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불사 vs 北궤멸… 이종걸 ‘신북풍 우려’
문재인-김종인 역할 분담 성공 예측도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에 긴장국면이 조성된 가운데 정치권의 반응은 3당3색이다. 각 당의 지지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을 잡기 위한 ‘맞춤형’ 대응이다. 대체로 새누리당은 ‘안보위기론’을 제기하며 보수층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쟁이냐 평화냐’ 프레임으로 진보층은 물론 중도층, 나아가 자식을 군대에 보낸 보수층까지 동시에 공략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햇볕정책 승계론’으로 호남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속을 들여다보면 3당3색에 그치지 않는다. 각 당마다 이설(異說)이 난무한다. ‘북풍’(北風)을 맞아 안보관, 북한관을 뚜렷이 밝히면서 자기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각 당의 정체성이 흐려지면서 4·13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도 혼선을 겪고 있다.
가장 심각한 곳은 더불어민주당이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 문재인 전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가 3인3색의 목소리를 낸다. 특히 문 전 대표가 영입한 김 대표가 연일 ‘보수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당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김 대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서 “우리 국방태세를 튼튼히 유지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 경제가 더 도약적으로 발전하면 언젠가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북한 궤멸론’은 곧 ‘흡수통일론’으로 인식된다. 지금까지 야권에서 ‘흡수통일’은 금기어였다.
당내에서 논란이 일어났지만 김 대표는 “그 말(‘궤멸’) 자체에 대해 취소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북 인식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표방한 대북 포용정책과는 정반대다. 더민주가 ‘김대중·노무현 정신 계승’을 외치는 마당에 여권 출신인 김 대표가 ‘마이웨이’ 행보를 보이는 셈이다.
김종인 연일 ‘보수본능’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동중단을 선언한 개성공단을 만드는 데 초석이 됐던 DJ의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보완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현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같은 대북 현안에 대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설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당내에선 “김종인이 결국 ‘트로이의 목마’ ‘X맨’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대표직 사퇴 후 경남 양산 자택에 머물던 문재인 전 대표가 보다 못한 듯 제동을 걸고 나섰다. “박근혜 정권은 경제도 사상 최악, 민주주의도 사상 최악, 남북관계도 사상 최악이다” “진짜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에 반대한다.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정말 화가 난다.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한 조치”라는 등의 말을 쏟아냈다.
이 와중에 비노계인 이종걸 원내대표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대해 “선거를 앞두고 북풍 전략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며 ‘역색깔론’을 제기했다. 또 “선거전략을 국민 생계와 남북한 운명, 국민세금으로 떠넘기려 하는 것은 정말 하책 중 하책”이라고 했다.
특히 김 대표와 문 전 대표 사이의 충돌이 일어나자 정가에선 “총선 전에 김종인 체제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문 전 대표로부터 ‘전권’을 받은 김 대표가 총선 공천권, 당직 인사권을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의 색깔까지 바꾸려는 시도를 친노계가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란 시각에서다.
하지만 이런 관측에 대해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엄부자모(嚴父慈母)론’을 내세우며 전혀 다른 해석을 했다. 아버지는 자식을 엄하게 다루고, 어머니는 자식을 깊은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처럼 김 대표와 문 전 대표가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음은 황 평론가의 분석이다.
“더민주는 지금까지 친노 운동권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 상태론 선거를 앞두고 외연확장이 어렵다. 우리편만 가지곤 선거를 이길 수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김종인은 ‘산토끼’ 잡기에 나섰고, 문재인은 ‘집토끼를 지키는 쪽으로 역할을 나눴다고 볼 수 있다. 총선 승리를 위한 절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김종인의 ‘우(右)클릭’으로 집토끼를 조금 놓칠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산토끼를 더 많이 잡아올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더민주의 3인3색은 총선에서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게 황 평론가의 판단이다. 다만 총선 후 차기 대권 가도에서 이런 이념적 혼선이 더민주에게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대선은 총선과 달리 고정 지지층의 결속이 중요하다.
김 대표나 문 전 대표가 당내에 심은 인물들이 총선 후에도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할 때 곳간 열쇠를 다시 찾아오려는 친노계와 크게 충돌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더민주가 선거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을 때 더욱 그렇다.
이처럼 안보 문제를 놓고 당 지도부 안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건 더민주 뿐만 아니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와 천정배 공동대표가 이끌고 있는 국민의당도 이념적 정체성에 혼란을 빚고 있다.
현재 국민의당은 ‘호남 자민련’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더민주를 탈당한 호남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 정당으로 뻗어나가야 하지만 진척이 없는 상태다. 더구나 호남권에서마저 더민주의 지지율이 다시 상승하면서 국민의당은 호남 지키기에도 힘이 버겁다.
국민의당은 ‘호남 자민련’?
이 때문에 안철수 대표는 ‘호남 바라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번 북풍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안 대표는 처음부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지향한다고 했다. 하지만 안보를 보수적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호남이 등을 돌릴 수 있다. 대북 포용을 지향하는 햇볕정책의 입안자가 DJ인 까닭이다.
안 대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는 ‘대북 제재’를 얘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내린 데 대해선 “정부가 급작스럽게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를 취한 것은 전략적으로도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선택이다. 조업 중단 조치가 궁극적으로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며, 오히려 우리 기업과 국가에 경제적 손실만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2월 18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고 했다.
안 대표가 영입한 북한전문가인 김근식 통일위원장은 “개성공단 폐쇄조치는 실효성 없는 자해(自害)적 제재”라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기조에 찬물을 끼얹은 인물은 안 대표가 공들여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다. 그는 당의 정체성과 관련,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 이런 지향점에서 볼 때 현재 논의되고 있는 북한 문제에 대해선 우리당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본다”고 안 대표와 다른 견해를 보였다. 역대 정권의 대북 정책이 모두 실패했으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특히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국제제재가 불가피하다면 저는 그것도 우리가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고 정부 정책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도 대북 정책에 대해 지도부간 혼선을 빚기는 마찬가지다. ‘신박(新朴)계’로 분류되는 원유철 원내대표는 “우리도 ‘평화의 핵·미사일’ 보유를 통해 ‘안보 방파제’를 높이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으로 철수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우리도 핵을 갖되,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우리도 동시에 핵을 폐기하는 ‘조건부 핵무장’ 등 이제는 자위권 차원의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대북 억제수단을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무성 대표는 “개인 의견”이라고 일축했다. 새누리당 역시 친박계와 비박계 사이에 공천전쟁이 시작된 시점에 안보관을 놓고 양 진영 사이에 견해 차이가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여야 모두에서 북한 리스크를 놓고 내부적으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런 현상이 총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치평론가 A씨는 “과거처럼 북풍이 특정 정파에 큰 이익을 주거나 손실을 주는 시대는 지났다.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선거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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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