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4월에 접어들면서 한국프로야구(KBO)뿐만 아니라 미국 메이저리그 정규시즌이 개막해 야구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특히 올해 역대 최대 메이저리그(MLB) 진출 한국 선수 기록을 달성하면서 국내외 야구팬들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하지만 개막전 진출을 놓고서는 명암이 엇갈린다. KBO 홈런왕 박병호(30·미네소타 트윈스)가 첫 데뷔전에서 첫 안타로 시원한 기록을 남긴 반면 시범경기부터 갈등을 빚어온 김현수(28·볼티모어 오리올스)는 25인 로스터에는 남았지만 좀처럼 출전기회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올해 선수 개개인의 농사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출발부터 엇갈린 운명에 각각 고단함의 크기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시범경기 삐그덕댄 김현수, 벤치신세 못 벗어나며 구단과 2차 눈치싸움 돌입
시범경기 돌풍 박병호, 돌직구 오승환 주전자리 안착…빅 리그 버티기가 관건
지난 겨울 KBO는 잇달은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겹경사를 맞았다. 강정호(29·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이후 예약되어 있던 박병호를 비롯해 한국야구에서 큰 약점이 없었던 타격기계 김현수가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또 한국에 이어 일본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던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 이대호(34·시애틀 매리너스)가 빅리그 진출에 성공했고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히 실력을 쌓아온 최지만(24·LA 에인절스)이 메이저리그 진입에 성공했다.
이 밖에 이학주(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역시 마이너리그로 돌아갔지만 스태프들의 눈도장을 충분히 찍었다는 점에서 MLB 열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이 같은 훈풍에도 불구하고 선수 개개인마다 팀 내 입지가 엇갈리며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순풍 아닌 태풍 맞은
타격기계
타격기계 김현수는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FA자격을 얻어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간 총액 700만 달러(약 80억7000만 원)에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어 순탄하게 진출했다. 하지만 막상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가 시작되자 김현수는 부진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시범경기 기간 17경기에 나서 45타수 8안타 타율 1할7푼8리로 고전했다.
일각에서는 김현수의 그간 방식이 고려되지 않고 장타자들과 훈련을 병행해 특유의 타격감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두고 벅 쇼월터 볼티모어 오리올스 감독도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 같다”고 실수를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김현수가 시범경기 후반 제 페이스를 찾지 못하면서 눈 밖에 난 상황이 됐다. 이에 구단 측은 마이너리그 행을 권유하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구단 측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김현수는 거부권을 행사해 25인 로스터에 남았지만 구단 측은 그에게 출전기회를 부여하지 않으며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현지 팬들의 반응도 김현수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개막전 식전 행사에서 김현수가 소개될 때 박수와 함께 야유 소리가 흘러나왔다. 김현수는 “정규시즌 경기에 채 뛰어보기도 전에 홈구장에서 야유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에 팀에서 가장 오랫동안 뛴 선수인 중견수 아담 존스는 “한국에서 와서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매우 무례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야유를 받는 김현수를 보면서 (팬들의 행동이) 무례하고 불쾌한 모습이었다”며 팬들 반응에 일침을 놨다.
김현수 역시 “아담의 말에 정말 고맙다”며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과 팀을 돕겠다는 마음뿐”이라는 각오로 복잡한 심경을 대신했다.
뜻밖의 선발제안에
치명상 입나
김현수는 거부권으로 자리를 보전했지만 개막 3연전 내내 선발 출전의 기회를 얻지 못하면서 향후 선발 출전에 대해 먹구름이 낀 상태다.
이에 쇼월터 감독은 지난 8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캠든 야즈에서 열린 미네소타와의 시즌 3차전에 앞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홈 6연전 마지막 경기 전에는 김현수에게 선발 기회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도 지켜봐야 한다는 게 현지반응이다. 또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현수의 선발등판에 대해 쇼월터 감독이 그를 내치기 위한 술수라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시범경기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김현수는 경기 승패가 갈린 막판에야 교체 출전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야 선수 본인도 부담을 덜고 구단도 거액을 투자한 이상 벤치에 앉혀둘 수만은 없는 상황에서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키겠다는 뜻은 김현수에게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선발 통보를 받게 되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고 선수는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 그라운드에 밟을 수 있다. 그러나 부진할 경우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된다.
결국 김현수가 선발 출전이 예상되는 템파베이 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이어갈 경우 구단의 마이너리그 행 압박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현수가 멀티히트 또는 장타 등의 인상적인 타격까지 보여주면 김현수는 기사회생하게 되고 구단도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된다.
이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 쇼월터 감독은 손해 볼 것 없는 신의 한 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김현수의 운명은 이번 선발 출전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몇 차례 기회가 주어지겠지만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구단 측은 다시 마이너 행을 권유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구단의 돌발 행보
버리는 카드설
이와 함께 여러 의혹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특히 마이너리그 행을 권유한 구단 측의 행보에 의문점이 제기된다. 김현수의 마이너리그 행은 구단 입장에서 손해 보는 장사다.
2년 700만 달러에 데려온 만큼 메이저리그에서 뛰도록 하는 게 정상이다. 더욱이 그가 마이너리그에 내려간다 하더라도 김현수의 연봉은 삭감되지 않는다. 또 방출할 경우에도 남은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
이에 대해 한 미국 기자는SNS에 익명의 인사를 인용해 “김현수에 대해 한국(구단)으로부터 ‘실질적인 제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볼티모어가 김현수의 계약을 떠넘길 구단을 찾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볼티모어는 2015년 3월 계약 기간이 2년 남은 윤석민을 KIA로 이적시키는 데 성공한 전례가 있다. 당시 KIA는 볼티모어에 상징적인 금액인 단 1달러의 이적료를 주고 윤석민을 데려왔다. 표면적으로는 볼티모어가 손해를 본 듯하지만 윤석민이 마이너리그에 남을 경우 지급해야 하는 연봉 415만 달러(약 46억 원)를 아낄 수 있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국내 구단들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소문은 들어봤는데 소문이야 큰 의미가 있겠냐”라는 답변을 내놨다.
친정팀 두산 베어스도 “우리가 친정팀인데 김현수가 중도에 돌아오기를 바랄 리가 있겠나. 격려는 할 수 있어도 데려오려고 접촉한 적이 없다.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아직은 쉬쉬하고 있지만 김현수의 MLB진출이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간다면 결국 구단들이 자신들의 잇속으로 인해 선수의 꿈을 꺾는 모양새를 연출하게 돼 김현수를 둘러싸고 안팎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루키들 속속 안착하며
순항 중
한편 김현수 사태로 한국야구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은 비교적 순항중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만 정규시즌 초반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개막 2경기에 출장해 6타수 1안타 1득점 1볼넷을 기록했다. 개막전에서는 3타수 1안타로 선전했지만 지난 7일 열린 두 번째 경기에서는 3타수 무안타 1볼넷 삼진을 3개나 당했다.
하지만 아직 시즌 초반이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특히 박병호는 개막전에서 빅리그 데뷔 첫 안타를 날린 한국인 최초 선수라는 진기록을 남기며 팀 내 입지를 확고히 했다.
이대호는 이번 시즌을 시작하며 극적인 반전을 이룬 선수로 손꼽힌다.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출발해 인상 깊은 경기력으로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 입성이 성공했다. 비록 그는 데뷔전서 무안타에 그치는 부진을 보여 앞으로 선발 진출이 쉽지는 않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시범경기를 치르면서 보여 준 꾸준한 노력과 인내로 기회를 만들겠다는 뜻을 확고히 했다.
시애틀은 이대호를 ‘플래툰 1루수’ 혹은 좌투수 상대 대타요원으로 보고 있다. 벤치 멤버보다는 출전 기회가 더 많지만 기회가 제한된 것은 마찬가지다. 실제 7일 텍사스 전에서 상태팀의 우완 일변도의 투수진 운용으로 이대호는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현지 언론들은 이대호의 안타 여부에 따라 입지가 달라질 것이라며 분발을 촉구했다.
미이너리그 진출 6시즌 만에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최지만도 주목받는 루키로 떠올랐다. 룰5드래프트로 에인절스에 합류한 그는 스프링캠프에서 경쟁력을 보여줬고 그 결과 에인절스 개막 25인 명단에 합류했다. 최지만은 높은 타율은 아니지만 터질 때 터져주는 타격감, 안정적인 1루 수비와 좌익수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마이크 소시아 LA 에인절스 감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불펜으로 입성한 오승환은 전매특허인 돌직구를 비롯해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며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시범경기에서도 여러 차례 완벽투를 선보였던 그는 데뷔전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개막전에서 구원 등판해 1이닝 무실점 2탈삼진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하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2차전에서도 2이닝동안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완벽한 제구력으로 메이저리그 강타자들을 압도했다. 이제 2경기밖에 등판하지 않았지만 빅리그에서도 돌직구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며 팀 내 ‘중간 보스’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