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미국계 담배제조사 필립모리스가 한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눈길을 끈다. 올해 국방부 국군복지단의 군납 담배 입찰을 앞두고 “지난 9년간 입찰 경쟁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선정 기준에 의문점을 제기한 것이다. 주 수요층이 필립모리스 선호도가 높은 나이대라는 점과 시장점유율을 고려할 때 자사가 제외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외국계회사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자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례적인 일인 만큼 소송을 걸 만한 변화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외국계 회사 이례적 소송 제기 배경 무엇
업계에 따르면 한국필립모리스(이하 필립모리스)는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한민국을 상대로 ‘납품품목 선정 결정 무효 확인’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필립모리스는 말보로, 팔리아먼트, 버지니아슬림, 라크 등을 판매하는 외산 담배 제조업체다.
이번 소송 취지는 지난 9년간 군납 입찰 경쟁에서 떨어진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국군복지단 마트인 PX(충성마트)는 외국계 담배가 허용되지 않아 KT&G가 독점해왔다. 그러다 2007년 담배에 대한 경쟁 입찰 방식이 도입되면서 외국 담배 업체들도 PX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지난해 입찰 때까지 입점에 성공한 브랜드는 없다. 필립모리스 역시 입찰에 선정되지 못했다.
국군복지단은 맛(40점)과 디자인(30점), 가격(30점) 등을 고려해 고득점 품목을 선정하고 있다. 장병들의 나이대에 선호도가 높고, 시장점유율이 높은 담배가 선정되는 것이 맞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필립모리스는 젊은층의 담배 선호도를 고려할 때 입찰에 실패한 결과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한국리서치가 연령대별 주흡연 브랜드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필립모리스는 19~29세 연령대에서 40.7%를 차지했다. 이어 KT&G가 32.3%, BAT가 16%, JTI이 11% 순으로 뒤를 이었다.
25~29세 장병들의 선호도에서도 필립모리스가 38.3%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KT&G 33.2%, BAT코리아 18.6%, JTI코리아 9.9% 순으로 나타났다.
또 평가를 하는 심사위원들이 장교와 부사관, 군무원, 장병 등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공정한 심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맛, 디자인 등의 요소를 비전문가인 이들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격 항목의 경우 지난해 담뱃값 인상 이후 사실상 동일해진 상태여서 점수 편차가 크게 나지 않는 상황이다. 또 구체적인 평가 항목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필립모리스는 국군복지단의 입찰 선정 기준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지난 군납 결과와 관련해 평가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했으면 한다”며 “장병 연령대에서 선호도가 높은데도 PX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전했다.
반면 국군복지단 측은 공정한 평가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일반 장병들부터 장교들까지 계급별 의사를 한데 모으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외국계 회사인 필립모리스가 이례적으로 소송을 제기하자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발표되는 ‘2016년 국군복지단 마트 일반담배 납품품목 선정 공고’ 결과를 앞두고 이 같은 소송을 제기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필립모리스가 국산 담배 농가에서 생산되는 잎담배를 사기 위해 협의 중인 상황을 배경으로 거론한다.
그동안 국산 담배 농가에서 생산되는 잎담배는 KT&G가 전량 수매해왔다. 그러다 필립모리스도 연엽초생산조합과 국산 담배 농가 잎담배를 사기 위해 협의에 들어갔다. 규모는 오는 2017~2019년 연간 30억 원, 총 90억 원으로 전해진다.
독점 관행 그대로?
필립모리스 측은 “수매 의사를 전달하고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일부 한정판을 제외한 제품 모두를 한국 공장에서 생산하며 수출 및 고용 창출 효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던힐 등을 생산하는 BAT와 마일드세븐 등을 생산하는 JTI는 현재 구입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필립모리스가 외산 담배 업체들 중 유일하게 국내에 수출 및 고용·창출효과를 내는 상황에 놓였고, 이 같은 변화가 소송으로 이어졌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국가 조달 입찰에서는 정부가 여러 이익 단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외국계가 배제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 변화한 필립모리스의 상황이 소송을 제기한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시선이다.
더욱이 필립모리스는 일부 한정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제품을 우리나라 공장에서 생산해왔다.
다만, 필립모리스는 소송 제기로 인한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필립모리스의 소송 제기가 지난 선정 결과들과 올해 선정 결과에 대한 항의 차원이란 분석이 나온다.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평가 시스템에 대한 확인과 문제 제기 차원에서 낸 상징적 의미의 소송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필립모리스는 지난 9년 동안 평가기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등의 조치를 취했다. 기존의 독점 관행이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다는 의혹을 밝혀내고, 장기적인 변화를 주기 위한 포석을 깔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무효 소송에서 승소하지 못한다고 해도 소송 자체가 의미를 가질 것”이라며 “재판 중 외국 업체들의 탈락 기준이 알려지면서 향후 합리적인 입찰 기준이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