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청와대 간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 선전포고는 늘 그랬듯이 김 대표가 했다. 당 대표로서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는 이른바 ‘옥새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친박계뿐만 아니라 비박계에서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 대표가 청와대에 반기를 들고 이틀을 못 버티는 ‘30시간의 법칙’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김 대표는 30시간 법칙을 깨고 청와대에 반 무릎을 꿇었다. 김 대표는 추경호·정종섭·이인성 진박 후보에 대표 직인을 찍었지만 청와대 발 아웃당한 무소속 출마자 이재오·유승민 지역은 무공천으로 남겨뒀다. 절반의 성공이다. 타협과 협상을 최대 무기로 삼았던 김 대표지만 서서히 ‘부산사나이’로서 반골기질이 살아나고 있다. 무대(무성대장)의 ‘진짜 전쟁’속으로 들어가보자.
- 김무성 ‘30시간 법칙’깬 옥새 반란後 대표직사퇴
- “아직 대통령과 루비콘강 건너지 않아” 맞짱 예고

친박 ‘공천패권주의’ 맞서 실리 챙긴 ‘무대’
사실 김 대표는 지난 2014년 10월 중국 상하이 발 ‘개헌론’을 꺼냈다가 하루 만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하며 체면을 구겼다. 올해 5월 ‘국회법 파동’때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묵인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비박계 정두언 의원은 ‘30시간 법칙’이라고 조롱했다. 어떤 중대 언행을 해도 30시간 이내에 입장이 바뀐다는 의미다.
그러나 김 대표는 공천 막판 청와대와 친박계가 내려꽂은 진박계(진짜 친박) 5인방 지역에 ‘공천 추인’을 거부하면서 반기를 들었다. 청와대와 친박계 입장에서는 명백한 항명이자 하극상이었다. 여권 내에서는 ‘청와대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평했다. 한편에서는 ‘쇼’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30시간의 법칙을 깨고 김 대표는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배신자’로 낙인찍은 유승민 지역구를 무공천했다. 대신 추경호·정종섭 청와대 충신들은 도장을 찍어 선거에 나설 수 있게 했다.
‘절반의 성공’이다. 김 대표는 ‘상향식공천’을 주장했던 명분은 다소 잃었지만 실리는 챙겼다는 평가다. 비박계 대학살 공천에 수수방관하면서 ‘무졸’(무대졸병)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막판 ‘옥새반란’을 통해 비박계 상징인 두 인사를 잠재적 우군으로 삼았다. 또한 지역구 253개 곳 중 비박계는 친박 130, 중립 20개 지역을 제외한 100석 정도를 얻었다. 그 중 김무성계로 꼽히는 후보자만 50여명에 달한다. 일면 ‘어부지리’측면이 있지만 비박계 당 대표로서 친박계의 ‘공천 패권주의’에 맞서 존재감을 회복한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친박 측의 반응은 살벌했다. 친박계는 ‘총선 이후 가만있지 않겠다’며 압박을 넘어 협박했다. 청와대 역시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자기정치한다’며 언제든지 내칠 기세다. 반면 김 대표는 ‘옥새 반란’이라는 신의 한 수를 둔 이상 더는 물러설 뜻이 없어 보인다.
김 대표는 오히려 선거일 직전 ‘당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며 재차 친박계의 허를 찔렀다. 당초 친박계는 총선 후 어떤 빌미를 잡고서라도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사퇴’카드를 먼저 꺼내들면서 조기전대가 총선 후 당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게 됐다. 반면 김 대표는 표면상 선거 결과에 따른 책임감에서도 자유롭게 됐다. 또한 20대 국회 출범과 함께 친박·비박계는 총선 후폭풍에 의한 정면충돌도 피할 수 있게 됐다.
‘대표직 사퇴’ 양수겸장(兩手兼將) 카드
당장 친박계에서는 김 대표 사퇴가 차기대권을 위한 수순 밟기 아니냐고 의심했다. 임기가 올해 7월인데 차기 대선후보로 나서려면 선거일 1년6개월 전인 6월 중순까지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7월까지 임기를 다 채울 수도 없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3월 29일 관훈토론회에서 차기 대권도전에 대해선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 “부족한 점이 많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려면 당에 들어와 경선을 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차기 대권 도전보다는 당내 친김 세력 구축과 대중 인지도 제고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선거가 시작되자마자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을 꼼꼼하게 누비는 배경이기도 하다.
김 대표가 물러나면 현행 당헌당규상 친박 원유철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전대를 치러야 한다. 나머지 최고위원들도 물러날 공산이 높다. 6월 조기전대 전까지 친박 임시 지도부가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점은 유승민과 친유승민계 그리고 비박 무소속 후보 일부가 생환할 때다. 친박계는 ‘복당불가’ 방침이다. 비박계와 친박계 간 한바탕 혈전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물론 김 대표는 계파 갈등의 도가니 속에 무풍지대에 서 있다. 자신의 정치적 목표에 맞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을 하면 된다.
현재 유력한 비박계 당 대표 후보로는 무소속 유승민 의원과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 등이 거론된다. 친박계는 최경환, 홍문종, 원유철, 정갑윤 의원 등의 당 대표 도전이 점쳐진다. 유 의원이 출마하려면 복당이 전제돼야 한다. 친박계가 ‘복당 불가’를 외치는 또 다른 이유다.
총선 후 사퇴를 선언한 김 대표는 책임론과 복당문제에서 자유스럽다. 한마디로 양손에 떡을 쥔 셈이다. 유 의원을 비롯해 비박계 인사들의 복당부터 조기전대에 도전하는 비박계 후보를 측면에서 지원해도 된다. 유 의원이나 이 의원이 복당하면 당내 최대 우군이 생기는 셈이고 당권에 도전해 당 지도부에 입성하면 금상첨화다.
특히 유 의원은 당 대표가 될 경우 차기 대권 도전을 할 수 없게 된다. (대선후보 당 대표 겸직금지 조항) 반대로 손을 놓은 채 있으면서 친박계가 당권을 잡아도 차기 대권 주자가 없다는 점에서 대권 레이스도 크게 걱정할 일이 없다. 김 대표는 최근 복당관련 “대구시당에 넘기기로 했다”고 유 의원을 견제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비박계에서 출마한 후보가 조기전대에서 선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봐왔듯 박 대통령 역시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청와대와 친박계는 임기말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라도 당권 장악에 사활을 걸 전망이다. 관건은 자칫 비박계와 친박계가 나뉘어 당이 쪼개질 경우다. 이때 김 대표의 정치적 스탠스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무대, 청와대·친박 향한 최대 무기는…
김 대표는 ‘옥새 투쟁’으로 청와대와 정면충돌했다. 이에 관훈토론회에서 ‘대통령과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 대표는 “강을 아직 건너지 않았다”고 받아쳤다. 표면상 대통령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양새지만 향후 청와대와 대충돌이 읽히는 대목이다. 개헌론, 옥새파동을 겪으면서 반기(反旗)는 박 대통령에게 ‘몸풀기’일 뿐 강을 건널 정도로 세지는 않았다는 해석도 할 수 있다.
문제는 박 대통령과의 관계설정이다. 김 대표가 총선 후 현재권력에 꺼낼 카드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격할 무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친박 비박 갈등 격화나 차기 대권 경쟁 조기과열, 청와대 발 ‘김무성 죽이기’가 노골화 될 경우 ‘대통령 탈당’주장부터 ‘개헌카드’, ‘탈당 후 제3신당’ 창당 등 청와대와 친박을 고립무원의 길을 걷게 할 수 있다. 김무성의 ‘진짜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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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