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지난해 9월에서 12월, 국민체육진흥공단 내의 비리를 적발하고 수사를 벌인 검찰이 최근 체육계를 향해 다시 칼을 빼 들었다. 대상은 대한수영연맹. 공사수주 비리 등 국비를 유용한 혐의로 수영연맹 이사 등에 대해 현재 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업체 일감 몰아주기에 카지노 도박 의혹
돈 상납, 입시·선발 부정…‘윗선’이 타깃?
지난 17일 체육계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원석 부장검사)는 대한수영연맹 및 강원수영연맹 등 20여 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체육계 비리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가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대한체육회 및 산하 단체 전반을 겨냥한 수사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날 검찰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대한수영연맹 사무실 및 산하 기관 사무실 등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사업 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19일을 기준으로 현재 검찰은 대한수영연맹에 대해 ▲ 수영장 공사 시 시공업체에 일감 몰아주고 뒷돈을 받은 것 ▲ 수영연맹 운용비로 카지노에서 도박 ▲ 간부에게 주기적인 돈 상납 등의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비 유용
18일 오후 검찰은 대한수영연맹이 선수용 수영장을 공사하는 과정에서 시공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이에 대한 대가로 뒷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검찰에 따르면 전날 이뤄진 압수수색에서 수영장 건립 및 개보수 공사 자료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영장은 전국 시·도 수영연맹에 속한 선수들이 훈련을 하는 등 이용해왔다. 수영연맹은 선수들이 이용하는 수영장을 신축 및 보수하는 공사와 관련해, 수년간 비리를 저질렀다는 게 검찰의 관측이다.
구체적으로 수영장 실내 공사를 할 업체 선정 과정에서 다수의 부정 정황이 있는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통상 수영장 실내를 덮는 타일 시공비는 수영장 공사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수영장 전체를 덮어야 하는데다, 선수들의 훈련 및 대회와도 관련되기 때문에 이를 담당할 시공업체는 계약 성사가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재 국내에선 국제규격에 맞는 선수용 수영장의 타일을 담당할 업체가 3곳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검찰은 대한수영연맹 간부 등이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대가로 수천만 원대의 금품 및 향응을 받은 정황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체포된 대한수영연맹 시설이사 A씨 역시 공사수주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수영장 공사를 두고 또 다른 비리가 나올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A씨는 자신의 소재지 강원도 외에도 다른 지역의 수영장 공사와 관련해 비리를 저지른 단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이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A씨 및 A씨와 함께 체포된 강원수영연맹 소속 수영 지도자 2명은 수영연맹 운영비를 유용한 혐의도 받고 있어, 공사수주 비리 외에도 국비 유용 등 예산 문제와 관련한 수사 역시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는 검찰이 A씨 등의 계좌를 추적한 끝에,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뭉칫돈이 인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국가 예산으로 도박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후 A씨와 수영지도자 2명 등이 공금을 횡령해 강원랜드 및 필리핀 해외 카지노에서 약 10억 원을 도박으로 날린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영연맹에 대한 비리 수사가 공사 수주는 물론, 국비 등 예산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19일 수영연맹 고위 간부 계좌에 주기적으로 수상한 자금이 입금된 정황을 포착, 수영연맹 윗선까지 수사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검찰에 따르면 지난 17일 수영연맹 사무실 및 임원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며 확보한 회계장부와 통장 등 금융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연맹 간부 B씨가 다른 간부 C씨의 계좌에 주기적으로 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수상한 자금의 흐름을 간부 간 ‘돈 상납’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B씨가 이 돈을 마련한 경위, 돈 송금의 목적이 무엇인지 등을 집중 수사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돈 흐름과 관련해 수영업계에서는 과거부터 대표선수 선발을 대가로 학부모들에게 돈을 받은 B씨가 이 돈의 일정 금액을 C씨에게 상납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B씨는 사설 수영클럽을 운영하며 대표선수 선발을 원하는 학부모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비 유용 및 수상한 자금 송금 등 수영연맹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입시 부정’ 및 ‘대표선수 선발 부정’ 등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특히 간판급 코치도 입시 부정에 관여됐다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 이번 수사가 체육계 전반에 대한 비리로 번질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검찰은 B씨와 C씨의 거래 내역을 종합한 뒤 C씨를 소환할 예정이다. C씨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상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B씨는 참고인 신분으로 불려 조사를 이미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검찰은 이런 의혹 외에도 수영연맹 측이 기업 후원금 중 일부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이를 확인 중에 있는 것으로 19일 전해졌다. 첩보 내용 중에는 수영연맹 고위 간부가 해외 전지훈련 시 숙식비 등의 비용을 실제보다 많게 잡아 영수증 처리를 한 뒤, 차액을 따로 챙겼다는 의혹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기업들이 수영연맹이 주최한 각종 수영대회에 광고협찬·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주는데, 이 돈은 국내외 전지훈련 등 선수들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다른 이유?
일각에선 이번 수사가 체육계 전반에 퍼진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내는 것에 이어, 최종 목적이 수영연맹의 이기흥 회장에게 맞춰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그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을 주도해왔는데, 대한체육회 쪽 통합추진위원장인 이기흥 회장이 정부 주도의 통합 일정을 반대해온 것. 때문에 이번 수사가 윗선으로 번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결국 수영연맹 회장에게도 불똥이 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과거부터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은 지속적으로 요구돼 왔다. 대한체육회는 우수선수 양성으로 국위선양 등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는 데 설립목적이 있는 반면, 국민생활체육회는 생활체육 진흥을 통한 국민건강과 체력증진 등을 담당하고 있다. 체육계 안팎에선 양 기구를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왔고,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6월 26일 통합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위원회 구성은 대한체육회에 3명을 배정했고, 국민생활체육회 측에도 3명을 배정했다. 이에 더해 문체부 추천 3명, 국회 추천 2명으로 구성해 통합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지난해 3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종덕 장관은 “이제는 스포츠강국을 넘어 스포츠로 국민이 행복해지는 스포츠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며 “체육단체의 통합은 스포츠시스템 선진화의 첫걸음인 만큼, 생활체육을 기반으로 우수선수의 발굴·육성, 생활체육·전문체육 통합 대회(디비전) 시스템 구축, 생활체육에서의 은퇴선수의 일자리 창출 등,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의 실질적인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데에도 더욱 관심을 쏟겠다”라고 밝히며 통합의 추진 배경 및 이유를 언급하기도 했다.
문제는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의 갈등이다. 정부 주도의 통합에 대한체육회 측은 반발해왔고, 지난 15일 통합체육회 발기인 총회에 대한체육회 준비위원 3인이 전원 불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당시 총회는 무산되며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
무엇보다 이기흥 회장은 통합체육회의 새 정관이 체육회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함을 규정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맞아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어, 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있던 바였다.
현재 문체부는 통합체육회 출범 날짜를 오는 3월 27일로 잡고 있다.
이런 일각의 의혹에 대해 지난 17일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한 언론사를 통해 “비리가 나와서 수사를 하는데 그걸 하명수사라고 하는가"라며 “특정인을 목표로 (수사를)하고 있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고질적 병폐 뿌리 뽑아야
한편 이번 수사로 그간 체육계에 횡행했던 입시·선수 선발 부정 등 고질적인 병폐가 뿌리 뽑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등학교-대학교 입시 부정 사건이 지난해 사회적 논란을 만든 데 이어, 일부 국제대회 대표 선수를 ‘계파’에 따라 선발하는 등 체육계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현 정부는 출범 이후인 2014년 12월29일 체육계 4대악으로 ▲ 승부 조작과 편파 판정 ▲ 체육계 내 폭력 ▲ 입시 비리 ▲ 계파 갈등 등 조직 사유화 등을 언급하며, 이를 근절하기 위해 경찰과 합동으로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