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재계에서 가장 많은 화젯거리를 몰고 다닌 경영자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일 것이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운 후부터 거대 삼성의 ‘키’를 잡고 있다.
주변의 악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진하고 있다는 평이다. 최근 들어서는 인수합병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채우고 있다. 이재용식 삼성재편의 서막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 ‘실용주의강조’…체제 안정에 주력
지배구조 변화…新성장동력 발굴 과제는 ‘여전’
또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적한 신규 순환출자고리 해소, 삼성엔지니어링의 유상증자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급한 불은 모두 껐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SDS 지분을 매각해 3000억 원을 투입했다.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았을 뿐 아니라 그룹 지배력까지 높였다.
지난해 10월에는 롯데그룹에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삼성SDI의 케미칼사업부문(별도법인으로 분리) 등 3개사를 3조 원에 팔았다. 같은해 9월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이 일로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은 16.5%에서 17.2%로 확대된다. 다른 대주주의 지분율은 그대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9%,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은 각각 5.5%를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엔지니어링 살리기에 나서면서 지난 2014년 무산됐던 삼성중공업과의 합병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부회장의 향후 행보는 사업재편과 삼성물산 지배력 강화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차례로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강화와 함께 전자 및 금융 계열사를 제외한 비주력사업 부문의 정리 작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제일기획과 삼성SDS(IT서비스), 에스원(보안) 등에 대한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광고 담당 계열사인 제일기획을 정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제일기획은 국내 광고업계 1위로 지난해 1272억 원의 영업이익을 낼 정도의 알짜 계열사 중 하나다. 하지만 매출의 65%를 삼성전자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동안 아킬레스건이었다. 스마트폰 부진으로 삼성전자의 실적 성장세가 멈췄다는 점은 제일기획에게도 곧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얘기다.
제일기획의 대주주는 삼성물산(지분율 12.64%), 삼성전자(12.6%), 삼성카드(3.04%), 삼성생명(0.16%) 등 삼성계열사가 28.4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분구조상 매각 또는 합작 등이 수월하다는 점에서 글로벌 에이전시들과 다각적 협력방안 모색으로 제일기획이 선제적 위기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물산 주택사업부 매각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매각방식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추진 당시 삼성물산 지분 5.7%를 사들이며 백기사 역할을 한 KCC와의 지분 맞교환이다. KCC가 이 지분을 삼성물산에 넘기고 주택사업부를 받아온다는 시나리오다. 희망퇴직과 구조조정도 수시로 이뤄지고 있어 사업축소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렇다 보니 내부에서는 ‘자식 빼고 다 팔아라’는 말이 회자된다. 이 말은 과거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 소위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알려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유명한 일성이다. 이 회장의 선언은 삼성전자를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최근 삼성 임직원 사이에서는 이 선언이 패러디 된다고 한다. 이에 따른 후계구도도 주목받는다.
삼남매 후계구도에 영향
삼성의 전방위적 계열사 재편으로 그동안 알려져온 이 부회장은 전자·금융,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호텔·유통,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은 패션·광고로 분류되는 삼남매의 후계 구도 개편이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난해 면세점 사업에서 경영리더십을 발휘한 이부진 사장은 최근 숙원사업인 장충동 한옥호텔이 5번 도전 끝에 서울시 건축허가를 받았다. 서울시는 지난 2일 제4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장충동 신라호텔 부지에 한국전통호텔을 건립하는 안이 수정가결됐다고 3일 밝혔다.
서울시는 이날 호텔신라가 심의를 요청한 중구 장충동 2가 202번지 외 19필지의 자연경관지구 내 건축제한(용도 및 건폐율) 완화 안건을 재심의했다.
장충동 한옥호텔은 서울의 첫 도심형 한국전통호텔이다. 자치구 지정·공고 후 지하 3층∼지상 3층, 91실 규모로 건설된다. 장충동 한옥호텔 건축안은 2011년 처음 제출된 이래 두 차례 반려, 두 차례 보류된 끝에 통과되면서 호텔 사업에 매진 중이다.
이서현 사장은 지난해 12월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총괄하면서 사실상 제일기획 경영에서 손을 뗐다.
반면 이 부회장은 2014년 삼성생명 주식 12만주를 취득해 주요 주주에 등재되며 금융계열사 승계를 위한 사전작업도 이미 시작했다. 대부분의 금융 계열사를 자회사로 소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이 최근 삼성카드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금융지주회사 전환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사업재편에 속도를 내면서 향후 1~2년 내 지주회사 전환 등 후계구도와 신사업을 위한 지배구조 변화가 빨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 주도하에서 삼성그룹 사업재편이 가속화 되는 것은 위기대응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경영능력에 대한 자질입증이 되는 동시에 신뢰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신뢰성을 얻은 후에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변환이 본격적으로 가시화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