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검찰이 단군(檀君)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리다 손실만 남기고 무산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고발인들과 허준영 전 사장(현 자유총연맹 회장)간의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용산 개발사업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일까.
‘용산개발 무산’ 서부이촌동 주민, 서울시에 1심 패소
법원 “사업 예상 어려워…시에 사업 취소 재량권 있다”
검찰이 이번 수사에 나선 것은 용산 개발을 추진한 허준영 전 사장 등의 배임(背任)과 수뢰(受賂) 혐의를 수사해 달라는 고발장이 접수된 데 따른 것이다. 고발인들은 허 전 사장의 주요 배임 의혹에 대해 그가 롯데관광에 특혜(特惠)를 안겼다는 주장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고발인들은 “허 전 사장이 롯데관광개발이 용산 개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계약상 특혜를 제공했고, 코레일(KORAIL)에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고발인들은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이 용산 개발을 위해 합작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드림허브PFV 대표를 맡았던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도 함께 고발했다. 허준영 전 사장은 지난 1월 25일 자유총연맹 보도자료를 통해 “허준영 회장은 2009년 3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코레일 사장을 맡으면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제와 국민, 용산주민을 위해 정당한 절차와 방법을 통해 사업을 잘 이끌어왔다”며 “허 회장 퇴임 1년 반 후 용산사업이 부도난 것에 대해 통탄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이 제대로 규명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일련의 사태는 용산사업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일부 세력이 연맹의 단체장을 음해하여 2월 25일 열리는 회장선거를 흔들려고 하는 불순한 의도에서 벌린 음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3가 51만5483㎡의 부지에 사업비 31조 원을 투입해 업무·상업·주거시설 등을 조성하는 복합개발 프로젝트로 출범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은 어떤 사업?
사업 부지에는 코레일 소유 용산 철도정비창에 더해 서부 이촌동 일대까지 포함되는 등 규모가 방대해 '단군 이래 최대 개발 프로젝트'로 통했다.
이 사업은 당초 2016년 말까지 초고층 14개동을 포함한 66개 건물을 세워 60조80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23만7000명분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세웠지만 첫삽도 뜨지 못하고 청산 절차를 밟았다.
코레일은 당초 고속철도부채 4조5000억 원을 해결하기 위해 용산 철도정비창 개발을 계획해 2006년 8월 철도경영정상화 정부종합대책이 확정됐다.
이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이 프로젝트에 ‘한강르네상스’를 연계해 2007년 8월 서울시와 코레일이 서부 이촌동을 포함한 통합개발합의안을 발표했다.
2007년 12월에는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개발사업자로 선정됐고 2008년 서부 이촌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도시개발사업 동의서(토지소유자 동의율 56%)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경기가 침체에 빠지자 사업성에 대한 우려가 커져 자금난이 불거졌다.
코레일은 자금을 추가 조달하기 위해 삼성물산을 비롯한 건설사들에 프로젝트파이낸스(PF) 보증을 요구했고 삼성물산은 이에 반발해 2010년 9월 대표주관사 지위를 반납, 사실상 발을 뺐다. 이후 삼성물산 지분 45.1%를 넘겨받은 롯데관광개발이 자산관리위탁회사(AMC) 용산역세권개발㈜의 지분 70.1%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발돋움하자 코레일과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다. 코레일은 사업 환경의 변화에 맞춰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부터 단계적으로 개발하자고 주장했고, 롯데관광개발을 비롯한 민간 출자사들은 당초 계획대로 일괄 개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금조달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용산사업은 2013년 3월 12일 만기를 맞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2000억 원에 대한 선이자 52억 원을 내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놓였다.
이후 코레일은 연말까지 필요한 2600억 원의 긴급 자금을 수혈하는 대신 사업 주도권을 쥐고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제안했으나 민간출자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2013년 4월 8일 이사회에서 사업 청산을 결의했다. 이제까지 용산사업이 조달한 자금은 31조 원 가운데 4조208억 원으로 추산된다. 초기 출자금 1조 원과 1차 전환사채(CB) 1500억 원, 토지에 대한 코레일 보증으로 조달한 2조4167억 원, 코레일 랜드마크 계약금 4161억 원 등이다.
지출금은 토지대금 2조9271억 원과 연체이자 1200억 원 등 총 3조471억 원으로 모두 코레일에 지급됐고 2013년 4월 기준으로 매몰비용은 9737억 원이었다.
토지매입 세금과 취득세 등 부대비용(3037억 원), 자본시장 금융조달비용(3409억 원), 기본설계비(1060억 원) 등에 7506억 원이 들어갔고 나머지 1195억 원은 용역비, 홍보비, 운영비 등에 쓰였다. 또 삼성물산 등 17개 건설사가 2000억 원, KB자산관리 등 재무적투자자(FI)가 2365억 원, 롯데관광개발 등 전략적 투자자(SI)가 2645억 원 등을 출자해 마련한 자본금 1조 원도 되찾기 어렵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한편, 용산 개발 사업이 무산돼 피해를 봤다며 용산구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서울시와 시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3부(부장판사 정인숙)는 강모씨 등 서부이촌동 주민 121명이 서울시와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회사(드림허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고 지난 1월 19일 밝혔다.
강 씨 등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드림허브 측이 사업 시행 동의를 구하자 2008년부터 2009년 2월 사이 동의서를 냈다.
사업이 무산되자 이들은 “서울시가 개발사업 실시계획을 면밀히 검토해 이상이 없는 경우에 한해 인가해야 함에도 이를 태만히 해 드림허브가 결국 도산하기에 이르렀다”며 “개발사업 추진 과정의 각종 피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또 드림허브는 주민설명회와 안내문 등을 통해 개발 보상금 등을 약속하며 확실한 기대나 신뢰를 하게 해 주민들이 이주용 주택 마련을 위해 금융 대출을 받게 하는 등 재산 관련 법률행위를 하도록 했다고도 주장했다.
주민들은 주택 거래 중단으로 인한 은행대출금 이자, 공시지가 상승으로 인한 재산세 증가분, 이에 따른 정신적 고통 위자료 등을 이유로 각각 3000만 원에서 5억6000만 원에 이르는 배상금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서울시가 2007년 이 개발사업을 계획할 당시 이 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만한 사정이 존재했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 변경은 사업 지정권자의 재량행위로 규정한다”며 “2013년 10월 드림허브의 사업을 이어받아 계속 진행할 수 있는 다른 단체가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는 이상, 서울시장이 시행자 지정을 취소하고 구역 지정을 해제한 것이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드림허브에 관해서도 “도시개발사업은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사업으로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며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고시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드림허브가 주민 동의서를 받으려 홍보를 했다 해도 원고들의 부동산을 매수할 것이란 정당한 기대나 신뢰를 부여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송승환 기자 songwin@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