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의류,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수입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이하 디올)’이 한국여성 비하 논란으로 지탄받고 있다. 자사 상품인 ‘레이디 디올’ 가방을 테마로 선보인 미술 작품 중 ‘한국여자’란 작품 때문이다. ‘소주방’, ‘룸비 무료’, ‘파티타운’ 등이 적힌 유흥주점 간판 앞에 디올 가방을 들고 서 있는 이의 모습을 ‘한국여자’로 지칭한 것은 한국 여성이 성(性)을 팔아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존재인 것처럼 비하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디올이 여성권위 신장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디올은 작품 전시를 중단했지만 한국여성 비하 논란은 잠재워지지 않는 분위기다.

동양인 소비자 ‘봉’으로 봤나…해명 ‘글쎄’
이 작품은 지난 2월 23일 개막한 디올의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Lady Dior As Seen By)’의 서울 전시를 통해 공개됐다. 이번 전시는 디올이 자사의 시그니처 상품인 ‘레이디 디올’ 가방을 테마로 한 다양한 미술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아티스트들에게 의뢰해 제작한 100여 점의 작품 중 일부를 선보이는 순회전으로 진행됐다. 서울 전시에서는 이완과 최정화, 황란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추가됐다.
문제는 마치 성을 팔아 명품 핸드백을 구입하는 여성처럼 보이는 모습과 그 작품의 제목이 ‘한국여자’라는 점이다.
작품 속 여자는 어깨가 드러나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디올의 ‘레이디 디올’ 가방을 들고 서 있다. 이 여성 뒤에는 ‘소주방’, ‘룸비 무료’, ‘파티타운’ 등의 글귀가 적힌 유흥가 풍경이 배경으로 합성돼 있다. 이 사진은 대중들에게 ‘한국여성=명품을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졌고, 여성혐오 코드가 들어간 작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이완 작가는 디올과의 인터뷰에서 “사진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합성 기법을 사용했다”며 “크리스찬 디올의 제품은 효율성 위주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는 다른데 이런 것들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 한국에서 어떤 의미로 소비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유흥가와 명품백을 연결시켜 만든 작품을 좋은 의미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혐오 코드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다수다. 2000년경부터 시작된 ‘된장녀’, ‘김치녀’ 등의 단어를 통한 한국 여성이 사치를 즐기고, 성을 무기로 명품 소비를 한다는 식의 조롱을 합성 사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는 시선이다.
재계 전반 문제로
실제로 디올 등의 소위 명품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가방은 ‘된장녀’, ‘김치녀’로 칭해지는 한국 여성 비하 수단의 상징물로 쓰이고 있다. 지난해 KFC는 ‘자기야~나 기분전환 겸 빽(Bag) 하나만 사줘^^’, ‘음, 그럼 내 기분은?’이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해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메트라이프생명, 공차, KB국민카드, 공익광고 등에서 여성 비하 혹은 혐오를 조장한다는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이들은 ‘남자는 보험이 아니다’, ‘식사용 오빠, 쇼핑용 오빠…어장관리? 아니, 메시급 멀티플레이’, ‘지루했던 남친 군대로, 나는 어장관리 홍대로’ 등의 문구를 사용해 이 같은 논란을 일으켰다.
보건복지부의 피임 광고 역시 여성을 남성 의존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 지하철 몰카 방지 캠페인에서도 ‘치마는 가려주세요’라는 문구를 넣어 범죄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린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화장품 브랜드 맥(MAC)은 광고모델로 과거 여성 비하·혐오 발언 논란이 있었던 개그맨을 기용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컬렉션 제작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민감한 문제로 떠오른 여성혐오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을 연상하게끔 하는 합성 사진과 제목을 전시했다는 것은, 디올이 한국여성을 비하한 것으로 보인다는 시선으로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완 작가의 작품 설명에 대해 “한국에서 여성이 성을 팔아 디올백을 소비한다는 것이냐”, “왜 남자들은 명품백 가격도 잘 모르면서 여자가 그만한 돈을 벌려면 성매매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하는지…놀랍게도 명품백은 성매매를 안 해도 살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명품백 샀다고 머리 위에 이고 다니면서 명품이라고 소리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 과시용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벤츠 사고 로고에 뽀로로 스티커 붙이고 다녔으면”이라고 말했다.
또 디올을 향해 “여성을 주 고객으로 삼는 브랜드가 고객을 혐오하는 의도를 가진 작품을 내놓는다니”라고 비판하며 불매운동 주장도 나왔다.
“비하 의도 없었다”
더욱이 이 같은 행보는 디올이 그동안 추구해온 가치와 상반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디올의 창립자인 크리스챤 디올은 “나의 꿈은 여성들을 더 행복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여성의 진취성을 강조하고 자존감을 북돋우며, 여성에 대한 존경과 권위신장을 위한 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일례로 디올은 인종 차별 발언 디자이너를 해고하고, 페미니스트 배우를 모델로 쓰는 등 여성혐오와 싸워온 브랜드다.
이 때문에 이번 작품을 선택한 배경을 이해하기 더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작가는 물론 이를 전시하기로 결정한 디올의 판단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 소비자들을 ‘봉’으로 여기는 것으로 의심되는 행동의 연장선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만약 동양인이 아닌 유태인 등의 세계적으로 민감한 차별적 주제를 이번 작품처럼 다뤘어도 이렇게 방치했을 것이냐는 시선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완 작가는 “한국 여성을 비하할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디올 역시 “최근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에 전시됐던 이완 작가의 작품에 대한 논란으로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이 사진 작품의 전시를 이미 중단했고 앞으로도 전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어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며 여성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지원하는 것이 디올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고 덧붙였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