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겨울 한파를 잊게 해줄 도시, 멜버른. 현지의 누리꾼들이 온기 넘치는 사진과 애정을 듬뿍 실은 메시지로 나를 흥분시켰다. 지구 반대편에서 펼쳐지는 한 여름의 드라마. 도시 매력 탐구 여행, 멜버른 보고서를 시작한다.
멜버른은 호주에서 문화 예술이 가장 발전한 도시다. 파리의 에펠탑을 닮은 115m 아트센터의 위풍당당 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위상이 절로 느껴진다.
멜버른은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 예술 공간이나 다름없다. 고전과 현대의 건축 양식이 독특한 조화를 연출하는 건축물들, 그리고 이들 사이를 관통하는 야라 강은 도시의 풍경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가장 큰 예술 작품이 아닐까.
시내 구석구석에서 소소하지만 개성 넘치는 볼거리들 이 심심치 않게 여행객의 발걸음을 붙잡고는 하는데, 그중에서도 나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골목길을 화려하게 수놓은 그래피티 아트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속 두 주인공의 사랑이 시작된 곳, 호시어 레인.
우리에게는 ‘미사 골목’으로 더욱 유명한 이곳은 한 마디로 ‘그래피티 예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한없이 자유로우면서 자극적이기도 하지만, 하나하나의 모습은 흥미롭고 진지하다.
이 골목을 걷다보니 몇 가지 궁금증들이 생겼다. 혹시 이렇게 칠을 하는 것이 불법은 아닌지, 대체 어떤 이들이 이런 그림들을 그리는지, 그림들이 바뀌기는 하는 건지. 운 좋게도 작품을 만들고 있는 거리의 예술가들과 마주쳤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중에 매달려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는 모습, 중간 중간 떨어져 있는 동료와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그들이 그려 놓은 풍경을 배경삼아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예비부부의 모습까지. 내 눈에 그들은 모두 이 도시가 허락하는 문화의 범주 안에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진정한 예술가들이었다.
주변명소 호시어 레인 입구에 위치한 스페인 음식점 모비다는 멜버른에서 꽤 소문난 맛집이다. 2007 년 디 에이지가 선정한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현지의 미식가들에게는 이미 명성을 인정받은 곳이다. 타파스와 같은 스페인 전통 요리와 함께 가볍게 술 한 잔을 즐기기에도 괜찮은 곳이다. |

리얼 벼룩시장, 캠버웰 선데이 마켓
일요일 오전에만 장이 선다는 캠버웰 선데이 마켓. 트레인을 타고 몇 정거장을 달리니 캠버웰역이라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선데이 마켓 이정표를 찾을 수 없어 길을 물어보려는데 여행객들로 보이는 몇몇 무리가 떼를 지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길을 물어볼 것도 없이 묵묵히 그들의 뒤를 쫓았다. 잠시 후 당연하다는 듯 선데이 마켓이 눈앞에 짠하고 나타났다.
시장은 입구부터 분주하지만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의 표정은 진지하고 또 즐거워 보인다. 시장 안에는 특별히 정해놓은 구역도 없이 오늘의 판매 상품들이 길바닥 여기저기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진열된 물건의 종류에도 일정한 기준이 없다. 어느 집 창고에서 오랫 동안 동고동락하던 물건들이 함께 외출을 나온 느낌. ‘어떻게 이런 것까지 팔까?’ 하는 궁금증이 끊이질 않고, ‘가격은 주인장 마음대로가 분명해’라는 의심 아닌 의심을 멈출 수가 없다.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중고 필름 카메라를 발견했다. 나이 지긋한 노인 두 명이 함께 운영하는 이 가게의 물건은 대부분 골동품.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물었다.
한 노인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내 어깨에 둘러진 것보다 더 좋은 사진이 나올 거라며 카메라를 꺼내 보여준다. 세상을 떠난 영국의 한 사진가가 사용했던 그 카메라는 며칠 후 멀고 먼 대한민국까지 오게 됐다.
멜버니안의 먹거리 탐방
퀸 빅토리아 마켓
점심시간에 맞춰 퀸 빅토리아 마켓을 찾았다. 먹거리의 천국이라는 소문을 듣고 저렴하지만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즐겨 볼 심산이었다.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슬슬 걸어가다 보니 나지막한 건물의 지붕에 쓰인 큰 글씨의 이름이 보인다. 한눈에 봐도 빅마켓이라는 애칭에 걸맞은 거대한 시장이다.


호주하면 뭐니 뭐니 해도 소고기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진열장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소고기의 저렴한 가격표는 요리 해먹을 곳 없는 여행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수산물 코너 역시 마찬가지다.

음식을 세 가지나 주문했고 결국 과식을 피할 수 없었지만 나오는 길에 과일 코너의 1달러짜리 딸기 한 팩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디저트까지 완벽한 한 끼였다.
초록 잔디와 바다가 주는 힐링, 세인트 킬다 비치
제법 선선하기까지 하던 멜버른의 도심은 주말 오후 갑작스런 불볕더위로 빠르게 익어가고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시내를 배회하다가 지친 몸에 특별한 휴식을 선물하기로 했다.
급히 일정을 바꿔 가까운 바다로 떠났다.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찾아간 곳은 멜버른을 대표하는 해변 세인트 킬다. 30분쯤 지났을까, 트램이 코너를 도는 순간 창 밖으로 줄지어 늘어선 키 큰 야자수들이 나타났고, 그 너머로 푸른 바다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잔디 위에 누워 파란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낭만적이다. 그 어느 휴양지에 있는 것보다도 더 크게 찾아든 편안함에 피로는 순식간에 날아갔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해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에 갈팡질팡하다 하늘에 떠다니는 패러글라이더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인트 킬다 해변 위에 떠 있는 백여 년 역사의 키오스크 리틀 블루. 그곳을 연결하는 부두 위에 올라섰다. 색색의 패러글라이더에 몸을 맡긴 채 바람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젊은 청춘, 우아한 자태로 바다 위를 떠다니는 요트들, 둥근 해안선 너머로 화려한 멜버른의 현재를 보여주는 빌딩 숲. 이 모습들을 한 장의 사진에 담으며 생각했다.
행복한 도시가 되려면 대자연 속에서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이제 좀 알 것 같다고. 세인트 킬다 비치에는 도시의 화려함을 옮겨 놓은 세련된 맛과 멋이 있고 연인들이 밀어를 속삭일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향해 애교 넘치는 포즈를 취하는 멜버니안의 여유가 함께 숨 쉬고 있다.
알고 가면 더 재미있는 것들
디 엣지 전망대 뷰파인더 유레카의 비밀 |

멜버른의 마지막 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듯 도심의 밤거리를 서성여보지만 두 눈이 전달하는 풍경을 가슴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피곤함 마저 지운 아쉬움에 발길은 가야할 곳을 잃었지만 이 도시의 마지막을 장식할 또 하나의 풍경을 기대하며 야라 강변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얼마쯤 걸었을까, 도심에서 조금 멀어졌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도시의 불빛들이 말 없는 야라 강 물결 위로 모여들었다. 강을 잇는 다리의 중간쯤에 올라서서 양 옆으로 펼쳐진 강변의 밤을 카메라에 담았다.


화려한 불빛의 카페와 여행객들의 커다란 웃음소리, 그들이 뿜어내는 즐겁고 힘찬 기운, 그리고 그 틈에서 총총히 빛나는 멜버니안들의 달콤한 행복이 야라 강변을 따라 페더레이션 광장까지 이어졌다. 자정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멜버른의 마지막 밤은 고요히 불타고 있다.
멜버른 여행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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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