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효성 높이려면 더 ‘강력한’ 수위 도입해야”
“담뱃값 인상·흡연구역 축소로 이미 괴로워”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담뱃갑에 부착되는 흡연 경고 그림 시안 10종이 공개되자 찬반논란이 뜨겁다. 시민들은 ‘흡연파’와 ‘비흡연파’로 나뉘어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 담뱃값 인상과 흡연구역 축소로 직격탄을 맞은 흡연파는 “우리를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본다”며 볼멘소리를 높이는 반면, 비흡연파는 태국의 사례를 들며 “그림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 비흡연파
비흡연파(비흡연자 및 금연운동 단체)는 경고 그림 도입을 환영하는 한편, 더 강력한 수위나 추가 제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우준향 사무총장은 “그림과 문구가 금연이 선진화된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호주나 캐나다처럼 75%까지는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경고 그림으로 약간의 금연 효과는 있겠지만 이에 그치면 안 되며, 내년부터 편의점에 담배를 진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싱가포르처럼 우리나라도 이러한 판매 제재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우 사무총장은 강조했다.
비흡연자인 직장인 박준오(33·남)씨는 담뱃값 그림이 공개되자 “그림을 보면 확실히 담배를 피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비흡연자에서 흡연자로 넘어갈 확률은 줄어들 것 같다”면서 “그러나 이미 흡연자인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강력한 수준을 도입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비흡연자 측에서는 경고그림을 이미 도입한 해외보다 혐오감 수준이 높지 않아 효과성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나마 이번에 공개된 담뱃갑 경고그림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후보그림 중 효과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 관계자는 “한국형 경고그림은 면적이 담뱃갑의 30%에 불과해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수준으로 노출 면적이 작은 만큼 혐오감 강도는 오히려 외국보다 높아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 흡연파
반면 흡연파는 “경고 그림이 너무 끔찍해 기분이 상할 뿐 아니라 효과도 미미하다”고 성토했다. 또 담뱃값 인상 등 충분히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격리받는 느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흡연자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 이연익 대표는 “경고 그림이 지나치게 혐오감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있었는데 발표된 시안을 보니 너무 혐오스러운 것 같다”면서 “보건복지부를 항의 방문해서 단서조항을 제대로 지켰는지 따져볼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흡연자들을 대상으로 자체 설문조사를 해보니 경고 그림이 들어가도 담배를 계속 피우겠다는 사람이 90% 이상이었다”면서 “가격 인상에 비해 금연 효과도 떨어지는 경고 그림을 왜 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5년째 담배를 피우고 있는 송모(34)씨는 “이미 흡연자들은 담뱃값 인상, 흡연구역 축소 등 피해를 입고 있다”면서 “이번 그림 도입으로 흡연자들에 대한 인식마저 ‘환자’로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담배를 판매하는 업자들도 불만이 상당하다. 한 담배 판매업자는 “혐오스런 경고그림으로 흡연과 전혀 상관없는 담배판매점주들이 무차별적인 시각적, 정신적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여성 비흡연자 등이 편의점 등에서 물품 구입 후 계산할 때 해당 사진들에 무방비로 노출돼 정신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애연가를 자처하는 정모(22)씨는 “우리(흡연자)가 내는 세금이 상당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면서 “마치 사회에서 흡연자들을 격리시키려는 것처럼 보여 기분이 언짢다”고 밝혔다.
악명 높은 태국 담배
한편 비흡연파가 태국의 사례를 들어 경고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강력한 경고사진으로 악명(?)이 높은 태국 담배에 덩달아 관심이 쏠린다.
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고사진을 부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태국 담배를 구입하게 된 이들의 깜짝 놀랄 구매 후기는 유명하다. 담뱃갑마다 부착된 경고그림들이 충격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흡연으로 손상된 치아, 목에 큰 구멍을 달고 있는 사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와 썩어 들어가는 폐 등 그야말로 ‘살벌’하다.
더구나 담배를 피우다 숨진 사람의 시신 사진까지 부착돼 있다. 태국은 이전에도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사진들을 담뱃갑에 부착해왔지만, 몇 년 전부터는 아예 담뱃갑의 85% 가량을 경고그림으로 채워 높은 효과를 보고 있다.
실제로 태국의 흡연율은 지난 2001년 25.5%, 2011년 21.4%, 지난 2013년 18.4% 등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금연운동 단체 한 관계자는 “경고 그림을 부착하려면 태국의 사례처럼 강력하게 해야 한다”면서 “어설프게 하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흡연자에 대한 흡연자에 대한 안 좋은 인식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