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제’는 6·29산물
‘5년 단임제’는 6·29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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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05-13 09:00
  • 승인 2004.05.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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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5년 단임제’는 87년 6월 ‘호헌철폐 독재타도’ 투쟁에 의해 만들어졌다. 79년 박정희 전대통령의 죽음으로 유신체제가 사라지고, 곧 이어 신군부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5공 세력은 그들의 지배를 영구화하기 위해 ‘내각제’를 추진하려고 했고, 김대중-김영삼 양대 세력을 정점으로 하는 야권은 ‘직선제’를 주장했다. 지금 여론 조사하면 우리 국민들 중의 상당수가 ‘내각제’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내각제=정권 연장 기도’라는 부정적인 인식은 이 시절에 학습된 것으로 보인다.

5공 세력은 전국민적 6월 항쟁에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6·29 선언으로 구체화된다. 그 후 소집된 의회에서 새로이 직선제와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결정되었다. 이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걸친 장기 독재에 혐오를 가진 전국민적 합의 사항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 국민은 누군가 연이어 대통령을 한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기에 전두환 전대통령도 ‘7년 단임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김영삼 양 김씨는 ‘분열’하였고, 결국 국민들의 염원인 ‘군정 종식’은 한 참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후 드라마틱한 정치 과정 끝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차례차례 대통령에 올랐다. 그 가운데 간혹 ‘권력 구조 개헌’에 대한 논의는 있었다. 예컨대 97년 DJP 연합의 조건이 “대통령 당선 2년 후 내각제 개헌”이었지만 당시 김대중 전대통령도 막상 대통령이 되자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고, 또 당시 ‘제왕적 야당 총재’로서 차기 대선에서 당선을 거의 기정사실로 하고 있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찬성할 수 없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5년 단임제’는 지금까지 끌고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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