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어린이집 원장과 고등학교 교사가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해놓고 훈육임을 핑계대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나란히 벌금형을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에 따르면 자신이 돌보던 26개월짜리 남자아이의 팔을 깨문 혐의(상해 및 아동복지법 위반)로 기소된 박모(56ㆍ여)씨에게 재판부가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 씨는 2014년 6월 자신의 어린이집에서 다른 친구들을 깨무는 A(2)군의 버릇을 고쳐준다며 A군의 양팔을 여러 차례 깨물어 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A군의 부모는 “A군이 어린이집에서 팔 다섯 군데에 치아 자국과 함께 심한 멍이 들어 돌아왔다”면서 “물린 이후 밤에 무섭다며 울거나 다른 사람의 입이 다가오면 경기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팔을 무는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하면 아프다고 설명을 해준 것일 뿐 상처를 입힐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20년 이상의 유아보육 경력과 전문지식, 다섯 군데나 남은 상처 등으로 미뤄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1심은 “26개월 아이를 물어 아픔을 느껴보도록 하는 것이 적절한 훈육방법인지는 피고인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벌금 300만 원을 확정했다. 2심도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학대행위를 하려는 고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같은 재판부는 지휘봉으로 여고생 뺨을 때린 교사 배모(61)씨에게도 벌금 30만 원을 선고했다.
2014년 6월 배 씨는 학생 B양이 수업시간에 친구와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길이 30㎝짜리 플라스틱 지휘봉으로 오른쪽 뺨을 때려 타박상을 입힌 혐의(상해)로 기소됐다.
배 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훈육 의도의 체벌이어서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렸다. 2심에서는 “자는 학생을 깨우려고 책상을 두드리다가 지휘봉이 얼굴에 부딪쳤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같은 반 학생들의 진술 등을 확인한 법원은 체벌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훈육 의도가 있었더라도 얼굴에 멍이 들 정도의 체벌은 과도한 징계”라며 유죄로 판결했다.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유미현(43) 씨는 “많은 교사들이 자신의 “훈육”이 “학대”이거나 “학대에 가까운 행동”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디까지가 훈육이고, 어디까지가 학대인지 가해자인 교사와 피해자인 아이들까지도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교사뿐만 아니라 공부 안 한다고 초등생 아들을 무차별 폭행한 엄마도 있다.
지난 1일 인천 남동경찰서는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며 초등학생 아들을 무차별 폭행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어머니 A(45)씨에 대해 출석요구서를 발송했다.
A씨는 지난해 4월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의 빈 교실에서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 B(8)군의 머리를 서류뭉치로 수차례 때리는가 하면 의자에 앉아 있던 아들을 걷어차 바닥에 넘어뜨리고 밟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와 관련된 다른 고소 사건을 수사하던 중 B군을 폭행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의 존재를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A씨는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는 아들에게 순간적으로 매를 들게 됐다며 후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영상에 나온 폭행 장면만 봐도 훈육 차원을 넘어선 폭행으로 보인다”며 “A씨에 대해 폭행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입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영식 교수는 “장기적인 폭행을 당한 아이의 뇌를 연구했더니, 전두엽부터 후두엽,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까지 뇌의 광범위한 부위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드러났다”며 “어릴 때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하면 어른이 된 뒤에도 충동조절 장애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지난해 9월 개정·시행된 아동복지법은 '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했다.
'신체적 고통'에는 훈육을 목적으로 하는 체벌도 포함된다. 행위자가 교사나 부모더라도, 목적이 훈육이더라도 체벌이 법에 의해 정식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체벌이 금지되더라도 교사나 부모 입장에서는 훈육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체벌을 하지 않으면서도 훈육을 통해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방법에 대해 이들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8일 '아동학대예방을 위한 바람직한 훈육방법' 책자를 펴내고 바람직한 훈육 방법을 담은 노하우를 소개해 주목된다.
책자에 따르면 아동의 입장에서 보면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행위 선택이 그 행위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육체적 고통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아동이 그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해 자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체벌은 체벌 행위를 통해 폭력성을 학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교 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영향이 생길 수 있다.
사실 아동복지법 개정 이전에도 아동에 대한 폭행과 상해는 엄연히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범죄 행위였지만, 훈육과 체벌을 헛갈려하는 사회 통념상 교사나 부모의 아동학대 사례는 매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체벌 대신 사용할 대안적인 훈육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책자는 아동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토대로 문제 행동이 발생할 때 아동에게 정중히 요청할 것을 제안했다.
책자는 “아동과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맺어져 있다면 요청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아동에게 어떤 요청을 할 때는 정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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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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