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글부글…” 공천 탈락 후폭풍 거세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여의도에 공천 피바람이 불고 있다.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의 공천 결과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각 당에서 낙천한 의원들과 예비후보들은 당의 결정에 반발하며 탈당하거나 수용거부 입장을 밝혀 이의를 신청하고 있다. 일부 의원은 당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공천무효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제20대 총선을 약 한 달여 앞두고 컷오프(공천 배제)를 둘러싼 각 당의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은 지난 24일 현역의원 10명을 포함하는 1차 컷오프 명단을 발표했고 10일, 11일 추가로 총 7명을 탈락시켜 본격적인 물갈이에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 국민의당도 최근 컷오프 명단을 발표해 총선 승리를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의 친박 중진 김태환 의원(경북 구미을)은 지난 4일 새누리당 현역의원 중 유일한 컷오프 대상자가 되자 “납득할 수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김 의원은 공천관리위원회의 ‘밀실 공천’임을 주장하며 공천 평가 과정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더민주 대구시당 지역위원장을 맡으며 대구 북구을 출마를 준비했던 홍의락 의원은 공천탈락 소식을 접하고 “당이 대구를 버렸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더민주 대구시당, 총선 예비후보, 지방의원들도 잇따라 항의하며 파장이 일파만파 커졌다. 임내현 국민의당 후보도 지난 9일 공천에서 배제되자 “컷오프 이유를 투명하게 밝혀라”며 당이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법적 소송까지 갈 의사를 내비쳤다.
공천탈락 불복 소송 가능
당이 이길 가능성 높아
각 당에서 탈락한 의원들 중 상당수는 평가 절차와 원칙이 엉터리라며 즉각 반발했다. 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실상 남은 선택지는 탈당 후 무소속 출마 또는 공천무효 소송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지방선거 등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자들이 당을 상대로 낸 ‘공천불복 가처분 신청’은 수십 건에 이른다. 대부분의 사례는 당이 이기거나 소송 요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남양주시 한 후보는 ‘현격한 경쟁력 차이’를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되자 당의 공천 관련 결정을 중지해달라며 서울남부지법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후보는 현격한 경쟁력 차이에 대한 구체적 사유가 명시되지 않았다며 당의 결정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천심사 기준은 계량화하기 힘든 많은 요소들이 포함돼 있음을 고려하면 ‘현격한 경쟁력 차이’라는 사유가 구체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기각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전라남도 도의원 경선에서 떨어진 후보 세 명은 “경선 관계자가 공천에 개입했다”며 법원에 공천심사 중단을 위한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제출된 자료만으론 경선 관계자가 특정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다고 보기 힘들다”며 후보의 신청을 각하했다.
후보가 이긴 적도 있어
후보가 당을 이긴 사례도 일부 있었다. 절차상 하자나 당의 규정에 명백히 위배되는 경우 공천을 다시 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포천시장 후보로 출마하려다 당이 다른 후보를 공천해 자리를 내준 한 후보는 “당이 당규에 위배되는 부적격자를 공천했다”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 승소했다. 법원은 당규에 탈당, 경선불복 등의 전력이 있는 자는 공직후보 부적격자로 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당시 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는 탈당한 적이 있어 부적격자라고 밝히고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같은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원에 출마 준비를 하던 한 후보는 당이 다른 후보를 전략공천하자 “공천절차가 비민주적”이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시간이 3일 이상 남아있었음에도 시간이 급박해 경선을 할 수 없다고 한 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며 후보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선거법 제 47조는 ‘정당이 선거 후보자를 추천할 땐 민주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정당의 자율성 최대한 보장
절차적 위법성 증명해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현역 의원 중 하위 25%에 포함돼 공천에서 탈락한 한 의원은 당을 상대로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지만 여러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법원은 컷오프 제도가 정당이 국회의원 선거의 경쟁력 향상 및 정치 신인에 대한 배려 등 다양한 목적에서 도입한 것으로 정당해 보인다고 밝혔다.
현역 컷오프 역시 정당의 자율성을 인정해야 된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컷오프 기준 및 심사절차가 합리적 이유 없이 정해지거나 현저히 자의적 판단으로 적용되지 않는 한 정당의 자율적 영역에 속한다고 봤다.
다만 조사대상인 현역 국회의원을 몇 명으로 할 것인지, ‘비율’과 ‘인원수’ 중 무엇이 기준인지 등 일부 불분명한 점이 있었고 컷오프 평가항목 역시 합리성이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던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당의 공천이라는 정치적 행위 속성상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당의 기능과 특성, 공천 제도의 성격 등을 감안해 공천 심사에 대한 정당의 자율적 영역을 보장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 영역을 어디까지 볼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학계의 논쟁거리다. 법조계 관계자는 “헌법 제8조는 정당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며 “공천 과정에서 명백한 위법이 없으면 당의 정치적 판단에 법원이 개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공천 과정이 민주적 절차 또는 적법절차에 반할 경우엔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합리적 공천 운영을 위해 컷오프 제도의 기준 및 운영지침을 구체화하고 당헌 및 당규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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