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한상윤 소설가
[인물탐구] 한상윤 소설가
  • 박찬호 기자
  • 입력 2016-01-25 13:05
  • 승인 2016.01.25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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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파격적인 여성상 보여주는 홍은제의 이야기

자신의 운명에 맞서 주체적 삶 살고자 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

[일요서울 | 박찬호 기자] 여성으로서 겪던 불합리한 상황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조선시대에 당당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는 남양 홍씨 문중에 두고 두고 회자되는 이야기다. 역사인물을 소설로 형상화 하고 있는 한상윤(74) 작가가 연작 장편소설로 엮은 <홍문안洪門雁 집 이야기>(문예바다)120일 출간되어 새해 문단과 역사 소설를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 <
홍문안 집 이야기>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저는 늘 우리의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2013년 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묻습니다>를 출간했습니다. 여성시인 허난설헌은 워낙 잘 알려진 인물인데 책 내용은 그의 남편 김성립에 대한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역사인물들을 조명한 세 번째 책입니다. 허난설헌은 조선시대의 여성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천재 시인으로 두각을 드러낸 뛰어난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비해 남편 김성립은 기생이나 끼고 허송세월한 한량이거나 대과에 급제하지 못한 그 시대의 낙오자로 고착되어 왔어요. 선택과 소멸의 역사 흐름이 반드시 다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김성립과 허난설헌 사이에 비록 모두 죽고 말았지만 아이 셋을 두었지요. 반면 허난설헌이 죽은 뒤 맞은 후처 남양 홍 씨와의 관계에선 아이가 없었어요. 또 김성립은 첩을 두었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난설헌의 시적 감성과 수백 편의 시문들은 빛나 마땅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부풀려 떠들 만큼 불화하고 불행했던 부부는 아니라는 거예요. 난설헌이 명시를 남겼다면, 김성립은 의병활동으로 나라를 지킨, 조용하고 담백한 인물입니다.
 
이번에 출간한 <홍문안집 이야기>는 완산이씨 문중 맏아들 이명인은 남양 홍씨 가문 홍이원의 막내딸 홍은제와 백년가약을 맺은 첫날밤 정신을 잃고 일어나지 못합니다. 홍은제는 시댁에 들어간 후 시댁과 재산을 둘러싼 송사를 벌입니다. 홍은제는 자부심을 잃지 않고 시댁의 부당한 계략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은 흔히 우리가 조선시대의 여성에 관해 가져왔던 편견을 일순간 깨뜨려 주는 인물입니다.
 
묻혀버릴 수도 있는 실존 인물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면서 지나간 선조들의 삶의 여정이 오늘의 현실과 닮았음을 보았고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뜨리고 싶었습니다. 홍은제의 이야기는 경북 봉화군의 옥마(玉馬)’지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양홍씨의 홍세공은 유성룡 등과 임진왜란 때 군수 조달을 책임지면서 노비 1000여 명을 면천 했다고 합니다. 홍세공의 증손자 홍이원도 200여 명의 노비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며 선행을 배풀기도 했습니다.
 
-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을 받은 사람과 단체는.
임란(壬亂)정신문화선양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시는 남양홍씨 중량장파 종중 홍순벽회장님의 도움은 이 소설을 쓰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습니다. 3년여의 취재와 집필기간이 소요되었습니다. 홍씨 집안이야기는 영화사쪽에서 영화로도 제의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소설속 인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저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소설을 쓰는 동안에 인수대비의 외할아버지 문량공 홍여방의 묘소가 연천군 향토문화재 22호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 등단을 44세에 하셨는데
늦게 등단했지만 그것이 작품 활동 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늦었다는 콤플렉스와 저 자신에게 보상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작품에 더욱 치열하게 파고들게 되거든요. 경험 면에서도 젊을 때보다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도 넓어지고, 달고 쓴 이야기 모두를 품안에서 녹여낼 수 있는 넓은 시야가 형성되기에 나이는 소설쓰기에 도움을 준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사실 평론가와 소설가로 같은 문학의 길을 걸었던 남편에 대한 제 마음이 오버랩되는 부분도 있어요. 결혼 후 작품을 쓰지 못한 저와 달리 남편은 24살에 등단해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꿈을 펼치지 못한 아쉬움과 답답함 때문에 보이지 않게 남편과 늘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거든요. 13년 전 남편이 죽고 나서야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군분투하던 모습들을 곱씹게 되더라고요.
 
- 조선시대의 인물들을 소설로 그려내려면 자료 찾기가 어렵지 않았는지
역사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쓰더라도 뒷받침하는 배경을 살펴야 하고 여러 자료를 뒤져야만 정확한 표현이 가능하지요. 그래서 17세기 조선 홍은제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면서 역사 공부 제대로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나라를 가능케 한 인물들이 사장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가벼운 세태 속에서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처음엔 생소한 단어에 일일이 각주를 달아 친절하게 설명했는데 내가 공부하고 나니 군더더기를 붙이지 말자 싶어 웬만한 것들은 뺐어요.
 
- 작품을 쓰면서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갈등구조예요. 인간의 본능이 소설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독자들이 속 시원해 해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소설 속에서 발가벗는 것과 같아요. 인간의 오욕칠정에 성실해야 하지요. 작가가 갈등구조를 주저하며 눈치 보면 그걸 독자들이 다 읽어냅니다.
죽을 때까지 증오심과 갈등, 사랑에 부침하면서 살다 죽는 것이 인간이지요. 그걸 소설에 그대로 담고 해법도 찾아보고자 하는 겁니다.
 
-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인간적 서정성이나 아름다움을 도외시하고 소통이 부재한 것을 보게 됩니다. 문장을 이성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장기일 수도 있지만 읽고 나면 삭막하고 글 읽는 푸근함이 삭감되는 것이 아쉬워요. 어떤 부분에서는 풍요 속에 의식이 제멋대로구나, 하는 아주 기분 나쁜 배신감까지 들기도 합니다. 작품에서 간절함과 절실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화가 나고 실망적 이에요. 나이들어 고루해지지 말자 싶어 젊은 작가들에게 배우려고 그네들의 작품을 읽는데 상황전개가 아주 살벌하고 메마른 감성이 그대로 표출돼요. 세태를 그대로 고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대안과 희망을 열어주는 게 작가가 할 일이잖아요.
 
- 앞으로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계신지?
두 가닥으로 소설을 잡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동안 작품 활동해왔던 역사소설과 또 하나는 제가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 퇴촌을 중심으로 한 마을이아기 연작소설로 비탈진 숲 마을은 춥다’-빈 집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진짜 농사꾼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 한상윤 소설가는
 
경기 이천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월간문학 단편어머니의 불빛당선.
창작집 <고리> <메마른 숲>, 장편소설 <김대건(·)>, <거친밥 먹고 베옷 입기>, <묻습니다> 저전적 연작소설 <침묵지키기 그 아름다운 슬픔>
대한민국 문학상 신인상, 경기도예술인대상, 한국소설문학상, 손소희문학상, 숙명문학상, 들소리문학상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광주문예연구회회장
 
chanho227@ilyoseoul.co.kr
 

박찬호 기자 chanho22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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