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20대 총선이 한 달도 채 안 남았지만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 마지막으로 치러지는 총선으로 집권여당은 ‘바늘 공천’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비박계 인사들을 추풍낙엽 신세로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인 유승민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될 경우 수도권과 영남을 중심으로 공천에서 배제된 비박근혜계 무소속 연대 출현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6선의 이해찬 의원이 컷오프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등 여의도에 무소속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바람의 실체를 추적해봤다.
‘구심점’ 부재, 제2의 친박 연대 ‘효과’ 미지수
무소속 연대 바람은 야당보다는 집권여당 발로 나오고 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7차 공천브리핑에서 가히 ‘3.15공천 대학살’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친이계와 비박계 현역 국회의원들을 줄줄이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이날 공천에서 배제된 현역 중진은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5선·서울 은평을)을 필두로 진영(3선·서울 용산), 윤상현(재선·인천 남을), 안상수(재선·인천 중동강화옹진), 조해진(재선·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의원 등이다. 김희국(대구 중남), 류성걸(대구 동갑), 이종훈(경기 성남 분당갑) 등 친유승민계 초선들까지 합하면 이날만 모두 8명이 탈락했다.
임태희·안상수·주호영
무소속 출마
‘막말파문’으로 공천에서 배제된 윤상현 의원을 제외한 다수가 비박계나 친이계 인사들이다. 이종훈 의원, 김희국·류성걸·이종훈 의원은 비박계지만 유승민 의원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지역으로 보면 수도권과 새누리당 텃밭인 영남권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당장 친이계 의원들은 발끈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친이명박계 인사로 유승민 의원과도 친분이 깊은 조해진 의원은 “공산주의 정당이다”, “밀실·보복 집단학살공천”이라고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조 의원은 비박계 무소속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도 “나라를 바로세워서 국민에 희망을 드릴 일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는 힘을 모을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실제로 비박계 공천대학살이 일어난 다음날인 16일 공천 배제됐거나 공천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친MB계 후보자들과 측근인사들이 강남 모처에서 긴급 회동을 가졌다. 참석자에 따르면 친이계 대학살에 대한 성토와 함께 향후 대책을 모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단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은 막후에서 움직이며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신 MB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전 의원이 총대를 멨다.
임 전 의원은 16일 “이번 공천결과는 명백한 정치보복”이라면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친이계 대표적인 인사인 안상수 의원도 재심이 여의치 않으면 무소속 출마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 원외 인사 중 안대희 전대법관 전략공천으로 컷오프된 친이계인 마포갑 강승규 전 의원이 “무소속 출마해 국민 심판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탈박했다가 복박했던 진영 의원은 17일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하면서 무소속 출마와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고심하고 있다. 진영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다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파기에 반발해 직을 사퇴하면서 짤박(짤린 친박)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권 일각에서는 비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비박 무소속 수도권 연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키’를 쥐고 있는 이재오 의원이 가세할 경우 무소속 연대는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나아가 류화선 전 파주시장(경기 파주을),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강원 동해·삼척) 등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으며 김진선 전 강원지사(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도 무소속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수도권뿐만 아니라 영남권 비박계 인사들도 무소속 출마가 잇따를 전망이다. 재심을 청구했다가 이한구 공관위원장으로부터 반려당한 3선의 대구 수성을 주호영 의원, 울산 울주의 강길부 의원과 울산북의 박대동 의원이 컷오프 당해 무소속 출마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경북 경주 친이계 정종복 전 의원 역시 진작에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재오 ‘정중동’속
친이계 심야 회동
이렇듯 비박계 특히 친이계 공천 대학살이 벌어지자 이명박 전대통령도 불쾌하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 후 정치 현안에 거리를 뒀던 이 전 대통령도 16일 새누리당의 4·13 친이계 공천 대학살을 보고 이례적으로 한 마디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긴급 회동을 가진 측근들에게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운 때에 매우 걱정스럽다”면서 “이번 공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에서 친이계로 분류되는 상당수 전·현직 의원들이 경선에 참여하지도 못한 채 ‘컷오프’(공천 배제) 되자 우회적으로 집권 여당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비박 내지 친이계 무소속 연대가 현실화될 경우 오는 총선 구도가 다여다야(多與多野) 구도로 치러질 수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미 분열된 상황으로 야권연대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이 다수다. 여기에 비박 연대가 출범해 여권 우위지역인 영남권을 중심으로 출마하고 수도권은 친이계 낙천자들이 대거 출마할 경우 여야가 박빙의 승부를 벌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관측도 만만치 않다. 일단 2008년 4월 총선때 친박연대 바람이 불어 25석의 친박계 인사들이 여의도로 생환한 정치상황과 현재는 분명하게 다르다는 설명이다.
당시 차기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존재해 영남권에서 다수가 생환했지만 현재는 차기 대권을 노려볼 만한 친이계 내 마땅한 구심점이 없다. 여권 내 1위를 달리고 있는 김무성 대표가 탈당할 경우 가능성이 있지만 탈당 확률은 제로라는 분석이다.
또한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여론조사 경선에서 탈락한 비박계 인사들의 경우 그 지역에 다시 출마할 수 없어 정치적 처지가 다르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대표적인 인사가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부산진을 이성권 전 의원과 강원 속초·고성·양양의 정문헌 의원, 충남 당진, 김석붕 전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비서관, 대전서을 윤석대 전 청와대 행정관, 강원도 원주갑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 대구 북을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이다. 모두 MB정부 때 복무한 인사들이다.
구심점 부재 속
‘찻잔의 태풍’될 수도
이뿐만 아니라 친이계로 경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인사들도 처지가 비슷하다.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은 서초을에서 친박계 강석훈 의원과 경선을 벌이고 있고 경기 포천.가평의 친이계 재선 김영우 의원은 ‘자칭’ 친박이라는 이철휘 후보와 그리고 서울 양천갑의 최금락 전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역시 치열한 경선을 치르고 있다.
설령 경선 중인 비박계 후보가 다 떨어진다 해도 이번 총선에 나서기가 쉽지 않아 비박 무소속 연대 바람을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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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