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니까 퇴사하라고? 말도 안 되지 말입니다
사과문 냈지만 사과 아니다? 당사자에 대한 사과 빠져
불매운동 확산 조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 주 포털사이트에 ‘알파고’, ‘이세돌’외에 자주 오르내렸던 검색어가 있었다. 바로 ‘금복주’라는 단어다. 금복주는 경주법주, 참소주, 화랑 등으로 유명한 대구·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주류 업체다. 매년 1300억여 원의 매출을 올리고 이 지역 주류시장 80%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금복주가 검색어 순위에서 상위권을 기록한 건 직장 내 성차별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결혼한다는 이유로 여직원에게 퇴사를 강요해 물의를 빚고 있다. 금복주는 부랴부랴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뿔난 소비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2011년 홍보팀 디자이너로 금복주에 입사한 여직원 A씨는 입사 당시 촉망받던 인재였다. 4년제 대학 출신의 여성 정직원이었고 지난해에는 여성 최초로 주임이 됐다. 창사 이래 58년간 여성 직원으로서는 처음 있는 승진이었다.
승승장구하던 A씨는 곧 신혼집에 행복한 삶을 꾸릴 것을 계획했다. 예식을 두 달 앞둔 지난해 10월, A씨는 기쁨을 나누고자 회사에 결혼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회사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다. 축하는 고사하고 회사 간부로부터 퇴사를 강요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퇴사 거부하자 업무 배제 따돌림 지시
A씨가 한 언론에 폭로한 녹취록에 따르면 대표이사, 인사팀장 등 고위급 임원들은 집단적으로 퇴사를 종용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홍구 대표이사(부사장)는 A씨에게 “규정이나 그런 것은 없다. 하지만 관습상 그렇게 해왔을 뿐”이라며 “여태까지 결혼한 여직원이 회사를 다닌 전례가 없었는데 왜 그걸 깨려고 하냐”며 오히려 다그쳤다.
A씨가 퇴사를 하지 않자 회의에서 배제했고 컴퓨터조차 치워버렸다. 동료직원들은 점심시간에 A씨와 같이 밥 먹으면 질책을 당해 점점 멀리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점점 소외됐다. 심지어 A씨의 결혼식에 몰래 찾아와 축하해준 동료까지 질책을 받았다. A씨는 차라리 본인을 해고하라고 했지만 회사는 “바보가 아닌 이상 법에 저촉되는 일은 안 한다”는 치밀함을 보였다.
인사팀장의 발언은 한술 더 떴다. 그는 “결혼해서 아이 하나 낳으면 유축기(모유 짜는 기구) 들고 화장실에서 짜고 있고…여직원이 다니게 되면 인건비 또 나간다”고 말해 성차별적 발언을 거침없이 해댔다. 그는 그 발언이 문제가 되자 “직장 선배나 인생 선배로서 얘기한 것일 뿐 오해다”며 황당한 변명을 내놓았다.
수십년간 굳어진 갑질의 전통
A씨가 퇴사를 계속해 거부하자 부사장은 “조직과 개인이 다툴 경우 개인이 조직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당보도에 의하면 금복주에서 근무했던 다른 여직원들 역시 “모든 여직원은 그냥 굳이 말해 놓은 건 아닌데 결혼하면 다 사직서를 내고 나가야 된다”고 언급해 성차별적 갑질이 굳어져 있음을 드러냈다.
금복주는 지난 60여 년간 생산직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여직원들이 결혼한 뒤 계속 근무한 일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구지역 여성단체 규탄 기자회견 열어
대구여성회 등 14개 단체로 구성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지난 16일 대구 달서구 금복주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결혼 퇴직을 강요한 사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단체측은 “금복주가 후진적인 결혼 퇴직제를 관례적으로 종용해왔다”며 “결혼하면 그만두는 것이 ‘관례’라며 퇴사를 강요한 것은 기업문화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금복주는 곧바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현재의 의혹에 대해서 관계기관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며 “앞으로 여성근로자의 근무 여건 등 노무 관련 사항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범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사과문에는 정작 피해당사자에 대한 사과가 빠져 있어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게다가 원론적인 해명에 그쳐 면피용 사과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대구·경북지역에서는 불매운동으로 번져가는 모양새다.
결혼·출산·양육은 여성만의 문제 아냐
피해 여직원 A씨는 지난 1월 말 결혼을 앞두고 퇴직 강요를 받았다며 김동구 금복주 회장과 박홍구 대표이사 등을 대구서부고용노동지청에 고소했다. 노동청은 A씨와 회사 측을 상대로 조사할 계획이다. 하지만 김 회장이 해외출장을 이유로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어 사건 해결에 시일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대구서부고용지청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 회장 측에 출석요구서를 보냈고 현재 출석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달 말쯤에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복주 측은 김 회장의 정확한 입국 날짜와 현재 입장 등에 대해 여러 차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결국 답을 주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 인식 수준이 아직도 구시대적이라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권박미숙 팀장은 우리 사회의 직장 내 성차별 사건이 여전히 빈번하다고 말한다. 권 팀장은 “기업이 임금 대비 효율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게 문제”라며 “결혼·출산하는 직장 여성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또, “출산과 육아를 여성만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남성에게도 적극적으로 육아휴직을 장려해 육아에 대한 공동책임의식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사회·전반적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kwoness7738@ilyoseoul.co.kr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