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유명인들의 연이은 한정 상속 신청에 세간의 시선이 한정 상속 제도를 향해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부친인 고 이맹희 전 회장의 생전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었던 배경도, 고 변두섭 예당컴퍼니 회장이 동생에게 진 빚 2억여 원을 그의 아내 양수경씨가 물어주게 된 이유도 모두 한정 상속 승인 제도 때문이다. [일요서울]은 두 사례를 토대로 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이건희 회장과 싸우다 거액의 빚 남겼지만 모두 탕감
동생에게 빌린 돈, 상속 금액서 갚아야 하는 양수경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이맹희 전 회장의 유족들이 한정 상속 승인을 신청한 것은 지난해 11월. 고인의 유족이 고인의 우발상속채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법원에 한정승인 신청서를 접수한 것이다.
그리고 이맹희 전 회장이 남긴 약 200억 원의 빚을 이재현 회장 등 자녀들이 갚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CJ그룹 및 법조계 등에 따르면 부산가정법원은 이맹희 전 회장의 부인 손복남 고문과 이재현 회장 등이 낸 한정승인 신청을 1월 중순 받아들였다.
또 이재현 회장 등에 대한 한정상속이 승인되면서, 이맹희 전 회장의 채무에서 자산을 제외한 약 190억 원의 금액을 채권자가 받을 방법이 없어졌다. 현재 유족이 법원에 신고한 이맹희 전 회장의 자산은 10억 원이 채 되지 않았지만, 채무는 20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맹희 전 회장이 200억 원에 달하는 빚을 남기게 된 배경에는 2012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상대로 낸 소송이 결정적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맹희 전 회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아버지의 유산 9400억 원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에서 모두 패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소송 인지대와 변호사 선임비로만 200억 원이 넘게 들었다는 이야기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3남 5녀 가운데 장남인 이맹희 전 회장은 삼성가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뒤 1980년대부터 약 30년간 외국에서 살다가 지난해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이맹희 전 회장이 숨졌을 때 장남 이재현 회장은 탈세·배임·횡령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해 12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상고한 상태다.
이와 비슷한 일례는 또 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의 인기가수였던 양수경씨가 남편이 시동생에게 진 빚 2억여 원을 물어주게 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이태수)는 지난 8일 예당미디어 대표 변차섭씨가 형수인 가수 양수경씨를 상대로 낸 상속채무금 청구 소송에서 “양씨가 변씨에게 2억15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고 변두섭씨의 단독상속인 양수경씨는 한정승인을 했어도 상속재산 범위 내에서 변차섭씨에게 청구금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전했다. 양수경씨의 남편 예당컴퍼니 고 변두섭 전 회장은 지난 2013년 6월 사망한 바 있다.
변두섭 회장은 1992년 음반제작과 유통사업, 엔터테인먼트 연관 사업 등을 하는 예당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고, 동생 변차섭씨가 변두섭씨를 도와줬다. 이후 예당컴퍼니는 양씨를 비롯해 최성수와 조덕배, 룰라, 솔리드, 듀스, 이정현, 조PD 등 숱한 스타 가수를 배출하는 등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다.
또 이들 형제는 사업상 급전이 필요할 때 수시로 금전거래를 했다. 2010년 3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약 19회에 걸쳐 변차섭씨가 변두섭 전 회장에게 9억9400여만 원을 빌려줬고, 2012년 2월까지 총 11회에 걸쳐 7억7900만 원을 돌려받았다.
법적책임 어디까지
이와 관련해 변차섭씨는 생전에 형에게 2억15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단독상속인(한정승인)인 양씨가 이를 지급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던 것이다.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정승인은 상속받은 재산의 한도 내에서 물려받은 빚을 갚겠다는 조건으로 상속을 받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속을 받으면 고인이 남기고 간 재산은 물론 채무까지도 물려받게 된다. 물론 대부분 경우 빚보다는 재산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이 선택이 유리한 편이다. 다만 그 반대의 경우, 재산보다 더 많은 빚이 상속된다면 빚이 대물림되면서 후손들은 두고두고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어 한정 승인 제도가 있다.
법원이 한정승인을 받아들이면 피상속인의 채무를 상속재산으로만 청산하며 상속재산이 부족해도 상속인은 자기재산으로 변제할 의무가 없다. 물려받은 재산이 1억 원이고, 한정승인 후 2억 원의 빚이 드러나도 1억 원 한도에서만 갚으면 된다.
상속을 포기하는 방법도 있지만 상속을 포기하면 손자나, 사촌처럼 다음 순위 상속자로 상속되기 때문에 사촌 이내 친척들이 함께 신청해야 한다.
한정승인은 피상속인이 사망한 것을 안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 상속 개시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사망자의 재산과 채무 목록을 작성한 뒤 주소지 관할법원에 제출해 심사를 받아야 한다.
또 한정승인을 받은 사람은 법원이 한정승인을 한 날로부터 5일 안에 일반상속채권자와 유산을 받은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추가적인 채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현행법상 두 달 이상 의무적으로 공고하게 돼 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