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요즘 대한민국이 땅콩회항, 모 백화점 모녀사건, 몽고식품 회장이 직위를 이용해 운전기사를 폭행한 혐의 등 이른바 ‘갑질’ 논란, 갑의 횡포가 끊이지 않고 신문지상을 채우고 있다.
[일요서울]은 지난 한 해 문제가 됐던 갑질사례를 알아보고,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한 노력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야 인마’ ‘x새끼’등 막말…모 기업 이미지도 추락
불매운동 벌어지기도…당사자 떠나도 상처는 여전
재계 갑질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사건이 있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이 벌인 일이다. 2014년 12월 5일 발생한 사건이지만 지난해 초 가장 핫 한 이슈로 떠오르며 오랜 기간 회자됐다.
“어따 대고 말대꾸야.
내가 세우라잖아”
현재까지도 피해 승무원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소송이 진행중이며 갑질 논란이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상으로 모기업인 한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민적 공분은 아직까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14년 12월 5일 오전 0시50분쯤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 예정이던 대한항공 KE086 항공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중 다시 탑승구로 되돌아왔다. 비행기에서 박창진 사무장이 급하게 내렸다.
해당 비행기의 1등석에 탑승해 있던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의 지시였다. 조 부사장이 여승무원의 ‘땅콩’ 등 견과류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박창진 사무장에게 그 책임을 물어 강제로 내리게 한 것이다.
문제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해당 사건을 조사하던 국토부 김모 조사관이 검찰에 긴급체포됐다. 자신이 한때 몸담고 있었던 대한항공 측에 조사 내용을 알려준 것이었다.
국토부는 대한항공의 주요 사업 영역의 관리·감독 및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부처이고, 국토부에는 김 조사관처럼 대한항공 출신이 적지 않아 ‘칼피아(KAL+마피아)’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결국 검찰은 조현아 부사장에게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 등 4개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12월30일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교도소 안에서 편의를 받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갑질여왕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국내는 물론 외국 언론의 조롱거리가 됐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약자를 폭행했다가 결국 사과하고 자리에서 물러난 기업인도 있다. 몽고식품 김만식 명예회장이다.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중순께 운전기사가 폭행에 시달리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운전 기사의 주장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9월부터 김만식 회장의 운전기사로 일한 A(43)씨는 김 회장으로부터 상습적으로 폭행, 폭언을 당했다고 한다.
10월 중순께는 김 회장 부인의 부탁으로 회사에 가 있는 사이 김 회장으로부터 “왜 거기에 있느냐”는 불호령을 받고 서둘러 자택으로 돌아갔다가 구둣발로 낭심을 걷어차였다. 이 폭행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A씨는 아랫배 통증이 계속된 탓에 일주일간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A씨는 “김 회장이 수시로 욕설을 했다”고 진술했다. A씨가 휴대전화로 녹음한 파일에는 김 회장이 운전 중인 B씨에게 “개자식아”, “X발놈”, “싸가지 없는 새끼…문 올려라, 춥다”고 말한 내용 등이 담겨 있다.
A씨는 “김 회장은 기분이 나쁘거나 하면 거의 습관처럼 폭행과 욕설을 했다.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며 “행선지로 가는 길이 자신이 알던 길과 다르거나 주차할 곳이 없으면 욕을 일삼았다”며 “3개월 동안 너무 큰 고통을 겪었다. 더는 제2, 3의 피해자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나서게 됐다”고 호소했다.
사건 발생 직후 몽고식품은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을 통해 “명예회장의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명예회장이 직접 사과를 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태를 책임지고 명예회장직에서도 사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명한 주류회사 무학도 전 운전기사와의 갑질 논란에 휩싸이면서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았다. 운전기사는 무학에서 일하는 동안 회장에게 폭언과 폭행 등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무학 측은 금품을 노린 주장이라며 고소까지 하는 등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사건은 수행기사였던 송모씨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알려졌다. 송 씨는 ‘야 인마’, ‘야 새끼야’ 같은 폭언을 수시로 들었다고 한다. 서울 회장 자택의 쓰레기 분리수거나 애견센터에 맡긴 개를 찾아오는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무학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공갈협박 혐의로 전 운전기사 송 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상태다.
끝나지 않는 숙제
소상인업종 진출사업
뿐만 아니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투 논란은 ‘갑질 중의 갑’으로 떠오른다. 최근 부진에 빠진 백화점들이 속속 아웃렛에 진출하면서 곳곳에서 반대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달께에는 아웃렛이 모여 있는 서울 가산디지털단지가 시끄러웠다. 주변 아웃렛 상인들의 반대 집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에 이어 올해 롯데까지, 사업에 나서자 지역 상인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박재영 금천패션아웃렛단지 연합회은 “저희 영세상인들이 힘겹게 일군 삶의 터전이다. 이런 곳에 대기업 롯데가 들어오는 것은 상권을 키우는 게 아니고 골목상권을 초토화시키기 때문에…”라며 울분을 토했다.
아웃렛은 실적 부진에 빠진 백화점들의 생존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도심형 아웃렛 시장은 매년 증가세로 10조 원에 육박하는 상황, 대형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아웃렛이 올해만 6개가 추가로 문을 열 계획이어서 골목상권과의 갈등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물론 국회,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자성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로의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이를 위한 정책마련을 통해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법안도 상당수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아랫 사람에 대해 존중하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