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죽지 않았다” 돌아온 건 시신
“남편은 죽지 않았다” 돌아온 건 시신
  • 김현지 기자
  • 입력 2016-02-15 09:51
  • 승인 2016.02.15 09:51
  • 호수 1137
  • 2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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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과 함께 생활한 가족들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이미 죽은 자신의 가족과 함께 생활한 가족들이 연이어 논란이다. 중학생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이를 방치한 40대 목사 부부 사건 외에도, 7살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하고 이 시신을 약 3년간 냉장고에 유기한 ‘부천 초등생 시신 유기’ 등 ‘사체훼손 및 유기’한 인면수심의 가족들이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 하지만 이 사건들에 대한 법의 잣대가 일률적이지 않아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집안 곳곳에 있던 죽은 가족들
개별 사건마다 법 적용 달라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장일혁 부장판사는 숨진 남편의 급여를 7년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된 A(여·4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남편의 시신을 7년간 집안에 보관한 ‘방배동 미라’ 사건으로, A씨는 숨진 남편의 보험금까지 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014년 7년간 숨진 남편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 집안에 시신을 둔 혐의(사체유기)로 송치된 A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통상 사체유기죄는 사체의 장소를 옮기는 것 외에, 사체를 매장하지 않고 방치하는 행위 역시 인정하고 있다. 이는 형법 162조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의 남편은 2006년 간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2007년 3월 숨졌다. A씨는 남편의 사망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발견 당시 남편의 시신은 거실에서 이불에 덮인 채 누워있었다. 심지어 깨끗한 옷을 입고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검찰은 A씨가 특별한 방부처리를 하지 않고도 남편의 시신이 부패되지 않고 보관된 점과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한 적 없다는 A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사체유기죄에 대해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잠잠해졌던 ‘방배동 미라’ 사건은 이후 A씨와 함께 약국을 운영하던 동업자의 고발 이후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됐다. 동업자는 A씨의 사기 행각을 주장했던 것. 이번 판결도 동업자의 고발장 접수에 따른 것이다.


동업자가 고발한 A씨의 사기 행각은 ‘죽은 남편을 생존한 것처럼 꾸며 남편 회사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았다’는 게 주 내용이다. A씨는 남편 사망 이후 사체를 집안에 보관하면서 남편의 회사에 허위로 명예퇴직을 신청해 휴직수당, 명예퇴직금과 퇴직연금 등 총 2억 원이 넘는 돈을 그해 4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챙겼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사기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장 부장판사는 “병원 진단서, A씨와 가족·가사도우미 등의 진술, 시체 검안서 및 사망기본증명서 등에 의하면 A씨 남편이 2007년 3월경 숨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A씨 남편은 숨졌음에도 현대과학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부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지난 2008년 가족들에게 남편을 돌봐달라고 말한 점 등에 비춰보면 남편이 숨진 걸 알면서도 이런 행동을 보였다고 납득하기는 어렵다"고 언급했다. 또한 “A씨는 약사 신분으로 수입이 일정했다"며 “남편이 숨진 사실을 알고서도 굳이 거짓으로 보험금 등을 받아 챙겼다고 보기엔 동기가 부족하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A씨의 범죄 여부가 입증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한 것. 하지만 죽은 사람과 생활한 A씨에 대해 의혹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특히 여론과 다른 법원의 판단에 ‘사체유기’에 대한 사회적 잣대가 일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살인죄?

‘40대 목사 부부’사건과 ‘부천 초등생 살인 사건’ 역시 법의 이중 잣대를 받았다. 중학생 딸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뒤 11개월간 미라 상태로 시신을 방치한 40대 목사 부부의 경우,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와 사체유기죄가 적용됐다. 이들은 현재 구속된 상태다.


하지만 부천 초등생 살인 사건의 가해자인 부모에겐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됐다. 이들 부부는 지속적인 폭행 및 굶김으로 인해 탈진 상태에 이른 아들의 치료를 장기간 방치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인천지검 부천지청 형사2부(박소영 부장검사)는 이들은 살인 및 사체훼손·유기·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부작위는 당연히 해야 할 위험 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한다.
 

이런 개별 사건마다 다른 법 적용에 대해 일각에선 사체유기 및 살인에 대한 경각심이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특히 방배동 미라 사건의 A씨는 최근 법원에서 사기 혐의에서까지 무죄를 받은 데다, 자녀의 죽음을 방치 및 사체를 유기한 부모들에게 다른 잣대를 적용한 데 대해 여론과 다른 방향의 판단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비판 여론 끝에 지난 12일 부천 소사 경찰서는 목사 부부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yon88@ilyoseoul.co.kr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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