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출산경력 알리지 않아도 ‘혼인취소’ 사유 단정 안 돼”
法 “출산경력 알리지 않아도 ‘혼인취소’ 사유 단정 안 돼”
  • 장휘경 기자
  • 입력 2016-02-22 23:01
  • 승인 2016.02.22 2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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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법원이 국제결혼 중개를 통해 결혼한 외국 여성이 과거 출산 경력을 알리지 않았더라도 곧바로 혼인취소 사유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2일 대법원 3(주심 김신 대법관)에 따르면 A씨가 베트남 국적 아내 B씨를 상대로 낸 혼인의 무효 등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혼인을 취소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재판부는 사건을 전주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A씨 부부는 20124월 혼인신고를 마치고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가 이듬해 1A씨의 계부가 B씨를 성폭행한 일이 발생하면서 파국을 맞았다.
 
계부는 성폭행 사건으로 징역 7년 형이 확정됐지만, 형사재판 과정 중 베트남에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출산했던 B씨의 과거가 탄로 났기 때문이다.
 
A씨는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되자 B씨를 상대로 혼인 취소와 함께 위자료 3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B씨 또한 A씨를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은 "B씨의 출산 전력은 A씨가 B씨와의 혼인의사를 결정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것인데 B씨는 A씨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A씨가 이러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혼인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이는 민법 제816조에서 정한 혼인취소 사유인 '사기로 인해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 혼인을 취소하는 판결과 함께 B씨가 A씨에게 위자료 8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B씨는 재판과정에서 2003년께 베트남 소수민족 남성에게 납치,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했고 임신 중 남성의 폭행을 피해 친정집으로 도망친 뒤 아이를 출산했지만, 남성이 아이를 데려갔고 이후 친정집에서도 나와 따로 지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 또한 1심과 같은 결론을 내리면서 다만 B씨의 위자료를 300만원으로 낮췄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하급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대법원은 "B씨의 주장과 같이 B씨가 아동성폭력범죄의 피해를 당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지만, 곧바로 아이와 관계가 끊어지고 이후 8년 동안 양육이나 교류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러한 출산경력을 단순히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B씨가 주장하는 사정, 즉 임신하고 출산한 경위와 관계 등은 물론 A씨가 당해 사항에 관련된 질문을 한 적이 있는지 여부나 혼인의 풍습과 관습이 다른 국제결혼의 당사자들인 이들 부부가 혼인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충분히 심리해 (출산경력) 고지의무와 위반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판단을 거치지 않고 혼인취소 사유가 존재한다고 쉽게 단정해 A씨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이고 B씨의 청구를 기각해 혼인취소 사유와 혼인취소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 책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를 비롯한 전국 21개 이주여성단체는 이날 "성폭력범죄 피해로 출산한 경위에도 불구하고 피고 여성에게 고지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인격권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원심의 법리 오해를 바로잡았다"고 밝혔다.
 
이어 "혼인 전 출산 경력으로 인한 혼인취소는 생물학적으로 임신과 출산의 부담을 갖는 여성에게 주로 적용됐는데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혼인 전 '출산경력'이 혼인취소 사유가 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한 점에서도 그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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