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실태 보고서]
직장인男 “5명 중 1명 직장 성희롱 경험”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직장 생활의 성희롱·성폭력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으레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한 피해자를 여성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남성 직장인의 상당수도 성희롱을 겪었다는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성희롱의 사각지대인 ‘직장 내 남성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6000여 명의 직장인에게 ‘직장 성희롱 및 폭력 분석’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성희롱을 겪었다는 응답이 여성 15.9%, 남성 22%로 남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 관련 문제에서는 보통 피해자를 여성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번 연구조사 결과는 남성 또한 충분히 직장 내 성희롱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제조업 직종에서 일하는 남성 직장인 A 씨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서유정 부연구위원의 ‘직장 성희롱 및 폭력 분석’ 연구에서 ‘직장 성희롱’ 피해 사례를 털어놓았다. 그는 “아내가 외국인인데, 직장 상사가 아내와의 성관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며 “대답을 거부했는데 아내를 ‘백마’라고 부르고, 나를 ‘백마 탄 남자’라고 불렀다. 직장 상사라서 웃어넘겼지만 굴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인천 남동구 소재 초등학교 교사 B씨는 회식 자리에서 두 명의 남교사가 성희롱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여자 교장은 회식 자리에서 남교사들을 양 쪽에 앉혀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게 강요했다.
위 사례처럼 최근 남성 직장인들도 직장 내 성희롱에 다수 노출되고 있다. 특히 이번 서유정 부연구위원의 조사는 이례적으로 여성에 비해 남성 노동자의 언어적·육체적 성희롱 피해 응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서유정 부연구위원의 연구 자료는 해당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여성 민우회가 연구 자료에 대해 문의하자, 서유정 부연구위원은 “해당 연구 자료는 아직 정식 발표되진 않았다”라며 “개인이 분석한 자료를 모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통계에 관한 정확한 사실이 확인되지는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이번 조사는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던 남성 직장 성희롱 피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시켰다.
성희롱 당해도 숨는 남성들
올해 1월 동영상 전문 커뮤니티 유튜브(Youtube)를 타고 한 영상이 퍼졌다. 이 해외 영상은 여성이 남성을 성희롱 할 때 시민들의 반응과 반대로 남성이 여성을 성희롱할 때 시민들의 반응을 실험했다.
그 결과, 남성이 여성을 성희롱할 때에는 적극적인 시민의 개입이 있는 반면, 여성이 남성을 성희롱할 때에는 무관심 또는 좋지 않냐는 반응이 나타났다. 한 누리꾼은 “사회적인 인식이 그렇다.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면 남자에겐 지질하다는 둥,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면서 젠더가 여자로 바뀌면 성희롱이 된다.”라며 “성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시작된 여권신장이 이제는 역전돼 남성에 대한 성차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가 성희롱을 당했다고 하소연하면 ‘무슨 남자가~’라며 핀잔부터 돌아온다.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남자답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성희롱 피해를 입은 남성들은 체면 상 신고조차 하기 어렵다.
서유정 부연구위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간 조사에서 남성 노동자들이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아예 인식 못하거나 꺼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성폭력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부족하거나 사회적 지위에서 약자로 인식되는 것을 피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국 성폭력 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김보화 씨는 “직장 내 성희롱에선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보다 직장 내 권력관계 영향이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
성희롱 대책은?
고용노동부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을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해 성적인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불쾌함을 느끼게 하거나 이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 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라고 명시한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의 피해자는 성별 상관없이 모두 될 수 있고 남성 간의 성희롱이나 여성 간의 성희롱 등 동성 간에도 성립한다고 설명한다.
성희롱은 성적 수치심,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나 말만으로도 성립될 수 있다.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라면 성희롱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더라도 성적 침해 행위가 명백한 경우에는 성희롱으로 판단한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상담을 원할 경우 국번 없이 1644-3119로 전화하면 된다.
고용노동부는 2012년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인 ‘법 안 지키는 일터 신고해~앱!’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접수된 성희롱 신고는 가까운 지방고용노동관서의 전담 근로감독관에게 연결돼 평일에는 저녁 10시, 토요일은 저녁 6시까지 이메일을 통해 실시간 상담이 진행된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21일 초·중·고교에 ‘학교 성폭력 사안 처리 매뉴얼'을 새로 제작·보급한다고 밝혔다. 새 매뉴얼에는 학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언어적 성희롱을 비롯해 직·간접적 성폭력의 사례와 유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특히 이번 매뉴얼에는 교직원 상호간 성폭력 사건, 학생이 교사에게 성폭력을 가했을 때의 대처 방법을 담았다.
[직장 내 성희롱 유형 및 대처 방법]
성희롱 유형
◆ 시각적 성희롱
- 자신의 성적 신체 일부를 고의적으로 노출하거나 보여주는 행위
- 음란한 매체를 게시하거나 보여주는 행위
◆ 언어적 성희롱
- 음란한 농담이나 성적관계를 강요, 회유하는 행위
- 상대방에게 성적 사실 관계 등 정보를 묻는 행위
- 회식자리에서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
◆ 육체적 성희롱
- 입맞춤이나 포옹, 껴안는 등의 신체적 접촉 행위
- 가슴, 엉덩이 등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는 행위
대처 방법
- 사업주에게 성희롱 사실을 알리기
- 만약 요청에도 사업자가 징계를 내리지 않거나 불응한다면 고용노동부에 진정서 제출하기
- 고용노동부홈페이지(www.moel. go.kr) →민원마당 →민원신청 →기타진정신청서(내용작성) → 신청클릭(회원가입 또는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해야 작성 가능)
- 진정서가 접수되면 고용노동부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아야 함
- 만약을 대비해서 증거(녹음, 문자메시지, 목격자(동료) 진술 등) 수집해두기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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