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증, 일본 집권층에 근본 원인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일본 내 ‘혐한증’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9일 일본 온라인매체인 ‘로켓뉴스’24에는 일본맥도날드 광고 영상 속 점원의 태도에 불만을 나타내는 일본 네티즌들에 대한 기사가 게재되었다. 광고영상은 공손하게 인사하며 손님을 맞는 내용인데 이 인사가 문제가 됐다. 일본 네티즌들이 문제제기를 한 부분은 두 손을 앞으로 포개고 인사하는 ‘공수식 인사’가 일본이 아닌 한국식이라는 것. 대부분의 일본 네티즌들은 이 광고를 삭제하지 않을 경우 맥도날드 불매운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 내에서 최근 극도로 확산하고 있는 이른바 ‘혐한증’이 어느 수위까지 이르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국식 인사’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불과 몇 개월 전에도 일본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출연자가 공수식 인사를 가르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일부 시청자들이 “왜 한국식 인사법을 가르치느냐”고 지적, 논란이 일었었다.
일본 내 ‘혐한증’은 이처럼 극히 사소한 부분에서 비롯된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혐한증’을 드러내는 이들은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혐한감정’을 덧씌우는 경우가 많다. 단지 ‘한국’과 연관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혐오의 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다.
물론 ‘혐한감정’이 전체 일본국민들 사이에 만연한 현상이 아니라 우익사상을 갖고 있는 이들의 일부 의견이라는 게 지배적이지만 점차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한확산 일로에 선
‘혐한 기류’
지난 해 11월 외교부가 한 조사업체에 의뢰해 전 세계 14개국 성인남녀 5,6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일본의 ‘혐한’인식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국민의 59.7%가 한국에 대한 혐오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혐한증’은 한 사건이나 부분적인 현상에 국한되지 않고 일본 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방송과 인터넷은 물론, ‘재특회’를 중심으로 한 ‘혐한’집회와 단체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혐한증’은 재생산되고 있는 것.
최근 수년간 한국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내용의 책들도 무더기로 출판되고 있다. 지난 2009년 ‘한국인들의 반일망언에 논거를 갖고 반박하기 위한 입문서’라는 해괴한 논리로 나온 <반일망언 격퇴 매뉴얼>이 인기를 끌면서 이후 혐한 도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을 ‘성형공화국’으로 비하한 뒤 외모는 물론 문화와 역사까지 ‘성형’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거짓말과 가식의 나라 한국>(2012), 역대 한국정권의 일관적인 반일 자세를 검증했다는 <왜 반일한국에 미래는 없는가>(2013), 한국의 일방적인 국제로비활동으로 ‘위안부 문제’, ‘일본해 표기 문제’ 등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본인이라면 알아야 할 반일한국 100개의 거짓말>(2014) 등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출간돼 일본인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이러한 일본 내 ‘혐한’ 마케팅은 만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발행된 만화 <태권 더 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오무현’이라는 이름의 스모선수로 등장시켜 비하하기도 했다.
혐한 감정을 조장하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젊은층이 많이 이용하는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한국에 대해 나쁜 감정이 일 수 있는 출처불명의 혐한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소위 ‘넷우익’들의 작품으로 혐한 매체들의 왜곡수위가 심해지고 있다.
‘혐한증’의
근본적 해소 열쇠는?
사실 일본의 ‘혐한증’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반일감정 역시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왔던 감정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한일협정이 체결되고 국민의 정부에 이르러 일본문화가 본격 수입되면서 일본에 대한 반일감정은 크게 줄었다.
또 최근 몇 년간 한류세가 일본진출을 본격적으로 이루면서 ‘혐한증’도 많이 희석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급랭한 한일관계에 맞물려 일본 내 ‘혐한증’이 다시 증폭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군 위안부 합의 이후 한풀 꺾이면서 확산일로에 있던 ‘혐한’의 흐름도 자연적으로 줄어들 듯 보였지만 지난 3월 20일과 4월 8일, ‘혐한시위’에 항의하는 시민을 일본경찰이 폭행해 큰 물의를 빚는 등 ‘혐한증’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 이렇듯 ‘혐한’ 정서가 일본 내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확산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과거사를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젊은 세대가 일본사회에 대한 불만을 ‘혐한’의 방식으로 쏟아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혐한시위’를 사실상 방치하는 일본정부도 적지 않은 혐의가 있다고 말한다. ‘혐한시위’를 규제하라는 국제사회의 권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규제 마련에 여전히 소극적인 것.
더불어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해도 다시 사과를 요구할 것이라는 ‘사과 피로감’과 함께 한국이 일방적으로 중국 편을 들고 있다는 불신감도 ‘혐한증’을 키우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여기에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일본경제의 장기불황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경제대국을 자부해온 일본의 여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혐한증’의 근본적인 해소 열쇠는 일본사회 자체 내에 존재한다는 게 중론이다. 사실 ‘혐한증’은 아베 총리를 비롯한 현 일본 집권층과 직결되어 있다. 그들의 전쟁범죄 미화나 과거사 반성 외면 등이 일본 사회가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졌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내부적으로는 과거사 문제 해결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외적으로 동북아 질서 형성을 위한 평화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등 ‘투트랙’으로 한일관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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