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선언’ 이재왕 현대중공업 협력사대책위원장
‘양심선언’ 이재왕 현대중공업 협력사대책위원장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6-02-29 11:25
  • 승인 2016.02.29 11:25
  • 호수 1139
  • 3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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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갑질 속 산재은폐·상납금까지… 檢, 수사 불가피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현대중공업 사내 협력업체 이재왕 전 대표가 ‘산재은폐와 뇌물수수 사실을 고발하겠다’며 17일 자수 형태로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아 파문이 예상된다.

지난해 말 사내협력사 대표가 기성금 삭감 등에 따른 경영악화로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두번째 알려진 일로 검찰수사로 사실이 밝혀질 경우 현대중공업이 받을 타격 또한 심각할 전망이다.

 매달 500~700만 원 부서관리자에게 전달 주장
사 측 “산재은폐 조장하거나 방치할 이유 전혀 없다”

지난 17일 오후 1시 현대중공업 협력사대책위원회 이재왕 위원장이 내부고발을 위해 증거자료 등을 가지고 울산지방검찰청 특수부를 찾았다.

이 위원장은 검찰 출두 전 지역신문에 “원청과 함께 직접 산재사고를 일반사고로 둔갑시켰고, 이를 계기로 물량팀을 맡은 후에는 원청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을 했다”면서 “내가 했던 모든 일을 알려서 반드시 원청의 비리를 밝히겠다”고 밝혔다.

이후 노조를 통해 알려진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 위원장이 검찰에서 현대중공업의 부정부패와 업체 간의 검은 거래가 얼마나 구조적이고 뿌리 깊은지에 대해 분명하게 밝혔다. 노조와 이 위원장이 밝힌 이번 사건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 사건에는 현대중공업 현 임원과 관리자 7명이 연루됐다고 한다.

2012년 4월께 현대중공업 2야드 대조립5부 소속 (주)부건의 조모 씨가 블록 탑재 도중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대조립5부 부서관리자는 김모 임원(당시 상무보)의 승진에 걸림돌이 된다며 은폐할 것을 제의했고, 당시 현장 소장이던 이 모씨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일반 사고로 둔갑시켰다.

2011년 7월과 2012년 1월 등 추가로 2건을 일반 사고로 위장해 은폐시켰던 정황도 알려졌다. 이 위원장은 (주)부건이 폐업을 하자 산재은폐에 공을 세웠던 이 모 소장은 해당 부서의 제의로 (주)부건 소속 노동자 60여 명을 데리고 정규직 물량을 처리하는 물량팀으로 전환했다.

물론 정식 등록이나 절차가 생략됐기 때문에 이들은 소속 없이 일하는 소위 유령인력이었다. 이 때문에 기성(도급비) 지급을 원청이 직접 줄 수 없게 되자 2야드 타 업체들을 통해 예산을 편법으로 내려주고 다시 전달하는 방법을 썼다. 뿐만 아니라 이모 소장은 부서관리자를 통해 매달 500만 원에서 700만 원을 상납했다.

약 1여년을 상납했으니 약 7000여만 원을 부서관리자들이 챙긴 것이다.

여기에 부서 예산담당자는 직책을 활용해 팀별 능률을 낮춰 잡는 방식으로 예산을 남겨 업체에게 팔아 넘겼다. 보통 300M/H(맨아우워)에 300만 원, 500M/H에 500만 원 선으로 각 업체마다 팔고 받은 검은 돈은 담당 임원과 부서관리자들의 배를 채우는 데 사용됐다고 노조는 설명한다.

맨 아워는 노동자 한 사람이 1시간에 생산하는 노동 혹은 생산성 단위를 의미한다.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에 기성을 지급하는 기준이다. 맨 아워 문제가 불거지자 당시 해당부서 임원이었던 김모 씨는 대책위를 방문해 원만하게 해결할 것을 제의했고, 당시 부서장이었던 황모 씨는 문자를 통해 선처를 호소하는 등 사태를 봉합하려는 시도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현대중공업 황아무개 부장은 지난 12일 김종이 사내협력사대책위원회 본부장에게 “제발 선처를 부탁드린다”며 “지금 제 자신이 너무나 작고 초라해 생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직원 조아무개씨도 18일 김 본부장에게 “지금까지 잘못한 점을 뉘우치고 열심히 살겠다”며 “뭐든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원청회사 임직원이 사내하청업체 관계자에게 보낸 메시지치고는 지나치게 저자세다. 최근 대책위가 원청 임직원의 산재은폐와 뇌물수수 혐의를 폭로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갑의 위치에 있던 원청 관계자들이 몸을 낮춘 것이다. 대책위는 현대중공업의 기성 삭감으로 임금체불 등 경영상 어려움을 겪으며 폐업한 사내하청업체 사장들로 구성돼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책위는 폐업한 사내하청업체에 대한 보상을 둘러싸고 협상을 벌여 왔는데, 진척이 없는 상태였다. 이 같은 상납은 해양플랜트 하청업체를 맡아 운영하기 시작한 2013년 3월이 돼서야 끝이 난다.

 누구 말이 진실일까

이 위원장은 “당시 임원과 부서장은 현재 고위간부급으로 승진했고, 당시 매월 돈을 상납 받던 직원들도 승진해 여전히 현대중공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부 고발을 하게 된 이유를 묻는 지역신문의 물음에 이 위원장은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들의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기를 기대했지만, 시간끌기를 하고 있다”면서 “현대중공업은 대책위와 협상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각 업체 당 일괄 보상(3억5000만 원)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와 관련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사고가 나면 산재신청을 하도록 내규에 나와 있다. 회사가 못 하게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안 하면 회사이미지만 나빠질 뿐 한다 해서 회사에 피해오는 게 전혀 없다”며 굳이 못하게 할 이유가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이 위원장이 주장하는 뇌물수수 부분과 관련해서도 “(현재)회사 윤리경영팀이 조사중에 있다”며 “만약 사실이 드러날 경우 검찰에 넘겨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사내소식지를 통해 재발방지에 나서고 있음을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내하청지회는 “이번 사건은 방산비리·뇌물수수·화장실 몰카 사건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대중공업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자신들의 치부는 그대로 둔 채 적자를 이유로 기성을 삭감하고 사내하청업체 폐업을 유도해 하청노동자를 고통에 몰아넣은 파렴치한 범죄행위에 대해 검찰은 즉각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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