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더민주 재접수 작전 시동…“김종인을 枯死 시켜라”
문재인의 더민주 재접수 작전 시동…“김종인을 枯死 시켜라”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6-03-27 02:04
  • 승인 2016.03.27 02:04
  • 호수 1143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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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 대표 공천서 드러난 친노 본색
▲ photo@ilyoseoul.co.kr

총선 후 김종인 몰아내기의 전초전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친노 본색’이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주주인 친노계가 ‘바지 사장’ 김종인 대표의 경영권 행사가 일정 수위를 넘자 일제히 주주권을 행사해 무력화 시킨 뒤 일단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문재인 전 대표가 이끄는 친노계는 김 대표가 선대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당을 ‘우(右)클릭’ 하는 발언을 쏟아냈을 때 침묵하거나 때론 동조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의 ‘햇볕정책 수정론’ ‘북한 궤멸론’ ‘노조의 비(非)정치화’ 주장에 친노계는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발언들이 ‘산토끼’(중도층 유권자)를 잡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친노계가 용납할 수 있는 범위는 거기까지였다. 김 전 대표가 ‘말’로써 당의 색깔을 바꾸려는 데는 간섭을 하지 않았지만 실제 ‘행동’에 나서자 집단적으로 반발하며 단숨에 제압해버렸다. 4·13 총선 비례대표 공천 파동이 상징적 사건이다.

김 대표는 3월 19일 심야 비대위 회의에서 자신을 비례대표 후보 2번으로 ‘셀프공천’했다. 또 그가 영입한 교수 등을 당선권에 배치한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비대위에서 의결하는 데 앞장섰다. 비례대표 후보를 당선가능성 기준으로 A·B·C 그룹으로 나눴다. 당헌·당규에도 규정이 없는 전횡이었다.

벌떼처럼 김종인 공격하다

당시 김 대표는 자신이 2번 후보를 받는 데 대해 비대위원들에게 “더민주가 총선 이후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선 국회의원으로서의 내 역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비상대권을 거머쥔 김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진로를 트기 위해 ‘사심(私心)공천’을 한 거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친노계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광역·기초단체장 등이 주축인 당 중앙위는 다음날 김종인 비례대표안을 뒤집어 버렸다. 김 대표의 비례대표 후보 순번을 당선 마지노선인 14번으로 바꿨고, 다른 후보들의 명단도 흔들어 다시 배치했다. 김종인 공천안에서 빠졌던 친노, 운동권이 상당수 투입됐다. 당헌·당규엔 비례대표 공천권한을 당 대표와 중앙위가 나눠 갖도록 돼 있다.

이에 김 대표는 당무를 거부하면서 ‘대표직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다. 비례대표 2번 셀프공천을 ‘노욕’(老慾)으로 몰아붙이는 친노, 운동권들에게서 상당한 모욕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들이 지역구 공천이 끝나자 자신을 ‘토사구팽’(兎死狗烹)하려 든다는 위기감을 감추지 않았다. 양 측이 극한 대치를 이어가면서 선거를 눈앞에 두고 비대위와 선대위가 와해될 지경에 처했다는 위기감이 당내에 감돌았다.

이런 사태를 단숨에 해결한 사람이 경남 양산에 머물고 있던 문재인 전 대표다. 문 전 대표는 김 대표의 자택을 찾아 45분 동안 회동한 자리서 총선 승리를 위해 대표직을 계속 수행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비대위원들이 심야에 김 대표 자택을 찾아 “잘 모시지 못해 송구하다”고 고개를 조아리기도 했다.

김 대표는 마지못한 듯 22일 비대위에 참석, 당무를 처리하면서 보이콧을 접었다. 결국 친노계는 김종인 비례대표 2번을 지켜주는 대신 당선권 후보군에 ‘문재인 사람들’을 전진배치하는 선에서 갈등을 봉합했다.

친노 기득권 지켜낸 뒤
일제히 퇴각

 문 전 대표가 나서 상황을 정리하면서 문제를 해결하자 정치권에선 “역시 문재인이 ‘오너’, 김종인은 ‘바지 사장’이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친노계 비대위원들도 처음에 김 전 대표에게 겨눴던 칼을 거둬들이면서 ‘보스’(문재인)의 묵시적 지시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외의 친노 계열 인사들도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를 했다. 김종인 표 비례대표 공천안이 나왔을 때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하다가 문 전 대표의 교통정리가 시작되자 일제히 김 대표를 두둔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처음에 “김 대표가 ‘법정관리인’으로 초빙됐으나 당규 개정을 통해 ‘대표이사’가 됐다”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영입된 절대계몽군주’, ‘고약한 선택’이라는 용어도 동원했다. 그러다 친노에서 “일단 김종인을 지키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자 “2번에 올렸다가 14번으로 내렸다가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공’은 잊고 심한 욕설이 퍼부어지는 것도 그렇다”며 옹호했다.

문성근 국민의명령 상임위원장도 처음엔 “말 뒤집고 셀프 공천한 걸 비판하는 게 모독이면 귀하(김종인)의 정무적 판단에 기둥뿌리 거듭 뽑힌 지지자는 어떻겠냐. 후안무치도 유분수”라고 했다. 이 말은 나중에 “김 대표의 비례 2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로 바뀌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 역시 “비례 2번이면 설사 선거에 참패를 해도 자신은 살아남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했다가 “이른바 운동권 쳐내고, 우로 1클릭해야 중도층을 장악해 새누리를 이길 수 있다는 거죠”라고 수위조절을 했다.

결국 김 대표는 친노의 조직적인 공격에 이은 유화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당을 장악하면서 붙었던 ‘대장’ ‘차르’ 같은 호칭이 공허해졌으며, 일각에서 일었던 ‘김종인 대망론’도 허상이 돼가고 있다.

김 대표는 당초 지역구 공천에선 문 전 대표를 위해 ‘친노의 세대교체’를 해준 뒤, 자신은 비례대표 공천을 통해 ‘김종인사단’을 구축하는 야심을 가졌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지역구 공천과정에서 이해찬 전 총리 같은, 문 전 대표에게 껄끄러운 원로들을 쳐내는 대신 소장파 친노들은 대거 살렸다. 이 때문에 ‘친문’이 ‘친노’를 대체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단순한 통계로만 보면 이번 지역구 공천에서 친노 세력은 수적으로 약화됐다. 전체 235명의 공천자 가운데 비노 계열이 160~190명(70~80%)가량에 이르는 걸로 분석된다. 반면, 친노는 60명(25%) 안팎이다.

그러나 친노계를 더 세밀히 살펴보면 범 친노 가운데 친문계가 압도적으로 많다. 원래 문 전 대표와 가까웠던 후보가 25명가량, 새로 영입한 인물이 15명가량 공천을 받았다. 반면, 범 친노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정세균계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특히 선거가 끝나면 친문계의 확장성은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높다.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 가운데 한 명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미 떨어져나갔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참모 출신들도 공천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따라서 선거 이후 당 대표 경선이 시작되면 총선에서 승리한 현역 의원들이 ‘차기 정권’에 줄을 서면서 친문 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이 경우 문 전 대표는 차기 대선후보 경선을 관리할 지도부를 친문 인물들로 채워 탄탄한 대권가도를 달릴 수 있다.

문재인-김종인 밀약
폐기 수순

김 대표로선 문 전 대표를 위해 ‘차도살인’(借刀殺人)을 해주는 대신 비례대표 공천으로 자신의 세력을 만든다는 구상이었지만 친노계, 더 정확하게는 친문계의 친위쿠데타로 사실상 무산됐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총선 이후의 역할을 모색할 태세다. 본인이 ‘킹메이커’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차기 대권도전을 시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종인사단 구성에 사실상 실패한 마당에 선거가 끝나면 김종인의 효용가치는 소멸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김 대표의 부인인 김미경 씨는 문 대표가 자택으로 찾아 왔을 때 “처음에 비대위원장을 맡길 때 ‘(친노계의 저항을) 책임지고 다 막아준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이 말은 친노를 쳐주는 대신, 당의 외연 확장을 하겠다는 김 대표의 제안을 문 전 대표가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된다. ‘문재인-김종인 밀약설’의 한 단면이 드러난 셈이다.

김 대표의 여야를 넘나든 경륜, 배짱, 야망이 친노계(친문계)가 구사하는 운동권식 상황 대처 방식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친노 일각에서 문 전 대표를 김 대표가 이끄는 선대위의 공동위원장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인 일도 “이젠 우리가 선거를 이끌고 결과에 책임을 지겠으니 김종인은 그만 뒤로 물러나라”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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