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세월호 2주기, 봄이 오는 길목이 참 괴롭다
[현장르포] 세월호 2주기, 봄이 오는 길목이 참 괴롭다
  • 신현호 기자
  • 입력 2016-04-08 21:01
  • 승인 2016.04.08 21:01
  • 호수 1145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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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 않은 상처…안산 고잔동을 찾다
▲ 지난 5일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안산 고잔1동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 합동분향소는 평일 이른 오후임에도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2016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군대 갔던 아들이 돌아오고 신입생이었던 딸은 졸업반이 될 테지만, 9명의 희생자는 아직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단원고등학교가 위치한 안산시 고잔동은 세월호 참사로 여러 모양의 상처가 생겼다. 유족들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새겨졌고, 희생자의 친구와 이웃주민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남겨졌다. 이 파도는 지역 경제를 위협하는 쓰나미로 돌변해 상권 전체를 덮치기도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고잔동은 어떻게 변했을까.

지난 5일 오후 5시 안산 고잔1동에 위치한 단원고를 찾아가기 위해 서울 지하철 4호선 고잔역에서 내렸다. 1번 출구로 나와 고대안산병원과 안산세무서 샛길로 들어서니 일렬로 도열한 가로수가 길을 안내하듯 서 있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둔 고잔1동은 여느 동네와 다름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밖에 나와 신이 난 아이들이 이따금씩 불러대는 노랫소리가 소음의 전부였다. 코트를 입기에는 더운 날씨와 내리쬐는 햇빛, 가로에 핀 벚꽃들이 봄이 왔음을 알려줬다. 가족과 연인들은 꽃잎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봄날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평화로움과 함께 곳곳에 눈에 띄는 추모 현수막은 이곳이 세월호 참사의 파도가 휩쓸고 간 도시임을 상기시켰다. 길을 따라 약 15분을 걸으니 안산도시공사 앞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100m 정도 들어가면 단원고 정문이 나온다.

2년 전 참사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어느새 이곳부터 무거운 분위기가 맴돌았다. 발소리가 신경쓰일 정도로 주변은 조용했다.

▲ 단원고로 가는 길 곳곳에 걸려 있는 추모 현수막은 이곳이 세월호 참사의 파도가 휩쓸고 간 도시임을 상기시켰다.

삼거리에는 작은 상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세월호 참사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다. 사고 직후 주민들의 발길은 뚝 끊겼고, 일부 가게는 간판을 내려야 했다.

상가 앞에서 만난 이모(40대·여)씨는 “2년 전 일이라고 하기에는 어제일 같다. 당시에는 정말 온 동네가 초상집 분위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희생자는 없지만 모두 ‘지인’ 또는 ‘지인의 지인’ 범주에 들어간다”면서 “이 동네가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외식뿐 아니라 외출 자체를 자제한 적도 있다. 희생자의 지인들은 ‘봄이 오면 더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니 곧 단원고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하굣길이어서 학생들이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학생들 중 일부는 학교 앞 편의점 의자에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건너편 정자에 앉아 있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의 학생에게 이곳 분위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상처가 아물기에는 2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은 모양이었다. 이름 밝히기를 끝내 거부한 이 학생들은 “2년이 지났지만 어른들은 세월호와 관련된 얘기 자체를 꺼린다”면서 “아는 언니오빠들은 아직도 절대 배를 타지 않겠다고 하고, 바닷가를 아예 가지 않을 거라고 한다”고 말했다.

발길 끊이지 않는 합동분향소

학교 건물은 2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 침통한 사연을 겪고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다만 ‘단원고’라는 이름의 무게에는 변화가 생겼다. 깊은 상처에 앉은 딱지처럼 함부로 건드리면 덧날 것 같은 조심스러운 단어가 됐다.

단원고를 뒤로하고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안산 정부합동분향소를 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왕복 2차선 도로에는 약 20m마다 희생자를 애도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고잔1동 주민센터 앞 대로에 도착하니 건너편에 화랑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 주변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저수지 옆길을 따라 합동분향소까지 걸었다. 약 10분 정도를 걸으니 경기도미술관이 나왔다. 이 건물을 지나자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라는 글씨가 쓰인 커다랗고 하얀 천막이 나타났다.

앳되어 보이는 의경들이 천막 주변을 순찰하고 있을 뿐 인적은 드물었다. 10분 정도 지나서야 20대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분향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일 이른 오후임을 감안하면 추모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단원고 건물은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굣길 학생들은 정문 앞 편의점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지개 켜는 상권

기자는 안산의 대표 번화가인 중앙역 로데오거리로 향했다. 지난 2년간 안산 지역 상권은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었다. 고잔동 주민들은 한두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라고 할 정도로 가까운 이웃사촌들인 탓에 세월호 여파는 안산 전체를 패닉에 빠뜨렸다. 이는 극심한 소비심리 악화로 이어졌고, 안산 상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한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현재의 상황을 물었다. 이 매장의 주인은 “요즘 들어 아주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분위기 자체는 여전히 무겁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손님이 훨씬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근에 있는 한 분식집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분식집 사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리에 사람들이 확 줄어들어 휑했던 적이 있다”면서 “이때는 매출이 주말이나 평일이 비슷하다 할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주말 매출이 조금 늘어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산시가 KT와 BC카드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들어 지역경제가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자료를 보면 2014년 상반기와 하반기에는 성장률이 둔화됐지만, 지난해 상반기부터는 소폭 회복세를 나타낸 것으로 나타났다.

안산시의 일일 평균 유동인구는 116만여명으로 인구수 대비 165%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근지역인 안양시(174%), 시흥시 (169%)에 이어 3번째로 인구 유입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날 거리 역시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저녁식사 시간임을 감안해도 지난해와 비교해 유동인구는 훨씬 많은 듯 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수치상으로는 개선되고 있지만, 상인들이 체감하기에는 변화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중개사는 “현재 상가 매물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가게를 보러 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면서 “아직까지는 상황이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확실한 건 작년보다 거리에 훨씬 활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shh@ilyoseoul.co.kr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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