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태권도협회 ‘비리 백화점’ 논란 내막
서울시태권도협회 ‘비리 백화점’ 논란 내막
  • 신현호 기자
  • 입력 2016-04-17 18:32
  • 승인 2016.04.17 18:32
  • 호수 1146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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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지지 않았다”…스스로 목숨 끊은 아버지의 호소
▲ 본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상대선수 父 “아들 이기게 해달라” 청탁 일사천리
수사 과정서 각종 비리…시민단체 “신속 수사하라”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지난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 바른태권도시민연합회 등 태권도 관련 시민단체들이 이곳에 모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서울시태권도협회(서태협)’의 비리에 대해 검찰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승부조작 파문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서태협에서는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각종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 협회장이 15년간 수억원의 뒷돈을 받아 챙긴 정황이 드러나는 등 운영상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이들 단체는 검찰에 “핵심 피의자들을 즉각 구속 수사해 사건을 종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태협의 승부조작 비리는 지난 2013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권도 관장 전모씨는 아들이 전국체전 고등부 서울시대표선수 선발전을 치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대회에서 자신의 아들이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패한 억울함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회를 지켜본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원통하다는 게 전 씨가 남긴 유서의 내용이다.

승부조작을 청탁한 건 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이자 상대선수의 아버지인 최모씨다. 그는 자신의 대학 후배인 태권도 감독 송모씨에게 “내 아들에게 유리하게 판정해달라”고 청탁했다. 송 씨는 서태협 전무 김모씨에게 부탁하고, 이어 심판위원장 노모씨 등을 거쳐 주심 최모씨에게 하달됐다.

상대선수 아버지→태권도 감독→협회 전무→기술심의회 의장→심판위원장→심판부위원장→주심 등으로 이어진 복잡한 절차의 청탁은 일사천리로 끝났다. 주심 최 씨는 3분 3회전으로 치러지는 시합이 시작된 지 14초 만에 자살한 전 씨의 아들에게 경고를 내렸다. 이후 3회전 종료 50초를 남겨놓고 경고 6번을 연달아 내렸고, 막판 승부에 대한 이의를 신청하는 깃발까지 올렸다. 이 깃발은 2회 사용시 경고 1번으로 인정하는데, 이미 전씨의 아들은 예선전 때 한 차례 깃발을 사용한 적이 있다. 결국 경고 8개로 반칙패 결과가 나온 것이다.

잇따른 승부조작

경찰은 전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수사에 나섰고 편파 판정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승부조작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심판부의장 김모씨는 지난 2014년 7월 열린 ‘제4회 전국 추계 한마음태권도 선수권대회’ 고등부 품새 금강형 단체 4강전에서, 부의장 전모씨를 통해 심판 5명에게 전 협회 전무 김모씨 아들이 선수로 참여한 K고교 A팀이 승리하도록 지시했다.

승부 조작은 이날 대회 4강전 경기 직전에 부의장 전 씨가 심판 5명을 불러 모아 품새 판정에서 무조건 K고교가 승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품새 경기는 전자호구로 점수가 매겨지는 겨루기 시합과 달리 심판의 주관적인 평가로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승부조작이 어렵지 않았다.

이날 경기는 K고교 상대팀이 우수했지만 승부조작을 지시받은 심판 5명은 모두 K고교의 승리를 판정했다. 경기 직후 상대팀 코치가 나와 강력히 항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K고교 A팀은 결승전에서 같은 학교 2학년생으로 구성된 B팀을 만나 이 대회에서 최종 우승했다. 그간 대회 입상 성적이 없었던 김 전 전무의 아들은 이 대회 우승과 이후 열린 2개의 전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거둬 태권도로 유명한 모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전·현직 임원들 운영상 비리

비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협회 운영상의 비리가 최근까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전 협회장 임모씨 등은 2009년 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허위로 활동보고서를 작성해 40명에게 약 11억원을 부당 지급한 혐의(업무상 배임)를 받고 있다.

이 활동비는 비상근 임원들이 협회와 관련된 활동을 해야만 지급토록 규정돼있다. 협회 사무차장 진모씨도 모 고교 태권도 코치의 취업대가로 500만 원을 건네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심판위원장이 심판 배정에 대한 권한을 전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에 심판이 주된 수입원인 경우 부정한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운 여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피의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서울시 태권도협회뿐만 아니라 지방태권도협회에도 승부조작은 비일비재하고 학연이나 지연을 통해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피의자들은 “일당 6만∼8만 원 정도 받는 심판이 눈 밖에 나면 (심판으로) 불러주지도 않고 어느 순간에 잘려 버려 소신 있는 판정을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임 전 회장이 지난 15년간 수억원에 이르는 뒷돈을 받아온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태권도 코치가 되기를 희망하던 김모씨는 임 전 회장이 협회 임원으로 있을 당시 협회에 현금과 상품권 등 1000만 원 어치를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태권도 지도자들은 상납조직을 만들어 15년간 수억원에 이르는 돈을 임전 회장에게 건넸다.

임 전 회장은 회장으로 있을 당시 설날, 추석, 스승의 날 등에 ‘동지회’라는 조직을 통해 태권도 지도자 20여 명으로부터 수십만 원 씩 상납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바른태권도시민연합 김덕근 대표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검찰이 수사를 끌고 있다. 담당검사에게 직접 물어보니 방산비리 등 우선순위에 밀려 수사가 지연되고 있다고 하더라. 승부조작 사건은 대한민국 체육계를 흔든 큰 사건임에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이어 “고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면서 “검찰은 핵심 피의자들을 즉각 구속 수사해 사건을 종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hh@ilyoseoul.co.kr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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