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위 사태로 본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JYP 소속 걸그룹인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촉발한 사태가 핫 이슈다. 대만 출신인 쯔위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대만 국기, 즉 청천백일기를 흔들었다가 중국 발 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16세 가수가 제작진이 준비해둔 고향의 국기를 들었을 뿐인데, “쯔위는 대만 독립주의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졌고 중국 내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쯔위가 영상을 통해 사과했지만, 대만과 중국의 정치적 문제와 맞물리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쯔위 논란은 중국에서 활동 중인 대만 출신 친중 연예인 황안이 공개적으로 쯔위의 대만국기 문제를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황안은 예전부터 친중국정부 성향의 공격적인 극우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쯔위에 대한 중국 대륙의 민심이 험악해지자 쯔위와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중국 대륙을 향한 사과 동영상과 사과문을 발표한다.
그러자 이번엔 대만에서 논란이 들끓으며 난리가 났다. 대만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쯔위가 공격을 받는 사태가 안타깝다는 의견을 넘어서서, 대만 독립주의자들이 쯔위를 앞세워 정치문제화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쯔위 사태가 촉발된 시점이 대만의 새 총통을 선출하는 시점이었고, 쯔위 사태로 인해 반중국 기류가 확산되면서 대만 최초로 대만의 독립을 주창하는 여성 총통이 당선됐다.
대만ㆍ중국ㆍ한국 등 흔들어
쯔위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대만 독립의 투사가 돼버렸고 중국 본토인들의 조롱의 대상이 돼버렸으며, JYP엔터테인먼트는 대만인들의 공적이 돼버렸다.
중국은 대만도 중국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두 나라는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대만은 1949년 중국 내전 당시,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밀린 장제스의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 가서 수립한 나라다.
그 뒤 1971년 유엔총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즉 중국 대륙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로 인정됐고, 대만은 유엔에서 탈퇴했다.
중국인들은 대만을 별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One-China Policy)’ 원칙에 대해 어릴 때부터 철저히 교육 받는다. 중국 대륙과 홍콩·마카오·대만은 하나이며, 합법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하나라는 것.
중국과 대만은 1992년에 협의된 ‘92공식’에 따라 양국이 각자의 명칭을 사용하는 대신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때문에 지금 국제사회에서 정식국가로 인정받는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뿐이다.
대만은 올림픽에 출전할 때도 청천백일기를 내세울 수 없고 대만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어서 올림픽용 깃발과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란 명칭을 사용한다.
이 가운데 중국 대륙과 대만은 협력과 대립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중국의 국력이 신장되고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커지면서 대만 내에서 친중파와 반중파(대만독립지지파)가 대립하게 된다.
이번 대만 총통선거도 사실상 친중파와 반중파의 대결이었는데, 백중세였던 선거판세는 쯔위 사태를 빌미로 자유를 억압받는 대만의 모습이 쯔위에 대입되면서 반중파로 표가 몰렸던 것이다.
쯔위 덕분에 정권을 차지한 대만의 반중파 정권은 당연히 쯔위를 대만독립의 아이콘으로 만들려고 하고 쯔위의 의사와 상관없이 중국 대륙인들은 쯔위를 조롱하고 비난하고 있다.
쯔위 사태는 단순히 대만국기 한 번 흔들었다고 벌어진 사태가 아니라 중국과 대만에 수십 년 동안 쌓여왔던 갈등이 표면화 된 것이다.
현재 중국은 세계 최대 시장임에는 틀림없다. 실제로 페이스북 등 SNS를 보면 많은 중국인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회사는 중국에서 돈을 벌어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쯔위가 실제로 독립을 주장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던 것도 아닌데 다소 성급하게 ‘굴욕’ 사과를 했다는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애초에 회사가 먼저 나서서 예능과 정치를 구분짓고, 정치적 해석의 여지가 없는 표현의 자유임을 단호하게 명시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한 대만 네티즌은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에게 “백 년 전에 한국도 일본 때문에 식민지를 겪은 적이 있다. 그 시대에 한국 역시(지금의 대만 사람들이 자신을 중국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 것처럼) 불쌍하게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해야 했다”고 글을 남기며, 대만사람인 쯔위에게 중국인이라고 말할 것을 강요한 것에 대해 비난했다.
“공개사과는 인권침해”
이번 쯔위 사과 영상으로 인해 JYP는 소송에 휘말리게 됐다.
지난 19일 대만 인권변호사 왕커푸가 쯔위를 비난했던 대만 출신의 중국 가수 황안과 사과하게 한 JYP를 현지 검찰에 고발했다.
이날 왕커푸 변호사는 JYP가 쯔위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했다며 ‘강제죄’ 혐의로 타이베이 지방법원 검찰서에 JYP를 고발했다. 그는 JYP가 쯔위의 자유 의지를 침해해 쯔위가 사과영상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도록 했다며 고소 이유를 덧붙였다.
사단법인 한국다문화센터도 지난 21일 쯔위가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공개 사과하게 한 것은 인권 침해라며 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이 단체는 이날 제출한 진정서에서, 쯔위의 소속사인 JYP가 사죄를 강요한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소속사 측이 쯔위 부모의 동의가 있었다고 했지만, 국가 기관의 정확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만과 중국의 감정싸움이 격화되자 중국 언론은 진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쯔위가 직접사과까지 했으니 중국은 더 이상 갈등 국면을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쯔위를 “중국의 빛”, “중국의 딸”이라고 하면서 네티즌들에게 흥분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한바탕 불거진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갈등이 차이잉원 정권에서 어떤 분위기로 이어질지는 좀 더 주목해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한편, ‘쯔위 파문'을 일으킨 황안이 과거 한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의 이중적 행동 때문에 중국과 대만에서 ‘反황안 정서'가 확산된 상황이다.
대만에서 태어났지만 중국에서 활동하며 대만을 비판하는 게 직업인 것처럼 보이는 연예인 황안은 쯔위를 ‘대만 독립분자’로 매도하며 여론에 불을 질렀다. 때마침 대만이 선거를 앞두고 있었던 터라 이 문제는 순식간에 정치 이슈로 비화됐고, 결국 쯔위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대만의 여론까지 뒤흔든 존재가 됐다. 데뷔한 지 3개월 만에 외교 문제를 일으킨 가수는 쯔위가 처음이다.
특히 대만의 분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대만 일부 노래방은 쯔위 사건을 촉발한 가수 황안의 노래를 제공하지 않을 방침이다.
황안은 다음 달 3일 대만을 찾아 해명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지만, 대만 국민은 그의 방문을 반대하고 있다.
쯔위의 소속사 JYP의 홈페이지는 사이버 공격을 받아 접속되지 않기도 했다. JYP는 쯔위의 공개 사과와 관련해 비난이 일자 쯔위에게 사과를 강요한 적이 없고 부모와 상의한 뒤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지난 21일 쯔위가 소속된 걸그룹 ‘트와이스’를 ‘국기 논란’ 이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게 했다. ‘골든디스크’ 시상식에 참석한 쯔위는 이번 논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굳은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쯔위는 플래시 세례 속에서도 웃음기 없는 모습으로 포토월 앞에 섰고 ‘트와이스’가 음반 부문 신인상을 받아 수상 소감을 말할 때에도 관중들의 환호가 있었으나 경직된 표정이었다.
쯔위는 “이 상을 받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이 자리에 오신 아버지와 어머니께 감사드린다”며 중국어로 소감을 밝혔고 쯔위의 옆에 선 다른 멤버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시상식 첫날인 지난 20일에는 JYP의 대표 박진영이 ‘국기 논란’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박진영 대표는 소상 소감 도중 “내일 트와이스가 골든디스크 신인상 후보에 올랐더라”며 “오늘이 트와이스가 데뷔한 지 3개월 되는 날이다”고 밝혔다. 이어 “요즘 많이 힘들 텐데 서로 아껴주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니까 기특하다”며 “가능하면 내일 상도 꼭 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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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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