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감시망 피해 해외서 도박사이트 운영
친형·형수·사돈처남 가담…인증사진에 ‘덜미’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중국, 태국 등 해외에 서버를 두고 수천억대의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던 일당이 검찰에 구속기소 됐다. 지난 5년간 신출귀몰하게 활동하며 수사기관의 수사망을 이리저리 피해 오던 이들은 한 직원의 실수(?)로 덜미를 잡히게 됐다. 이 직원은 사무실에서 휴대전화로 ‘셀카(셀프카메라)’를 찍었는데, 사진 배경에 걸려있는 화이트보드에 의문의 숫자가 적혀있는 것을 검찰이 캐치했다. 조사 결과 이 숫자는 자금세탁을 위한 계좌번호로 드러났다. 계좌를 추적해보니 명의는 피의자의 형수였고, 일가족이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에 줄줄이 가담하고 있었다. 이들은 태국의 고급 아파트에서 벤츠 등 고급 승용차를 굴리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다가 ‘인증샷’ 하나에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검찰은 최근 대대적으로 스포츠토토 인터넷 도박 단속 강화에 나섰다. 사행성 불법도박 시장규모가 160조원(2014년 기준)에 이르는 등 불법 인터넷 도박의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어서다. 스포츠토토는 회원들이 해당 사이트에서 국내외의 축구와 야구, 농구, 배구 등의 경기결과를 예측해 회당 일정액의 금액을 걸고 적중시킨 회원에게 배당률에 따른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수원지검은 내사에 착수해 올 3월까지 40명에 이르는 관련자들의 통화내역 분석하고 18회에 걸쳐 계좌를 추적하는 등의 수사 활동을 펼쳤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7명을 구속기소하고, 8명 불구속 기소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주범으로 지목된 피의자 A(41)씨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중국, 태국 등에서 판돈 320억 원 규모의 스포츠토토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의문의 숫자는 ‘계좌번호’
주목할 만한 인물은 B(41)씨다. B씨는 지난 2011년 12월부터 올 1월까지 중국, 태국 등에서 판돈 3000억 원 규모의 스포츠토토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다가 적발됐다. B씨가 벌어들인 돈은 90억 원으로 추정된다.
B씨는 가명을 사용하는 등 지난 5년간 수사망을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일명 대포폰, 대포통장을 주기적으로 변경 사용해 오면서 추적을 피하기도 했다. 또 서버 위치를 중국, 태국으로 번갈아 옮겨가며 해외에서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적발이 쉽지 않았다.
B씨는 지난해 6월 한 차례 경찰 수사를 받았지만 이 같은 수법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을 때도 인적사항이나 도박사이트 충전계좌를 확인하기 어려워 난항을 겪을 정도였다.
신출귀몰하던 그의 결말은 허무했다. 5년간 수사망을 피해 다니던 B씨는 검찰이 확보한 ‘인증샷’에 덜미를 잡혔다. 태국 방콕 사무실에서 과거에 근무하던 직원이 휴대전화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이 ‘셀카’의 배경에 의문에 숫자가 기록돼 있었다.
수원지검은 화이트보드에 흐릿하게 적혀있던 이 숫자를 정확하게 판독하기 위해 대검 과학수사과에 의뢰, 도박수익금을 관리하는 계좌라는 것을 밝혀냈다.
주목할 부분은 또 있다. 해당 계좌의 명의는 B씨의 형수였다. 3000억 원대 규모의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B씨는 친형 및 사돈처남(형수의 남동생)까지 직원으로 고용해 서버관리자로 근무하게 했다. 또 B씨가 부모와 부인, 친형, 형수 명의의 통장을 도박 수익금의 자금세탁계좌로 사용했다.
앞서 A씨에게 도박사이트를 운영하게 한 것도 B씨였다. B씨는 자신의 도박사이트 관리 및 운영 노하우를 친구인 A에게 전수해 3년간 320억 원대의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도록 했다.
일가족 가담해 범행
검찰은 이들이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 사회적 약자에게 접근해 계좌 1개당 30~100만 원을 지급하고 이들로부터 통장을 제공받아 도박사이트의 충전 또는 자금세탁 계좌로 이용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들은 수익금으로 태국에서 벤츠 등 고급 외제차를 굴리며 최고급 아파트에서 떵떵거리며 생활해 오다가 전 직원의 인증샷 하나로 차가운 감방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검찰 관계자는 “육안으로 판독하기 어려운 숫자를 발견해 이를 단서로 주범과 관련자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현재까지 수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상습도박자들에 대한 추가수사를 진행하고, 일회성 단속에 그치지 않고 관내 불법 사행행위 범죄가 근절되도록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hh@ilyoseoul.co.kr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