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여론조사의 민낯 : 권력5부에서 ‘선거괴물’로
[심층취재] 여론조사의 민낯 : 권력5부에서 ‘선거괴물’로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6-04-08 21:42
  • 승인 2016.04.08 21:42
  • 호수 11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대 총선이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 총선후보자들은 경선과 본선을 거치면서 혈투를 벌여야만 했다. 여당은 진박 친박으로 나뉘어 공천전쟁을 치렀고 야권은 분열돼 후보 단일화 요구로 홍역을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선거초반부터 막판까지 막강한 영향을 미친 것은 여론조사였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공천권을 쥔 주류 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파 숙청에 교묘하게 활용됐다. 국민의견이라는 칼을 쥐고 입맛에 맛는 후보자들을 선택하는 무기가 된 셈이다. 여론조사는 사법·입법·행정.언론에 이어 권력5부로 부상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번 총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돼 거대한 괴물로 변했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20대 총선에서 드러난 여론조사의 민낯을 심층 취재했다.

- 여론조사 공화국 ‘보이지 않는 손’으로
- “차라리 블랙아웃이…” 총선은 여론조사 ‘무덤’

4월7일을 기점으로 선거법상 총선 여론조사의 결과 공표가 금지됐다. 선거 일동안 ‘깜깜이 선거’(블랙아웃)다. 국민의 알 권리를 침범한다는 차원에서 이 규정이 불합리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민심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올바른 판단의 기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칫 왜곡되거나 조작될 경우 거꾸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다.

‘떴다방’같은 영세 업체 수두룩

4.13총선에서 ‘떴다방’처럼 수많은 여론조사기관이 생겨났다. 중앙선관위산하 선거여론조사심위원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여론조사기관도 1천개가 넘는다. 선관위에 등록한 조사기관만 이 정도다. 한 기관이 1회씩만 여론조사를 했어도 1천 건이 넘는다. 총선은 대선과 지방선거와는 달리 전국 253개 지역에서 동시에 실시된다는 점에서 가히 대한민국을 여론조사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여론조사는 국민의 의견을 국민에게 직접 묻는다는 점에서 선거를 앞두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조사결과 자체는 선거운동 참고용에 그치지만 언론에 보도될 경우 후보자들을 피말리게 한다. 권력 5부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여론조사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92년 문민 정부 수립 이후부터다. 특히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과정에 여론조사 결과로 결정되면서 극대화됐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막강했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곧 당선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이명박-박근혜 후보는 본선을 능가할 정도로 치열한 경선을 치렀다. 결과는 당원투표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겼음에도 여론조사 환산 득표수에서 이명박 후보에 패해 5년을 더 기다려 대통령에 당선됐다. 총선에서도 여론조사의 힘은 여전했다. ‘국민경선’, ‘국민공천’이라는 말이 정치권에 회자되면서다.

4.13총선에서도 ‘컷오프’(공천배제)부터 당내 경선후보 결정, 심지어 서로 다른 정당후보 간 단일화 수단으로 여론조사가 활용됐다. 여기에 정치신인들은 인지도를 높이기위한 도구로 여론조사를 이용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보자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고 신생 여론조사기관이 전국적으로 난립하는 계기가 됐다.

관건은 여론조사 기관의 신뢰도다. 여론조사의 조작 내지 왜곡 의혹이 선거철마다 반복됐다. 실제로 15대총선부터 지난 19대 총선까지 방송사 출구조사 성적은 5전5패다. 총선이 여론조사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특히 이번 총선은 선관위부터 언론중재위 선거보도심위원회, 지역내 경찰서에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와 고발이 넘쳐났다. 잘못된 여론조사 결과 때문이다. 잘못된 여론조사는 곧 국민의 선택도 흐리게 만든다.

집 전화, “싼 게 비지떡” 휴대폰, ‘고비용’

이른바 ‘밴드웨건 효과’(1위 후보에 올라타려는 현상)나 ‘침묵의 나선이론’(소수 의견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으며 점점 강화되는 현상) 그리고 ‘언더독 현상’(뒤지는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현상)이 여론을 왜곡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왜 이렇게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일까. 통상 선거철 여론조사는 유선전화 100%(집전화)를 통한 면접관 조사나 ARS 방식으로 실시된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조사기관마다 천차만별인 설문조사 문항 때문이다. ‘지지도’냐 ‘적합도’냐 아니면 ‘인지도’냐 ‘경쟁력’을 묻는 조사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2002년 대선 직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여론조사 문구 때문에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노 후보 측에서는 “이회창 후보에 대항할 후보는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를, 정 후보 측에서는 “이회창 후보에 경쟁력 있는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를 각각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노 후보 측은 여당후보 대항마를 강조한 반면 기업인 이미지가 강한 정 후보 측은 경쟁력을 앞세웠다.

최종 문구는 “이회창 후보에 경쟁할 후보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로 정해졌다. 노 후보 측이 ‘대항마’란 단어를 포기하는 대신 이름을 앞에 넣는 조건으로 성사됐다. 결국 노 후보가 승리했는데 그 원인으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문구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두 번째는 ‘떴다방’처럼 여론조사기관이 단기간에 생기고 없어지다 보니 영세한 업체가 다수다. 이럴 경우 정당이나 후보자와 친분이 있는 대표가 운영돼 ‘특정정당이나 특정후보와 유착’ 의혹을 받기 십상이다. 후보자는 저렴한 비용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할 수 있고 여론조사 기관은 후보자가 기대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여론조사를 반복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이럴 경우 ‘보이지 않는 손’이 결과에 작용했을 공산이 짙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론조사를 의뢰하려는 후보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누가 대표냐는 것이다. 대표의 학연·지연·혈연을 알고 나아가 인맥 지도 그리고 특정 정당의 출신을 파악하고 의뢰를 할지 말지를 선택한다. 실제로 여의도나 광화문, 마포에 소재한 업체의 대표들의 경우 청와대, 여당, 야당 출신이 운영하는 곳이 상당수다.

세 번째는 대표성 있는 표본 확보가 쉽지 않다. 각당 당원명부는 정당이 갖고 있고 당에서 결과는 그나마 신뢰를 얻는다. 하지만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의 경우 최신 표본 확보가 쉽지 않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확보하더라도 연령별, 성별, 지역별 천차만별이다. 각 항목별 여론조사에 가중치를 두지만 대표성을 띠기에는 역부족이다.

조사기관도 인정한 오류 ‘신뢰수준’

네 번째는 조사방식에서 오는 왜곡현상이다. 여전히 다수 여론조사기관은 유선전화 면접을 통해 조사를 벌인다. 집전화만 사용할 경우 낮시간에는 장년층 여론이 높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심야시간에 조사를 벌여도 마찬가지다. 한 가구당 1인의 여론을 청취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00개의 유효 샘플을 얻기 위해 1000회 이상 전화를 돌려야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나마 유효 샘플 100개 중 2030 연령대의 응답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무엇보다 집전화가 전체인구의 50%대에 머물고 다수가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론조사 왜곡현상이 얼마나 심각할지 예측할 수 있다.

이에 집전화+휴대전화 결합 방식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대선이나 지방선거에서는 결합이 가능하지만 총선처럼 지역구 단위에선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대안으로 100% 휴대폰 안심번호를 통한 여론조사가 이번 여야 후보 경선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대형업체와 거대 정당이나 가능한 일이고 다수의 여론조사기관 입장에서는 통신사로부터 전화번호DB를 받을 수도 없고 고비용도 큰 부담이다.

다섯 번째로 부동층과 더불어 ‘숨은표’는 결과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표는 자신의 지지 여부를 적극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수도권의 경우 부동표와 숨은표가 많다. 이번 총선에서도 122석의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 253개 지역 중 120군데가 여야 후보 간 혼전양상을 띠고 있다. 숨은표가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전체 판세를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권 텃밭인 영남이나 야권 텃밭인 호남에서 숨은표는 치명적이다. 대구 지역의 김부겸 캠프의 경우,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에 여론조사 결과 15% 이상 앞선다고 나와도 실제 투표에서는 초박빙 속 우세나 열세에 처하는 결과가 나오기 십상이다. 그러나 20% 이상 차이가 난다면 초박빙 속 우세라는 평가를 조심스럽게 내린다. 호남 역시 마찬가지다.

민심 왜곡하는 선거괴물 전락 우려

마지막으로 여론조사 자체가 갖는 신뢰도의 한계가 있다. 바로 모든 여론조사 결과에 등장하는 ‘신뢰수준±4.5%P’라는 것이 있다. 이는 여론조사 결과값이 9% 이하의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실제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한 지역구 유권자가 15만 명이라고 하면 최대 14,000표 정도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으로 몇 백표에서 몇 천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총선에서 정확하게 맞힌다는 것이 불가능한 셈이다. 여론조사는 참고용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총선 여론조사에서 가장 문제는 후보를 결정할 때 나타난다. 새누리당의 경우처럼 여론조사를 공개하지도 않고 참고용으로 삼는 경우다. 전략공천, 낙하산공천이 횡행해 민심에 반하는 공천이 이뤄질 수 있다. 친박이 친이 대학살을 하는 데 여론조사는 훌륭한 무기로 작용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컷오프 단계에서 문제가 됐다. 여론조사가 선거를 좌우하는 괴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mariocap@ilyoseoul.co.kr

총선 여론조사 체크포인트 다섯

-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P란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총선 여론조사결과표를 보기 전 유권자들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안이 있다. 일단 후보자 자체조사인지 아니면 언론사가 의뢰한 조사인지 정당 조사인지 그리고 ARS인지 직접 면접관이 전화를 한 건지 확인해야 한다. 의뢰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면접조사가 더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성별, 연령별 표본수다. 이것을 보면 세대별 민심이 어떤지 알 수 있다. 또한 유무선 혼합인지 100% 유선전화인지, 휴대폰 조사인지도 결과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응답률도 중요하다. 여론조사기관에서 몇 명의 유권자에게 연락해 응답을 했는지는 대표성을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95% 신뢰수준에 ±3%P라는 문항의 이해가 필요하다. 쉽게 말해 A후보의 지지율은 35%, B후보의 지지율은 20% 라면 같은 조사를 각각 다른 표본을 뽑아 100번 시행했을 때 95번은 A후보 지지율이 32~38%, B후보 지지율이 17~23% 나온다는 뜻이다.

따라서 위 결과는 A후보가 앞선다고 예측할 수 있다. 반면 A후보 지지율이 35%, B후보 지지율이 33%라면 같은 조사를 각각 다른 표본으로 100번 시행했을 때, 95번은 A후보 지지율이 32~38%, B후보 지지율이 30 ~36% 나오므로 A후보가 앞선다고 확신할 수 없다. 이런 경우 오차범위 안에 있다고 표현한다.  <철>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