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키즈들 선의의 경쟁…김연아 전성시대 재현될까
연아 키즈들 선의의 경쟁…김연아 전성시대 재현될까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6-02-29 11:31
  • 승인 2016.02.29 11:31
  • 호수 1139
  • 5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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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불모지 같았던 대한민국 피겨 스케이팅 종목이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로 인해 한때 전성기를 맞았지만 그의 은퇴 선언 이후 다시 찬바람이 불고 있다. 더욱이 김연아의 뒤를 이을 마땅한 재목이 발굴되지 못해 어려운 국내외 환경 속에서도 정상을 지켰던 김연아의 투지와 실력이 그리울 뿐이다. 하지만 최근 연아 키즈들이 경쾌한 시동을 걸고 있어 평창에 이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의 기분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피겨여왕 은퇴 후 한국 피겨 위축…포스트 김연아 발굴에 고심
   기대주 3인방 출현에 피겨계 화색…독주 아닌 견제구도 바람직

▲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뉴시스>

김연아로 촉발된 피겨스케이트 열풍은 한동안 대한민국을 달궜다. 그 덕에 김연아 이후 등장한 후배들에게 ‘포스트 김연아’ 또는 ‘연아 키즈’라는 명칭이 붙는 것이 현실이다. 또 김연아의 성공적인 선수 생활 이후 열악한 피겨스케이트 환경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선수들이 속속 등장할 정도로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반영하고 있다.

다만 김연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국제대회에서 선전할 새로운 인재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은 피겨 관계자들의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 아직 얇은 선수층과 마땅한 훈련장 하나 갖추 못한 현실이 피겨 팬들에게는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이 같은 악조건 속에도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새로운 기대주들이 출연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유영(11·문원초)과 임은수(12·응봉초), 김예림(12·군초양정초)이 올 겨울 빙판을 뜨겁게 달구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연아를 꿈꾸는 기대주 3인방

유영은 지난달 초 서울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제 70회 전국남녀종합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더욱이 유영은 11살 나이에 이 대회 정상에 오르며 김연아가 갖고 있던 이 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넘어섰다.

지난 4일 막을 내린 제 97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는 여자 초등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첫 점프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실수가 나왔고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얼음에 스케이트 날이 끼어 흐름을 이어가지 못해 다소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었다.

▲ 유영 선수<뉴시스>
그간 ‘피겨스케이팅 신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았던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이에 유영은 “갑작스럽게 많은 관심을 받게 돼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면서도 “오늘은 경기장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내 실수다. 우승 이후 붕 떠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우승을 하더라도 뜨지 않고 더 열심히 하겠다”며 12세답지 않은 소감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번 동계체전에서 떠오른 기대주로는 임은수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올해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시니어부 3위에 올랐고 동계체전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치며 여자 초등부 1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서 총점 174.55점을 받은 임은수는 회전력과 비거리가 뛰어난 점프가 장점으로 꼽힌다.

그는 “우승한 것보다 클린 연기를 한 것이 더 기분이 좋았다”면서 “트리플 악셀이나 쿼드러플(4회전) 점프가 필요한 시기가 오는 것 같다. 내 꿈에 다가서려면 이러한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연아 언니처럼 되는 것이 꿈이고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것이 목표”라며 당찬 포부를 전했다.

동계체전에서 아쉬운 2위를 기록한 김예림도 요즘 뜨는 연아 키즈로 주목받고 있다.

김예림은 프리스케이팅을 깨끗하게 완수했지만 임은수 점수에 1.35점이 모자라 2위에 머물렀다. 그는 프로그램 중반에 시도한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인상적으로 소화해내며 기술점수(TES) 67.07점을 받아 임은수(66.92)를 앞질렀다.

하지만 두선수의 승부는 예술점수(PCS)에서 갈렸다. 임은수는 49.32점을 받았고 김예림은 46.68점을 기록했다.

김예림은 경기 후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기에 괜찮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또 그는 “아직 내가 성장했다고 느끼기보다 앞으로 더 성장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영이랑 은수랑 경쟁구도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할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다하면 된다”고 다부진 각오를 다졌다.

선의의 경쟁 동반성장 모범

이처럼 기대주들이 등장해 모처럼 반가운 상황에서도 한명의 독주가 아닌 꾸준히 승부를 펼치는 경쟁구도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어린 선수들의 맞대결은 서로에게도 충분한 자극제가 되면서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유망주 3인의 기량은 큰 차이가 없다”며 “이들의 실력 차이는 없다. 경기 당일 컨디션과 집중력이 승패를 결정할 뿐”이라고 평가 했다.

더욱이 이들 3총사는 모두 ‘연아 키즈’라는 사실만으로도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평소 이들은 모두 김연아를 목포로 꿈을 키우고 있다고 말한다. 2009년 피겨에 입문한 임은수에겐 김연아 연기가 교본이나 다름이 없었다. 김예림과 유영은 아예 김연아의 밴쿠버올림픽 금메달 장면을 보고 은반 위에 뛰어오른 케이스다.

이 같은 사례는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따르면 2011년 515명이던 등록 선수는 지난해 674명으로 전년보다 무려 90명(15%)이나 늘어났다. 한 해설위원은 “체감속도는 더 빠르다. 김연아 세계선수권 우승 때와 비교하면 지금 피겨를 하는 여자 선수가 몇 배 더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이들 3총사는 당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수는 없다. 나이제한이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이들의 선전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3인3색으로 평가될 정도로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는 점이 호재로 받아들여진다. 국제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나영 계명대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영은 점프와 스핀 때 회전력이 좋다. 임은수는 예술성에 있어서 표현력이 뛰어나고 김예림은 수행 요소 하나하나를 침착하게 펼쳐나가는 신중한 면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한 해설위원은 “서로 특징이 달라 좋은 비교가 된다”며 임은수에 대해서는 점프높이와 표현력, 김예림은 절제와 탄력을 꼽았다. 또 유영에 대해서는 “유영은 어쩔 땐 자세가 좋질 않아 이렇게도 뛰고 저렇게도 뛰는데 그럼에도 점프가 훌륭하다”며 탁월한 소질에 대해서 좋게 평가 했다.

이와 더불어 피겨 강국으로 손꼽히는 러시아와 일본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데에는 한 명의 독주보다 여러 명이 올림픽 티켓을 놓고 지속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경기력을 끌어 올리는 데 큰 보탬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에 유망주들이 꾸준히 견제와 자극을 통해 상생한다면 차기 한국 피겨스케이트 대들보이자 세계적인 선수로의 성장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향후 3~4년 성장 관문이 관건

▲ 박소연 선수<뉴시스>
이 같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넘어야 할 산 또한 험난하다.

한 피겨 유력인사는 3명의 베이징 올림픽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학 입시 직전 고등학교 성적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전교 1등은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는 앞으로 3~4년간 닥칠 많은 관문을 넘어야 ‘포스트 김연아’ 자리를 넘겨받을지 가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3명이 김연아보다 잘 타거나 김연아 못지않게 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며 “김연아가 피겨를 시작하고 10년 이상 시간이 흐른 뒤 유영 등이 피겨에 입문했다. 그 사이 초등학교 애들이 향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선의의 경쟁 이전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제빙상연맹(ISU)은 시니어 대회의 경우 대회 직전 연도 7월 1일 이전에 만 15세가 넘어야 출전자격을 주고 있다. 결국 김예림과 임은수의 경우 평창 올림픽 다음 해인 2019년부터 출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앞으로 3년간 신체가 변하고 사춘기를 겪기도 하고 부상도 올 수 있어 이 기간 동안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실제 1999년 만 14세 나이에 전미 피겨선수권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재미교포 남나리는 줄곧 부상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또 김연아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됐던 박소연(19·단국대)과 김혜진(19·이화여대)은 줄곧 경기력을 성장시켜왔지만 성인으로 접어들며 커진 몸에 적응이 쉽지 않아 괄목할 만한 경기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다만 박소영은 지난 20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 여자싱글에서 178.92점으로 4위를 차지해 평창올림픽 메달사냥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메달사냥을 위해서는 역부족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견해다.

이처럼 연아 키즈 3인방이 앞으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까지는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또 이들이 프로그램 클린을 위해 달려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것처럼 이들의 성장을 위해 지원해야 할 정책도 턱없이 부족한 게 한국 피겨스케이트의 현실이다.

한 전문가는 “이들이 ‘완성된 선수’가 아닌 ‘미완의 기대주’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그간 한국 피겨스케이트가 많은 과오를 경험했고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피겨 유망주 3인 방에 대해 그저 스스로 성장하기만 바라보기보다 좀더 적극적인 지원과 육성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가 “김연아 언니처럼 되고 싶다”는 공통된 꿈을 이뤄내길 기대해 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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