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민주당 구하기’ 나서려 했나
DJ ‘민주당 구하기’ 나서려 했나
  • 김종민 
  • 입력 2004-05-07 09:00
  • 승인 2004.05.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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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홍일 의원이 총선 막바지에 부친인 김대중 전대통령(DJ)을 강력하게 설득하지 못한 것이 민주당의 결정적 패인이 됐다며 아쉬워하고 있다고 전해진다.DJ가 목포 방문 등 탄핵역풍으로 ‘코너’에 몰린 민주당을 지원하는 방안을 심사숙고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심지어 김홍일 의원이 DJ에게 전남 신안군 하의도 선산에 성묘를 제안,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지만 선거막판 민주당의 지지도가 반등할 기미를 보이자 취소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 같은 소문이 선거 뒤끝에 터져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 진위여부와 내막을 취재해 봤다.17대 총선이 시작되기 전부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김대중 전대통령(DJ) 잡기에 혈안이었다. DJ의 지지를 이끌어낸 쪽이 호남에서 총선승리를 담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호남 민심이 급격히 민주당에 등을 돌리자 민주당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물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돌기 시작했다. 때문에 민주당은 총선기간 내내 DJ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전력을 다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추미애 의원은 광주·전남지역을 집중 공략했고 호남의 지지를 호소했다. DJ의 햇볕정책을 강조했고, 추 의원 옆에는 DJ의 장남 김홍일 의원이 자리했다. 호남지역민들의 가슴속에서 DJ에 대한 향수를 끌어 내려한 것이다.민주당 한 관계자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민주당을 위해 단 한 번만이라도 ‘호남투어’를 해줬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며 “선거기간 동안 추미애 의원 등 지도부가 직·간접적으로 김대중 전대통령과 접촉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총선 막바지에 호남에서 민주당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 오히려 악재가 됐다”며 “김대중 전대통령은 탄핵으로 민주당이 완전히 코너에 몰리자 자신이 목포를 방문해 민주당을 지원해 주는 방안을 심사숙고하다가, 선거 막판에 민주당의 지지율이 반등하자 이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전했다.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김홍일 의원 측에서 DJ 설득에 발 벗고 나섰던 것으로 안다”며 “선거 중반부터 몇 차례 동교동에 전화를 걸어 지난 청명, 한식 때 가지 못한 전남 신안군 하의도 선산에 성묘를 갔다 오자고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전해진다”고 밝혔다.이 당직자는 이어 “고속철을 이용해 목포역으로 내려가 간단하게 환영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 곧바로 하의도에 가서 성묘를 하고 인근 주민들과 식사를 함께 한 뒤 귀경하는 등의 세부적인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실제 김홍일 의원을 비롯해 동교동계 등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물론 선대위 관계자 등 지도부가 총출동, DJ 설득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지원을 호소한 것이다.장성민 민주당 선거기획단장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호남방문 계획을 수립해 놓고 수 차례 지원을 요청했었다”며 “하지만 본인의 의사에 따른 것이어서 당 지도부의 구상에 그쳤을 뿐 결과로 나타나지는 못했다”고 토로했다.장단장의 말대로 DJ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이와 관련 민주당의 또 다른 당직자는 “대검 중수부가 선거중반에 ‘기습적’으로 부영에 대한 수사내용을 외부에 흘린데다 여기에 민주당 동교동계인사들이 다수 관련돼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자 동교동이 주춤해서 호남방문을 철회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귀띔했다.

이 당직자는 이어 “하지만 꼭 그렇다기 보다는 선거 종반에 호남에서 민주당이 갈수록 선전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자 굳이 청와대나 우리당으로부터 비난받을 소지가 있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으로 취소됐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홍일 의원측은 이 같은 분석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김홍일 의원의 한 측근은 “당 차원에서 DJ의 마음을 끌어당기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김홍일 의원이 직접적으로 ‘발벗고’ 나서지는 않았다”며 “하의도 성묘계획 등은 세운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 측근은 또 “김대중 전대통령이 목포를 방문해 민주당을 지원해 주는 방안을 심사숙고하다가, 선거 막판에 민주당의 지지율이 반등하자 이를 취소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민주당 일부 인사들이 DJ에 대한 서운함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모양”이라고 덧붙였다.어찌됐건 민주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DJ 향수’가 민주당 지지표로 연결되진 않았다. 17대 총선결과, 민주당은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 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이는 ‘DJ 향수’의 위력이 약해서라기보다 호남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DJ의 적자로 판단하지 않은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선거 패배 요인에 대해 민주당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하나는 이번 선거가 인물이나 정책 중심의 선거라기보다 오로지 탄핵에 대한 찬반투표 형식으로 치러졌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당이 탄핵을 발의하고 의결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공조했다는 점이 전통적 지지층을 이반시킨 결정적 원인으로 분석된다.추미애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하는 적자정당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3보1배를 통해 한민 공조에 대해 속죄하면서까지 지지층 재결집을 시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탄핵 주도에 대한 반발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개혁 공천의 실패다. 민주당이 선거를 목전에 두고 당권파와 쇄신파로 나뉘어 주도권 다툼 양상을 보였고, 급기야 쇄신파가 마지막 히든카드로 내놓은 개혁 공천마저 당권파 반격으로 무산되면서 민주당의 몰락은 예고됐다. 결국 호남에서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안이한 생각에 젖어 열린우리당과의 개혁 공천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분석이다. 호남 표심은 DJ에 대한 향수보다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민주당의 관계자들은 “DJ가 움직여만 줬어도 선거판세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며 “마지막 개혁 공천만 성공했어도 호남 민심의 흐름이 돌아설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종민  kjm9416@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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