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우리은행이 민영화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지만 결과가 쉽지 않다. 그동안 관심을 보였던 중동 국부펀드와의 협상도 사실상 별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내달 유럽을 찾아 막판협상을 벌인다는 계획이지만 뚜렷한 실체가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따라서 향후 진행 사업들도 발목 잡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일각에선 이번 민영화 작업이 뒷심을 받지 못한 이유를 ‘금융당국 실세 교체설’과 연관짓고 있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동 국부펀드 ‘사실상 중단’… 4번째 실패로 ‘울상’
지지부진 진행에 업계 판도 변화 불가피…관치 논란도
정부는 우리은행 민영화가 4차례 실패한 후 지난해 7월 예금보험공사의 우리은행 지분 51% 중 30~40%를 4~10%씩 쪼개 파는 ‘과점주주 매각방식’을 추가방안으로 채택했다.
그 결과 아부다비투자공사(ADIC) 등 일부 중동 국부펀드들이 우리은행 지분 인수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훈풍이 부는 듯 했고, 이른 시일 내 마무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부풀었다.
그러나 협상 초반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배럴 당 40달러대였던 국제유가가 최근 배럴 당 2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중동 국부펀드들이 자국 정부의 재정적자를 막기 위해 글로벌 투자펀드의 자금을 회수하고, 신규 투자 계획도 미루거나 취소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 우리은행과의 협상도 지지부진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은행 인수 협상이 잠정 중단된 것도 이런 이유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과 정부는 중동 국부펀드와의 협상 대신 새 투자처 찾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다음달 중순 영국 런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싱가포르를 돌며 투자설명회(IR)를 열 계획이다. 행장이 직접 우리은행 매각 IR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마저 상황이 좋지 못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 경기둔화 우려로 국제적인 인수·합병(M&A) 시장이 위축된 상황이어서 새 투자자를 찾는 작업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광구 행장의 유럽 일정이 구체화 된 것은 없다”며 “비행기 표조차 구매하지 않은 상황인데 유럽 소식이 외부로 왜 알려졌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투자자처를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은 맞고 향후 계획에 따라 유럽 등 해외에 나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매각 적정가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 우리은행 주가가 주당 8540원으로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가격(1만3500원)을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 ‘뒤숭숭’
또한 외국계 은행에 대한 자국민들의 이미지 개선도 문제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먹튀논란이 불거졌고, 이를 접한 자국민들은 유사한 일이 또 다시 불거질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은 신뢰와 이미지를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구조인데 둘 중 하나라도 깨지면 사업 진행이 어려운 업종이기도 하다”며 “외국계 기업인수 후 먹튀 논란이 또 다시 불 경우 우리은행이 그동안 간직했던 이미지마저 상실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감독당국 내부에서도 외국계 PEF에 극도로 부정적이다.
한 당국자는 “우리은행을 유명 외국계 PEF에 매각하는데 흔쾌히 사인할 공무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과거 먹튀의 아픔을 재현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일각에선 이번 우리은행 민영화가 늦어지는 이유를 금융당국 실체 교체와 연결짓기도 한다.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우리은행 지분 매각을 두고 해외자본을 유치하는 데 앞장섰지만 최근 교체되면서 민영화 작업의 힘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해 9월 정 전 부위원장은 우리은행 투자 수요 점검을 위해 UAE 등 중동 3개국을 방문해 현재 행정기관 및 국부펀드 관계자들과 면담을 갖고 우리은행 민영화에 참여해줄 것을 제안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실제로도 몇몇 중동 국부펀드에서는 인수 희망 의사를 밝혔으며, 금융위는 매각협상을 위해 전담팀을 꾸리기도 했다.
금융 관계자는 “어차피 피인수기관인 우리은행이 해외 투자자 유치를 챙겨왔다”며 “부위원장 교체에 따른 영향력을 부인했지만 해외 투자자를 설득할 때나 시장 파급력으로 볼때는 입김 센 고위급의 영향력을 무시 못한다”고 말했다.
정 전 부위원장은 ‘금융권 실세’로 통하는 인물이다.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등과 함께 당시 박근혜 후보자의 ‘금융 교사’역할을 했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평균 임기가 1년 안팎인데도 불구하고 금융연구원 출신인 그는 3년을 거의 채웠다.
금융 관계자는 “중동에 대한 매각을 접었다기보다 다른 투자자도 물색해 원활하게 민영화가 이뤄지도록 하자는 차원"이라며 "해외 투자자가 많은 영국과 독일을 방문해 투자를 설득할 방침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