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준 높은 공연 요구에 바쁜 시간 쪼개 과외까지”
하루 12시간 근무할 때 많아…시간외 수당은 全無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인터넷 종합쇼핑몰 ‘인터파크’에게 10월 1일은 의미가 깊다. 이 날은 인터파크의 창립기념일이자, 기념행사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는 더욱 특별하다. 이 행사에서 직원들이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장기자랑’ 코너가 마련돼 있어서다. 그런데 행사를 준비하는 직원들의 표정을 들여다보면 마냥 밝지만은 않다. 모두가 즐겨야하는 회사의 축제임에도 곳곳에서 탄식이 들린다. 어찌된 사연일까. [일요서울]이 인터파크 직원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터파크 직원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매년 창립기념일 행사를 위해 장기자랑을 준비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이 직원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회사의 장기자랑이 아니다. 거의 프로 공연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회사에서 높은 수준의 장기를 요구하는 통에 직원들은 상당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직원에 따르면 창립기념일 행사는 총 3부로 구성되며 1부에는 각종 시상, 2부 장기자랑, 3부 축하공연 및 장기자랑 시상 등 순으로 진행된다. 총 4시간이 넘는 큰 행사다.
직원들은 2부에 진행되는 장기자랑을 어설프게 준비했다가 눈 밖에 날까 행사 수개월 전부터 ‘빡세게’ 준비한다. 춤, 노래, 난타, 악기연주 등 그야말로 없는 장기도 만들어 내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일부 직원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전문학원에서 레슨을 받기도 한다. 딱히 장기랄 게 없는 탓에 학원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연습은 대부분 퇴근 후나 주말에 이뤄진다. 업무시간을 따로 빼주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자랑 스트레스” 증언 속출
기자는 이 같은 고충을 느끼는 전·현직 직원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봤다. 공교롭게도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하나같이 장기자랑 얘기에 손사래부터 쳤다.
인터파크를 퇴사한 A씨는 “장기자랑 준비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그는 “인터넷 사이트에 해당 내용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수 십 명이 된다. 회사 직원들도 다 알지만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A씨가 알려준 기업평가 사이트 ‘잡플래닛’에 접속해봤다. 인터파크를 검색해 기업리뷰를 살펴보니 실제로 다수의 직원들이 장기자랑 때문에 고통 받고 있었다.
비판은 신랄했다. “일 년에 한번 창립기념일에 윗사람들은 즐기지만 그들을 위해 재롱잔치를 한두 달 준비해야한다(그렇다고 업무가 줄어드는 건 아님)”, “재롱잔치(장기자랑) 제발 없애고 창립기념일에 쉬고 싶다”, “매년 장기자랑을 블루스퀘어에서 함. 그 비용으로 사원들에게 복지나 늘려줬으면. 장기자랑은 막내들 위주로 나가는데 신입이 잘 안 들어오기 때문에 몇 년째 장기자랑 나가는 사람들 많음. 장기자랑 전 한달 퇴근 후와 주말 반납해야함” 등 수많은 증언들로 도배돼 있었다.
기자가 인터뷰한 전·현직 직원과 잡플래닛에 게재돼 있는 글들을 종합해보면, 직원들이 ‘속앓이’를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장기자랑’과 ‘야근’으로 압축된다. 앞서의 A씨는 “인터파크는 일부 계열사를 포함해서 공식적으로 아침 8시까지 출근이다. 말이 8시지 사실상 7시30분까지는 가야한다”고 했다.
이 내용 또한 같은 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증언이다. 일부 글에서는 회사 대표이사가 순찰을 돈다는 확인되지 않은(?) 폭로도 이어졌다.
내용을 살펴보면 “8시 출근, 무조건야근, 8시 출근해서 9시까지 노는데 왜 8시 출근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무조건 야근을 해야 하는 시스템도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지각하면 팀 전체 점수가 깎임. 타사에 비해 업무량의 2-3배. 평균 9시 퇴근. 야근 수당 없음” 등이다.
8시 출근, 퇴근은 미정
시간외 수당은 지급되지 않는다. 야근으로 인한 정당한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는 마당에 휴일을 쪼개 행사준비를 해야 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해도 너무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야근이야 어쩔 수 없지만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건 엄연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일 근로시간은 8시간을 넘을 수 없으며, 1주일 40시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야근이 필요할 경우 합의하에 주당 12시간까지 연장근무가 가능하다. 이 때는 당연히 시간외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물론 ‘야근이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다.
이 때문일까.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도는 지극히 낮은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이 회사의 분기보고서를 보면 남녀 평균 근속연수는 2년 10개월(지난해 3분기 기준)에 불과하다. 평균적으로 3년을 못 채우고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셈이다.
인터파크 측은 임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축제를 즐기는 것은 회사의 전통이자 문화이기 때문에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딱히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장기자랑이 프로 수준인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회사가 압박을 하는 게 아니다. 서로 경쟁을 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나 피로가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 일환으로 외부 가수 등을 초청해 즐기는 문화로 바꾸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조기출근 및 야근, 시간외 수당 미지급 등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그러나 회사가 일부러 안 준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시간외 수당을 신청하면 지급한다. 본인들이 신청을 안 하는 것일 뿐”이라며 자발적으로 하는 야근이지 회사의 강요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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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