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고로 인해 문정혁은 허리와 발목에 요추 탈출과 인대 손상 증상으로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고, 한지민은 목과 허리에 통증이 심하고 시야에 상이 2개로 보이는 증상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번 사고로 인해 드라마는 지난 23일 예정대로 3회는 방송했지만, 4회 이후 방송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내달 6일 재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두 주연배우들의 건강상태를 두고 봐야 하기 때문에 그마저도 불투명한 상태다. 늑대가 드라마 촬영중 사고로 결국 ‘결방’되는 사태를 빚자, 또 다시 드라마의 제작시스템에 대한 ‘안전불감증’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사실 ‘늑대’는 사고 장면이 차도를 무단 횡단하는 장면이었음에도 사전에 관할 경찰의 협조도 구하지 않고 진행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안전불감증’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촬영중 사고 비일비재
사실 방송 촬영중 ‘안전불감증’으로 사고가 일어난 것은 그 동안에도 비일비재했다. 지난 93년 인기가도를 달리던 배우 변영훈은 ‘남자 위에 여자’라는 영화촬영을 하다가 헬기가 한강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지난 97년 MBC 드라마 ‘산’의 여주인공 홍리나는 북한산에서 암벽등반을 하는 장면을 찍다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35m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인해 드라마가 중단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1년 이상 드라마를 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탤런트 김성찬은 지난 99년 모 방송사의 예능프로그램 촬영차 라오스에 갔다가 말라리아에 감염돼 끝내 고인이 되고 말았고, 장서희도 지난 2004년 1월 MBC ‘회전목마’ 촬영 중 차량으로 이동하가다 택시와 추돌하는 사고를 당해 목과 허리에 심한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MBC 주말드라마 ‘신돈’의 조일신 역으로 출연한 정명환이 촬영도중 칼에 찔리는 사고를 당한 적도 있었다. 드라마 촬영중 혹은 방송중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이렇게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 드라마의 제작관행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중요한 것은 ‘늑대’를 포함, 얼마 전에 종영한 MBC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와 지금 한창 인기리에 방영중인 SBS 드라마 ‘마이걸’ 등 현재 제작되고 있는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제작시스템 부실이 부른 ‘인재’
그렇다면, 이렇게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은 왜 바뀌지 않을까. 우선, ‘드라마 편성’이 방영 직전에나 확정되고, ‘캐스팅’ 역시 급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드라마 관계자들이 꼽는 촬영 중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대본이 너무 늦게 나온다는 것”이다. 대부분 촬영 당일까지 대본이 완성되지 않아 쪽대본’(완성 대본이 아니라 한 페이지씩 출고되는 대본)이 나오고 있고, 대본이 나오고 나서야 급히 촬영장소를 섭외하고, 촬영과 편집을 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라는 것. 결국, 십분 대기조처럼 대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시간에 쫓겨 촬영을 하다보면, 밤을 새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고, 결국 배우와 스태프들의 체력저하로 인해 사고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다급한 상황 속에서 충분한 리허설이 없이 액션 촬영이 진행되기 때문에 ‘늑대’와 같은 사고는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었던 ‘인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작 관계자들은 “드라마 촬영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다”, “제작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벗어나고 싶다”는 등의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라고 한다. 또한, 방송 3사의 치열한 드라마 시청률 경쟁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지상파 방송 3사의 드라마는 미니시리즈,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등을 포함해 주당 20편이 넘기 때문에 최근에는 각 방송사가 미니시리즈 방송시간을 70분에서 80분으로 늘려 제작진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사전제작’만이 최선의 방법
전문가들은 드라마 제작상의 사건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전제작’만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드라마 제작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를 사전제작하면 촬영 스케줄 조정 등이 쉬워 안전사고의 위험이 훨씬 줄어들 수 있다”면서 “만약 사고가 발생한다고 해도 ‘늑대’처럼 결방이 되거나 드라마 제작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제작제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 방송제작관계자는 “보통 외주제작사는 편성이 확정되기 전에는 제작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사전제작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라면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편성과 캐스팅, 작가 섭외를 끝내면 첫 방송 시간이 얼마 안남는다는 것. 최근에 유일하게 사전제작제를 도입해 만들었던 드라마는 지난 2004년 제작됐던 박지윤과 주진모 주연의 ‘비천무’가 유일하다. 국내에서 크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100% 사전제작 드라마로서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또한 최근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궁’역시 처음에는 사전제작제였다. 하지만 올 상반기 방영될 예정이었던 다른 드라마가 취소되면서 ‘궁’의 방영일이 몇 달 앞당겨지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100% 사전제작이 불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1회분 방송이 나갈 즈음에 이미 10회분의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를 여유있게 촬영할 수 있고, 더불어 드라마의 완성도 역시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게 드라마 관계자의 전언이다.
관계자는 “드라마 ‘궁’ 같은 경우 2년 이상 준비해 온 작품”이라면서 “드라마를 사전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에 우리나라 제작 여건상 쉽지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많은 외주제작업체들이 사전제작제 도입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사전제작을 하는 드라마가 많아지지 않겠냐”면서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시스템이 변할 수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김민주 kimmj@li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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