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지 몰랐다”면 살인죄 아니다?
“죽을지 몰랐다”면 살인죄 아니다?
  • 변지영 기자
  • 입력 2016-03-21 11:24
  • 승인 2016.03.21 11:24
  • 호수 1142
  • 2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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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의 양형 기준 높여야

“제 2의 원영이 사건 막아야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가족의 잔혹한 학대와 방치로 아동이 사망하는 사건이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아동학대 실태 파악과 예방시스템 구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장기간 학대 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살인죄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상당수의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과실치사 혐의로 그친다. 양형 기준이 모호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처벌이 아니라 양형 기준 자체를 검토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는 벌레로 변해 숨어 지내는 그레고르가 등장한다. 그레고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영업사원으로 경제적 가장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벌레로 변하게 된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에 갇혀 지낸다. 가장으로서 경제력을 잃은 그는 가족으로부터 소외감과 박탈감을 겪게 된다. 방 밖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그레고르의 아버지는 그에게 사과를 던진다. 충격을 받은 그레고르는 방으로 돌아와 동생이 가져다 준 밥도 못 먹은 채 쓸쓸히 죽게 된다. 집 안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렇다면 그레고르의 죽음에 대해 가족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레고르의 가족은 법적으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부작위 살인혐의나 방조죄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이 죽어도 살인에 대한 법적 처벌 기준은 제각각이다. 과실치사죄부터 살인죄까지 그 사건의 정황에 따라 처벌 규정이 다르며 물론 형량도 달라진다.
 
왜 살인을 해도 살인죄
적용 기준은 다를까?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원영(7)군 사망 사건의 가해자인 계모와 친부에게 법원에서 살인죄를 적용할 방침이다. 일명 평택 락스 계모사건으로 불리는 이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계기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에 대한 법원의 재판이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형법(2501)에서는 살인죄를 고의로 사람의 목숨을 끊어 살해하는 행위로 규정짓고 있다. 살인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가해자에게 살해 고의가 있었느냐(작위, 부작위)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만약 사람을 살해했더라도 살인의 고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고 상해치사죄나 과실치사죄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 고의라는 인식적 과실증거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살인의 의도가 있었는지는 행위자의 심적인 판단이다. 때문에 행위자의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므로 피고인은 살인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직접적인 살해 의도는 없었을지라도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역시 작위, 부작위로 나뉘는데 능동적인 타격 행위가 있었다면 작위, 죽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위험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고 방치하는 등의 수동적 타격 행위였다면 부작위에 해당한다.
 
이를 감안하면 평택 락스 계모사건의 가해자인 계모와 친부는 각각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부작위 살인죄를 적용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동학대 사망사건 관련 양형기준 모호
 
지난 2월 초 친딸을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방치했던 부천 목사부부사건의 두 가해자는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로 판결났다. 검찰에서 폭행은 5시간이 전부였고 체벌이 끝난 후 잠을 자다 사망했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숨진 딸이 장기적인 심리적 방치 및 학대를 받았다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살인죄를 적용할 기준 자체가 모호한 상태다.
 
실제로 법원 양형 조사 결과, 2000년부터 2014년도까지의 아동학대 사망사건 판결을 보면 20건 중 1건 만이 살인죄로 적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관해 사법기관은 관행적으로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왔다. 2013년 국민의 분노를 산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살인 사건에 대해 부산고등법원에서 이례적으로 살인죄를 선고한 것이 우리 사회 아동학대 범죄의 새로운 기준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아동 학대 범죄에 대한 양형규정이 너무 모호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아동학대 치사 범죄 양형기준은 4~7년으로 살인죄 양형인 10~16년보다 훨씬 낮다. 형량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국민의 법 감정과의 괴리도 심하다. 국민의 감정과 법원의 판결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형량을 무겁게 내릴 관련 입법이 미비하기 때문이라는 게 한 법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동학대사건 방지 국가 차원 시스템 마련해야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성인 사망사건과 달리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또 부모라는 위계적 권력을 남용하여 피해 아동에게 지속적으로 학대가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 아동 학대를 가정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국가차원에서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평택 락스 계모 사건에서도 신군이 학대를 받는 동안 아동 보호소에서 아이를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강제수사권이 없어 구조에 실패했다. 경찰에서는 기초수사를 철저히 해 가해자의 진술을 받아내야 한다. 또 재판부에서는 부모의 친권을 우호적으로 파악하고 참작해 형을 내리는 온정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정부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2014년부터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보다 더 세밀히 양형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검찰은 부천 목사부부가 위험하지 않은 도구로 손바닥, 종아리 등 치명적이지 않은 부위를 주로 때린 점을 고려해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독일·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흉기가 없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도 살인죄를 적용하며 예외 없이 법정 최고형을 선고한다. 신체 조건이 월등한 성인의 신체는 아동에겐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영국에서는 아동의 심리적 학대도 처벌 할 수 있는 일명 신데렐라법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처벌의 기준이 육체적 학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폭언이나 훈육을 명목으로 한 체벌 또한 포함한다는 점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지난 16신군 사건관련 성명을 내고 아동학대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시스템 마련 촉구를 요청했다. 여성변회는 관계기관 등에 아동학대행위에 대한 엄정한 양형기준 마련 아동학대 예방교육 상시화 아동학대 피해자 지원제도 개선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원영이 사건은 유사한 아동학대 사건이 있었음에도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최근 아동·보호 대책들이 주먹구구식 대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끊임없이 사회적 각성을 고취하고 관련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bjy-0211@ilyoseoul.co.kr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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