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한 목소리 … 시기만 남았다
여야가 한 목소리 … 시기만 남았다
  • 이상봉 
  • 입력 2004-05-13 09:00
  • 승인 2004.05.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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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곳 저곳에서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이 공식적으로 ‘4년 중임제 개헌’을 제기하자마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이에 화답했다. 물론 최악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개헌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일자 둘 다 모두 발언 자체를 취소했지만, 지난 87년 시작된 ‘대통령 5년 단임제’ 권력구조가 한계에 봉착됐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찬성하는 듯하다. 정치권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권력 구조 개헌 논의의 다양한 측면을 알아본다.지난 1987년 특수 상황에서 시작된 ‘5년 단임제’는 17년이 흐른 현시점에서 그 효용성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우선 ‘독재’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대통령 선거를 5년마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선거를 4년마다 함에 따라 그 정치적 경제적 손실에 대한 비판이 자주 제기되었다. 또한 국회 다수 권력과 행정부 권력 사이의 잦은 마찰도 이런 개헌 논의에 불을 지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열린우리당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이 이번 강원도 당선자 워크숍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주창했다. “이번 국회는 제 2의 제헌국회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 다음 대선부터는 국회의원 선거와 같이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준비해 2006년 정도에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 시기까지 밝혔다.

하지만 아직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문제도 풀리지 않고, 또 최악의 경제 위기와 이라크, FTA 문제, 새만금 문제 등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서 권력 구조 개편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당내외의 비판, 청와대의 불편한 심기, 사회 전반의 분위기 등이 잇따르자 장 위원은 말을 바꾸었다. “언론 보도가 잘못되었다. 나는 ‘4년 중임제’를 정색하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국회기능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먼저 국회에 ‘헌법 연구회’ 같은 것을 만들고 여야합의에 의해 대통령 권력 구조 개헌 등의 문제를 다루고, 그것도 조용하게 1년 정도 연구하자는 것이었지 당장 ‘4년 중임제’를 밀어붙이자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물론 권력 구조 개헌에는 열린우리당 다수 의원들도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탄핵 기각도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나 우리당 공식 입장은 지극히 냉소적이었다.

우리당 대변인실 고위 관계자는 “당의 공식 입장은 없다. 그건 그저 장영달 상임위원의 개인 입장일 뿐이다. 지금은 깨끗한 정치를 위한 정치 개혁이 먼저이다.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당의 공식 ‘기조’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논의 자체에 대해서는 여운을 남겼다. “학자들이라면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중임제 뿐만 아니라 내각제, 이원집정부제도 의견을 모아서 토론할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아직 그런 논의 자체를 공식적으로 표명할 시기나 계기는 되지 못한다”고 분명히 개헌 논의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청와대는 더욱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문희상 대통령 정치 특보는 29일 “왜 지금 느닷없이 개헌 문제를 꺼내느냐. 개헌 논의의 적기는 2006년이라고 본다. ‘4년 중임’ 개헌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은 대통령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어서 논의가 편향될 수 있다.

또 정치권이 17대 개원 직후부터 개헌 논의에 함몰되면 중요한 국정 과제가 뒷전으로 밀려날 우려가 있다”고 개헌 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그 역시 ‘시기’를 비판한 것이지 개헌 논의 자체에 대해서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2006년에 개헌논의가 공식화되면 ‘4년 중임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다양한 방안을 놓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7대 국회 의석상 정말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박근혜 대표도 개헌에 적극적이다. 박 대표는 27일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는 게 평소의 소신이고 그 소신에 변함이 없다”면서 “당내에서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공론화를 하겠다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힌 대목이다. 하지만 박 대표의 소신도 개헌 ‘시기’에 부정적인 여론 앞에서 굴절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 배용수 수석 부대변인은 “언론 보도가 잘못된 것이다. 박근혜 대표가 과거에 개인적 자격으로 개헌 주장을 한 적은 있어도 현재 대표로서 그런 문제는 당내 공식적 절차와 토론 과정을 거쳐서 해야 하는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공식 입장은 개헌은 논의 자체가 부적절하다. 지금은 민생과 경제 살리기에 전념할 때이다. 국민을 우선 잘 살게 하는 것이 우리 당의 목표이다. 박 대표의 공식적인 의견은, 장기적으로 개헌 논의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라고 말해, 역시 ‘시기’가 부적절하지만 논의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말했다. 이런 여러 가지 개헌 당사자나 대다수의 언론 태도를 종합해보면 결론은 비교적 간단하게 도출된다. 즉, 이미 ‘5년 단임제’는 역사적 시효가 다 되었다.

어떤 측면으로든 개헌 논의는 필요한데, 지금은 민생과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므로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개헌 논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도 이런 결론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 “아직 개헌 거론 시기는 아니다. 다만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의 폐해를 합리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 관점으로 연구해 볼 가치는 있다. 하지만 여야 국회의원이나 국민 절대 다수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 우선 민생과 국제 외교 문제 등등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 개헌 문제를 전면에 놓으면 또 다시 정치 정국으로 바뀌고, 그럼 작년처럼 1년 내내 민생을 방치하게 될 것이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고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이렇게 모든 정치 관계자들이 개헌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5년 단임제’가 이미 여러 측면에서 한계를 가진 권력구조로 전락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억지로 논의 자체를 막고 있지만 개헌 논의는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 계기만 주어지면 폭발할 뇌관을 늘 가지고 있는 사안이라 할 것이다. 또한 중임제 개헌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내부 권력 투쟁도 미묘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박근혜 대표나, 김근태-정동영 양강 체제와 가까운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이 직접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는 것도 이들의 차기 대권 행보 혹은 그 이후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대권 경쟁은 시작된 것이다.

이상봉  pneuma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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