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사건 1년 만에 구속
경찰 ‘침통’…“14만 경찰 조직 자존심에 큰 상처”
[일요서울 | 송승환기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는 지난 7일 용산 역세권 개발사업 과정에서 뒷돈을 챙긴 혐의(뇌물수수) 등으로 허준영(64) 전 코레일 사장(전 경찰청장)을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한정석 영장전담판사는 전날 허 전 사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에 따르면 허 전 사장은 현직에 있던 2011년 폐기물처리업체 W사를 운영하던 측근 손모(구속)씨로부터 “사업 수주를 도와달라”는 등의 청탁과 함께 2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2천만 원 뇌물·1억7천여만 원
정치자금 수수…
檢, 사용처 등 확인 방침
W사는 당시 용산 개발 주관사인 삼성물산으로부터 100억원대 폐기물 처리 용역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아무런 실적이 없던 W사가 사업을 따내자 배후에 허 전 사장이 있다는 얘기가 업계에 파다했다. 검찰은 손 씨의 진술과 그동안 확보한 물증(物證)을 토대로 허 전 사장이 손 씨의 사업상 편의를 봐주고 대가를 받은 것으로 보고 뇌물수수(賂物授受) 혐의를 적용했다. 허 전 사장은 2011년 11월부터 2014년 9월까지 6차례에 걸쳐 손 씨에게서 1억7천600만 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도 있다.
그는 2012∼2013년 새누리당 서울 노원병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3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때 해당 지역에 출마했다가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에게 패했다.
허 전 사장은 지난달 3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그는 검찰에서 부정한 자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전날에도 취재진에게 “어처구니없는 모함”이라며 “저는 정치게임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허 전 사장을 상대로 뇌물 및 정치자금의 사용처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앞서 손 씨는 회삿돈 9억여 원을 빼돌려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지난달 29일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조만간 손 씨에게 뇌물공여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반복되는 검찰과
치안 총수 악연史
허준영 전 사장이 구속되면서 전직 경찰청장 잔혹사(殘酷史)에 또 하나의 오점(汚點)을 남겼다. 외교관에서 경찰로 전직한 허 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경찰청장 자리에 올랐다.
그해 말 농민이 시위 도중에 숨지자 취임 11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을 했다. 과잉 진압 논란이 불거져 지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런데도 경찰 조직에서 신망은 두터운 편이었다.
한때 14만 경찰 조직을 통솔한 치안 총수가 또다시 검찰에 불려 나올 처지가 되자 경찰은 매우 침통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경찰 출신의 A변호사는 “경찰 총수는 현직이든, 전직이든 경찰 조직의 얼굴”이라며 “이들이 비리(非理)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을 때 경찰은 자존심과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는다”고 말했다. 경찰청장 출신 인사가 비리로 처벌받은 전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최근에는 조현오(60) 전 청장이 형사처분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등으로 불구속 기소돼 작년 3월 징역 8개월이 확정됐다. 1심에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항소심에서 다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받고 재수감됐다.
작년 8월에는 부산의 한 건설업자로부터 특정 경찰 직원의 승진 청탁과 함께 5천만원을 수뢰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검찰과 거듭된 악연으로 주목을 받았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이무영(71) 전 경찰청장이 구속됐다.
2001년 12월 ‘수지김 피살사건’의 경찰 내사 중단을 주도한 혐의로 철창신세를 졌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나와 누명을 벗었다. 강희락(64) 전 청장은 2011년 함바(건설현장 식당)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
‘희대의 사기꾼’ 함바 브로커 유상봉(70·수감 중)씨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에 벌금 7천만원, 추징금 7천만 원이 확정됐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치안총수인 이택순(64) 전 청장은 2007년 7월 박연차(70)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미화(美貨) 2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천433만 원이 확정됐다.
2000년대 이전에도 치안총수의 처벌 사례는 반복됐다.
5공 시절 경찰청장 전신인 치안본부장을 지낸 염보현(84)씨는 퇴직 후인 1988년 수뢰 혐의로, 강민창(82)씨는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 혐의로 각각 처벌됐다.
문민정부 때는 이인섭(80) 청장이 슬롯머신업자 및 경찰 간부 등에게서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박일룡(76) 전 청장은 퇴임 후 안전기획부 1차장으로 재직할 당시 ‘북풍(北風) 사건’에 연루돼 수감됐다.
송승환 기자 songwin@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