만 민노당의 약진으로 그동안 기피했던 민주노총과 실질적인 대화를 해야하는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재계 관계자는 “민주노총이 상대적으로 반 기업적 성향이 강하다”며 “현경제상황에서 민노당이나 민주노총과의 원만한 관계가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며 따라서 노사관계에 불안요소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계에서는 ‘반 기업 성향’의 민노당이 대거 원내 입성함에 따라 노사관계가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전경련이 총선 이전 205개 회원사를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노동계 국회진출에 대해 응답자의 40.8%가 ‘노사관계 입법이 노동계에 훨씬 유리하게 될 것’이라고 답변, 가장 많았다. 또 ‘정치투쟁이 더 심해질 것’이란 반응도 31.8%에 이르러 노사불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반면,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어 노사관계가 안정될 것’이라는 시각은 10.9%에 머물렀고, ‘현재와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견해가 21.9%로 나타났다.이와 함께 올해 노사관계 불안요인으로 ‘근로시간 단축 문제(84.4%)’와 ‘비정규직 문제(75.4%)’가 주요한 불안요인으로 지적되었으며, ‘임금인상 및 근로조건 개선 요구(49.7%)’ 등도 중점 현안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꼽았다.이와 같이 근로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노·사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적지않은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이번 전경련 조사대상 기업 중 자사의 노조가 ‘근로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연·월차 휴가 축소는 반대’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기업이 47%에 달했다.

그러나 조사된 기업의 58.5%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법대로 기존 연·월차휴가 등을 축소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따라서 향후 임·단협 과정에서 적지않은 난항이 있을 것임을 암시했다.이와 함께 ‘비정규직 문제’도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노당은 이번 국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민노당은 ‘비규정직 차별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워, 이를 강력히 요구할 태세다.이에 반해 재계는 현시스템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번 전경련의 조사에서 기업들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겠다(61%)’는 답변이나, 아예 ‘외주를 늘리겠다(41.7%)’는 응답 등이 매우 높게 나타나,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요구하는 민노당 등과의 마찰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삼성과 LG, SK 등 주요 대기업들도 민노당의 3당 부상에 따른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으로서도 민노당의 원내 입성이 달갑지 않은 것은 사실. 그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 온 삼성의 경우 민노당의 ‘노조 설립’의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의 단병호 당선자 등은 이미 총선이전에 삼성의 무노조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도 공공연히 삼성 노조설립을 지원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특히 삼성은‘지배구조’와 ‘경영권 세습’등에 대해 시민단체와 노동계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왔다. 따라서 삼성측으로는 이번 국회에서 민노당 등에 의해 이 문제가 쟁점화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삼성 관계자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국회에 입성한 만큼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겠느냐”며 “과거에는 총선 결과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컸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민노당의 국회 진출이 기업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외에 현대·기아차그룹도 민노당의 움직임에 비상이 걸렸다. 자동차 노조들은 이미 ‘비정규 처우개선을 위해 임금협상과 연계, 산업 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측은 민노당의 국회 진출에 따라 이런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노조원의 자살 등으로 민노총의 집중공격을 받은 두산그룹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이외에 최근 지배구조 개선에 노력중인 LG와 SK도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또 대선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른 한화·롯데도 민노당의 존재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재계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민노당이 심하게 기업을 압박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민노당의 국회 진출로 노동계의 요구가 거세지는 만큼, 각 기업들이 노사관계를 원만히 끌어나가기 위해 당분간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하성  haha7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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