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취준생, 중국에선 검사?
한국에서 취준생, 중국에선 검사?
  • 김현지 기자
  • 입력 2016-02-15 09:35
  • 승인 2016.02.15 09:35
  • 호수 1137
  • 2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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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에 휘말리는 ‘백수’들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보이스피싱, 대포통장·휴대폰 등 금융범죄로 인한 피해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에 사기주의보를 내린 지 오래고, 사법당국은 이들 조직에 대한 처벌 강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말 태국, 중국 등 해외에서 활동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 일부가 붙잡힌 가운데, 이들 중 일부가 20대 청년인 것으로 드러나 ‘범죄에 가담하는 청년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바 있다. 특히 높은 청년실업률 등 사회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르바이트 구하려다…범죄 노출
“장기간 일자리 못 구해…” 암울한 선택


# 지난해 말 모 은행에 통장을 개설하러 간 A(여·26)씨는 직원의 대답에 매우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대포통장 등 금융범죄 예방을 위해 목적이 없는 통장 개설은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B씨는 “은행 직원이 말한 ‘직업이 없는 청년의 경우에는’이라는 말이 더욱 불쾌했다”며 “취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대포통장을 개설하는 등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 같았다”고 부연했다. A씨는 결국 상담창구에서 일어나야 했다.

# 전라도의 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일자리를 구하고 있던 B(29)씨. 연거푸 취업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던 B씨에게 한 지인은 “중국에 가면 500만 원을 벌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특히 집과 생활비까지 따로 지급되는 직장이라는 말에 B씨는 곧장 중국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후 B씨는 지인의 솔깃한 제안이 ‘보이스피싱 콜센터’인 것을 알게 되어 한국에 돌아올 생각도 했지만 이미 큰돈을 맛본 B씨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을 양산하는 일에 더욱 빠져들었다. 한국에서는 취업준비생 신분이었던 B씨가 중국에서 ‘검사’로 바뀌던 순간이었다. B씨는 결국 지난해 말 경찰에 붙잡혔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범죄에 휘말리는 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해 한국 피해자들을 속였던 콜센터 직원이 한국의 20대 청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해당 청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청년실업률 10%’의 어두운 단면이라는 의견이 잇따랐다.


특히 취업난을 견디지 못하고 범죄에 가담한 청년들의 경우, 일반적인 범죄 목적과 달리 ‘취업의 한 종류’라고 잘못 알고 가담한 사례도 많다.


지난달 12일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이기동 소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취업이 어려워지자 젊은이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광고에 속고,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사기범들의 감언이설에 또 속는다. 대부분 범죄인 줄 모르고 보이스피싱에 빠져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위험 노출

취업 및 기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범죄단체인 줄 모르고 이에 가담하거나 가담할 뻔한 경우는 실제로 상당하다.


전자제품 업체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던 C(31)씨는 네 달 전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 했다. 반복된 실수 및 지각 등 때문에 C씨의 자리를 다른 아르바이트생으로 대체하겠다고 업체 측에서 C씨에게 통보했기 때문이다. 평소 C씨는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자신의 용돈 등 생활비는 물론, 부모님께도 매달 용돈을 드렸다. C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그만둘 수 없어 바로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하려 했지만 과거보다 더욱 구하기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루에 열 차례 이상의 구직 통화를 했던 C씨는 일을 그만둔 지 약 한 달이 지나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본 업체로부터 “일을 하게 해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정확한 업무는 면접장소에서 이야기해주겠다는 말에 C씨는 “약간 이상했지만 워낙 급한 상황이라 바로 면접을 보러 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면접 장소에서 C씨가 들은 업무 이야기는 ‘범죄’의 한 단계였다. 시중에 중고휴대폰 등 물품을 값싸게 사겠다는 전단지가 많이 있는데, 이 중고물품을 주변에서 모아오는 게 C씨의 일이었던 것. C씨는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상할 게 없었지만, 면접을 본 사람은 ‘일반 주부도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몰래 소매치기해서 가져 오기도 한다’고 말하며 ‘방법은 다양하다’고 귀띔했다”며 “이 이야기를 들으니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는 아닌 것 같아 바로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알아봤다”고 답했다.


C씨의 경우처럼 범죄위험에 노출됐지만 이를 자각하고 가담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B씨처럼 반대로 일확천금을 위해 금융·경제범죄 행각을 벌이는 이들도 있다.


법무법인의 한 관계자는 “과거보다 이런 범죄에 대한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높은 청년실업률 등 사회현실과 뗄 수 없는 범죄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치 등 희박한 경제관념 때문에 범죄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어, 이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최근 인터넷 도박으로 아르바이트 급여를 탕진해 현금 및 식료품을 훔치거나 부족한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중고명품가방을 거래할 것처럼 속인(사기 혐의) 경우도 있다.

범죄단체로 규정하기도

한편 사법당국은 취업난을 견디지 못하고 범죄에 가담한 청년들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추세다. B씨의 경우와 같이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활동한 경우, 이를 ‘범죄단체’로 규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말 대구지검이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원 35명을 붙잡아 사기 혐의 및 범죄단체 등의 조직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구속기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통상 범죄단체 조직 혐의는 조직폭력배의 경우에 적용돼왔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데다 점차 중국 등 해외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범죄행각을 벌이자, 이에 대한 처벌 수위를 더욱 높인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해 8월에 붙잡힌 보이스피싱 콜센터 조직원 41명 중 일부에게 사기 혐의 외에도 범죄단체 등의 조직 혐의를 추가 적용한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점차 금융사기 등 조직적인 범죄에 대한 법 적용을 확대하는 추세다.


법원의 판단 역시 이런 범죄에 대해 무거운 형량을 내리고 있다. 지난해 8월 대구지법은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에게 최소 징역 3년에서 최대 6년까지의 형량을 선고했다. 사기죄의 법정형은 최대 10년 또는 2천만 원의 벌금이라는 점에서, 이들 조직원들에게 개별적으로 내려진 형량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총책의 지시를 받아 수직적 통솔 체계를 갖추고 범행한 점, 제3자의 돈을 가로챌 공동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 점, 조직 탈퇴가 자유롭지 않은 점, 징벌 체계를 갖춘 점 등을 볼 때 형법상 범죄단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범죄인 줄 알지 못하고 가담하는 청년들도 상당하지만, 알면서도 ‘돈벌이’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과거보다 금융·경제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범죄단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면 이에 가담하지 않는 게 가장 최선”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yon88@ilyoseoul.co.kr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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