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보건법 24조' 위헌 여부 공개 변론
스스로 퇴원한 사람은 7.5%뿐
‘현대판 고려장’수단으로 악용돼
[일요서울 | 변지영기자]이번 주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 ‘날 보러와요’의 실제 주인공 박경애 씨가 헌법재판소에 제청한 ‘정신보건법’의 위헌법률심판 공개 변론이 14일 오후 2시 열렸다. 이 영화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보호자 2명의 동의만으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정신보건법의 악용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정신보건법에 대한 제청은 13번이나 있었지만 모두 각하된 바 있다. 이날 변론에서는 정신보건법이 정신질환자의 신체적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과 정신질환자의 적시 치료와 인권 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섰다.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에서 정신보건법 제24조 1항 등에 관한 위헌법률제청건의 공개 변론이 열렸다.
말만 하면 감금?
‘정신보건법’의 민낯
이번 쟁점 사항은 보호 의무자 동의와 전문의 진단만 있으면 강제 입원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정신보건법 제24조 1, 2항이다.
정신보건법 제24조는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 (보호의무자가 1인인 경우에는 1인의 동의로 한다)가 있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판단하에 정신질환자를 입원 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경애(60) 씨는 2013년 11월 자택에서 3명의 남성에게 강제로 정신병원에 끌려갔다. 손과 발은 포승줄로 묶인 상태였다. 정신을 차리자 간호사가 옷을 벗기고 종이기저귀를 채웠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공중전화로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듬해 법원에 ‘인신보호구제’를 청구했다. 한 평 남짓한 독방에 이유도 모른 채 입원된 그는 인격침해와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알고 보니 박 씨를 강제 감금한 사람은 그의 재산을 탐낸 4명의 자식이었다. 그중 2명은 박 씨가 입양해 기른 자식들로 밝혀져 세간은 충격에 휩싸였다. 일각에선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비판도 일었다. 구제 신청 하루 만에 자녀들은 박 씨를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그는 자녀들을 상대로 한 고소를 취하하고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지난해 박 씨는 대학병원에서 정신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강제입원은 정신질환자의 신체의 자유 및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신청을 받아들였다.
자기결정권 침해 vs 적시 치료 위해 필요
14일 공개 변론에서는 정신보건법 위헌을 주장하는 박 씨 측 변호인단과 합헌을 주장하는 보건복지부 측의 팽팽한 주장이 이어졌다.
박 씨는 “정신질환자가 아닌데도 보호자의 동의로 강제 입원됐다”며 정신보건법의 악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 씨 측 변호인단은 “정신질환자가 의사능력이 없다고 단정해 ‘자기결정권’을 배제하고 있다”며 “정신과 전문의에게 과도한 판단권이 주어져 입원치료의 필요성, 위험성 판단에 있어 자의적 진단이 이뤄질 수 있고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보호자에 의해 불법 감금되는 사례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복지부 측 대리인은 “정신질환자 방치를 막고 적시 치료와 인권 보호를 위한 규정”이라고 반박했다.
또 변호인단은 “이 조항이 정신질환자에게 강제적인 약물 투여와 격리로 심각한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다”며 “강제입원을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신병원 입원환자 4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30.2%의 가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응답했다. 욕설과 심리적 인격 훼손을 느꼈다는 대답도 16.3%에 달했다.
2012년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하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는 강제입원은 무려 75.9%였다. 강제입원자 상당수는 전화 면회를 할 수 있는 병원도 몇 군데 없을뿐더러 구제신청을 해도 다른 병원으로 강제입원 당하기 일쑤라고 입을 모았다.
치료 가장한
현대판 고려장 수단
자녀들의 동의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당한 박 씨는 “왜 여기 있는지도 몰랐다”고 전했다. 지난해 인권위 설문조사 결과, 강제 입원 시 ‘설명 없는 격리와 강박으로 인한 인권 침해’ 비율이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보건법 24조는 현대판 고려장을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다분했다.
이는 환자를 유치해 수익을 올리는 정신병원의 구조와도 맞물려 있다. 2012년 정신병원 입소자들의 의료보장은 63.6%였다. 정신병원은 의료급여 예산을 지급받는 방법으로 수익을 얻기 때문에 입원을 권장했다. 병원은 환자 1인당 매월 약 100~150만 원을 받는다. 강제입원은 몇 분의 대면 진단으로 결정됐다.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이하 정피모)는 “강제입원 환자들 중 다수가 의료급여를 받는 환자들로 치료비 상당 부분을 국가에서 받고 있다”면서 “입원하기만 하면 병원의 수익으로 연결돼 정신과 전문의도 입원 필요성에 대한 판단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성 판단할 제 3기관 필요해
양측의 주장을 끝으로 중점 사안에 대한 재판관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박한철 헌재소장은 “보호자 동의나 전문의 진단 남용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고 지적하자 복지부 측 대리인은 “법 제정 후 20년이 지나 정책을 재검토할 시기로 보인다”고 답했다.
사후구제 수단으로 강제입원을 예방하거나 처벌받은 사례가 있느냔 질문에 복지부 측 대리인은 처벌된 사례는 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용표 사회복지학 교수는 “현재 정신보건법은 병원과 보호의무자 간의 사적인 거래를 통해 인신구속을 가능하게 하는 치밀한 구조로 짜여 있어 정상인까지 강제입원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상한 제도”라며 “위헌 요소가 분명히 있는 세계에 부끄러운 수준의 악법이다”라고 말했다.
영국과 독일의 경우, 입원 심사에 사법권이 개입한다. 이탈리아의 경우 수용형 정신병원 자체를 없앤 상태다. 호주도 입원 치료를 지양하고 사회 복귀를 우선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가족이라 해도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 입원시킬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변론의 참고인으로 참석한 국가인권위원회 안석모 사무총장은 “부당 강제입원을 줄이고 인권침해 소지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정신보건법 제24조를 폐지하고, 강제입원 절차와 기준, 심사방법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며 “진단 기준을 명확히 하고, 사법부나 독립된 제 3기관에서 기준 심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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