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물난 ‘3김’식 패거리 정치 재연되나
신물난 ‘3김’식 패거리 정치 재연되나
  • 이상봉 
  • 입력 2004-05-18 09:00
  • 승인 2004.05.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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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은 정치에 관한 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선망과 질시의 상반되는 인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3김’식의 패거리정치를 그토록 혐오했으면서도 실제 투표 행태에 있어서는 과거와 다를 바가 거의 없었다. 총선이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선 ‘계보정치’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향과 지역적 연고 등을 매개로 당내에 새로운 조직이 속속 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3김 정치’의 패단 중 하나인 ‘패거리 정치’의 재연으로 해석하는 정치권 관계자들도 상당수 있다. 그 전모를 파헤쳤다.우리당 “우리끼리 뭉친다?”
열린우리당에서 과거 3김 시대와 큰 차이가 없는 패거리정치 혹은 줄세우기 정치가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원내대표 경선에서 표출되고 있다. 천정배 의원과 이해찬 의원의 대결 구도에서 우리당 의원은 알게 모르게 패거리 정치의 폐해를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다. 물론 과거 민주당 동교동계의 전횡과 같은 노골적인 패거리주의는 아니라고 해도 현재 우리당 사정은 그 폐습을 답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당은 애초 정동영 의장 중심의 전문가 개혁 그룹, 김근태 원내대표 중심의 재야-운동권 세력, 그리고 유시민 의원 중심의 개혁당 출신들의 연합으로 결성되었다. 그것이 이번 총선을 통해 외연을 더욱 확대했고,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 직계까지 대거 참여해 크게 보면 4대 파벌로 우리당을 구성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데 각 파벌에서 개인적 의원의 자율적 판단은 점차 위축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돈다.

예를 들어 이번 김혁규 총리 내정자 파동도 이런 분위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유시민 의원 등의 개혁당 출신들은 ‘전투적 자유주의’ 철학을 가지고 당내 야당 구실을 한다고 알려졌으나 예전 이라크 전투병 파병이나 FTA 문제 등에서 평소의 철학과는 상관없이 일종의 ‘거수기’로 전락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폐해도 조금씩 약화되는 희망을 볼 수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이번 우리당 원내 대표 경선이다. 물론 천정배 후보는 천·신·정 멤버의 하나로서 당권파를 대표하고, 이해찬 후보는 김근태 원내대표 중심의 재야-운동권 세력을 대표하고 있지만, 양 대 세력 몇몇을 제외하면 나머지 절대 다수 의원들이 각자의 철학과 소신에 따라 자유로이 후보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당 안에서는 당권파의 헤게모니 싹쓸이에 대한 견제 심리가 나타나고 있다. 곧 개각이 되면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이 정동영 의장직을 승계할 것으로 보이는데, 천정배 후보까지 원내대표를 맡게 되면 ‘천신정’의 독주가 너무 지나치다는 견제 심리마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천정배 후보는 “천신정은 정치 개혁의 동지일 뿐 패거리식의 헤게모니 확대에는 관심이 없다”고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실제 천정배 의원은 오히려 재야-운동권 세력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해찬 후보보다 언론개혁, 재벌개혁 등 모든 점에서 더욱 진보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해찬 후보는 재야 출신이라는 상징성만 있을 뿐 실제 5선을 거치면서 개혁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관측이 자자하다. 김근태 대표측이 그런 점에서 이해찬 후보를 미는 것은 그야말로 맹목적인 패거리정치의 산물이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근태 대표의 평소 소신과 현재 이해찬 후보의 철학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철학과 소신보다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당이 그토록 비판했던 ‘3김’ 시대의 낡은 정치였다. 이런 견제 심리는 개혁당 출신에게도 전이되었다. 유시민, 김원웅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당 출신은 우리당 안에서 가장 이념적 결집도가 높다.

따라서 이들은 정치 성향상, 개혁 성향의 천정배 후보에 가까웠으나 정치적 견제의 필요성으로 분화되고 있다. 김원웅, 유시민 의원과 유기홍, 이광철 당선자는 당권 견제 입장에서 이해찬 후보지지 성향이고, 장경수, 강기정, 김현주 당선자는 천정배 후보의 개혁 노선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당의 여러 계파 중에서 개혁당 출신들은 비교적 탈패거리 성향을 보이고 있다.물론 이런 경향은 다른 계파에도 적용된다. 노 대통령 직계라고 할 수 있는 백원우, 서갑원, 이광재, 문희상, 유인태 당선자의 경우도 소신대로 움직이는 케이스다. 즉 백원우 당선자는 이해찬 후보, 서갑원 당선자는 천정배 후보, 이광재, 문희상 당선자는 엄정 중립, 유인태 당선자는 이해찬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권을 향한 동상이몽

한나라당을 탈당해 우리당에 합류한 ‘독수리 5형제’도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김부겸 의원은 이해찬 후보를, 안영근, 김영춘 의원은 천정배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패거리주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비교적 그런 맹목적 패거리주의에 가까운 그룹은 김근태 원내대표 측근들이다. 이호웅, 오영식 의원과 문학진, 우상호, 이인영 당선자는 이해찬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이들 모두 운동권 출신으로서이념적으로 진보 성향인데 상대적으로 보수 쪽에 가까운 이해찬 후보를 지지하는 것 그 자체가 자가당착으로 보인다. 결국 당내 정치에서 개인적 소신과 철학보다는 ‘현실’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3김 정치’의 재판이라고 할 수 있다. 패거리정치라는 폐단에서 한나라당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나라당은 ‘수구 지역주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패거리 정치 비판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이런 패거리 정치의 패단이 재연될 조짐이다. 현재 한나라당의 표면적 헤게모니는 박근혜 대표를 정점으로 이른바 ‘수요 모임’이 정점에 있다. 권오을, 남경필, 원희룡 의원과 유기준, 이계경, 한선교, 진수희, 김희정, 김기현 당선자들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매우 개혁적인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원내 총무를 의원대표로 바꿔 그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경우 당 대표의 권한이 줄어들게 된다. 물론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 이명박 서울시장 측근들과 영남파 세력들이 저항하고 있다. 이들 영남파들이 지금은 목소리를 죽이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어쩔 수 없는 영남 지역당이라는 주객관적 현실을 탈피하지 않는 한 결국은 이들에 의해 당이 주도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도 점점 늘어가는 소장파의 세력 때문에 과거 3김 시대 혹은 이회창 전총재 시절의 ‘제왕적 야당 총재’ 같은 패거리주의는 점차 사라져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상봉  pneumas@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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