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연초부터 부동산 시장은 온갖 부정적인 전망들로 가득 차 있다. 많은 세입자들이 전세대란으로 인해 월세와 매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고분양가와 터무니없는 월세가격 때문에 쉽지 않은 모양새다. 특히 세입자들뿐만이 아니라 일선 부동산 업자들도 “이사철은 아닌데, 이 정도로 물량이 없는 경우는 우리 역시 처음이다”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공급물량은 없고 수요만 넘치는 집 구하기
값 떨어진다더니…세입자 체감 전혀 안 돼
[일요서울]이 강남구, 강북구, 강서구 등지에 소재한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을 때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월세든 전세든 없어요. 그냥 눈 딱 감고 매매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겁니다”였다.
집을 구하고 있다는 조모씨는 “결혼 준비를 하기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원룸을 처분하고, 전세를 얻으려 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도저히 살 만한 집이 없다. 흔히 말하는 ‘반전세’ 찾기도 힘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연말과 연초는 부동산 시장 비수기로 분류되지만 수도권 전세 시장은 전세난이 고질화되는 추세다. 기존 전세 세입자에 매매를 고민하다 전세를 택하는 수요자들이 합세하면 물량부족과 가격폭등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매매거래 절벽이 예상되고 있는 점도 전세난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상, 대출규제 시행, 공급과잉 우려 등 잇단 악재도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매매 거래 감소세는 강북권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전세난에 지쳐 내 집 마련에 나섰던 실수요자들이 시장 상황 악화에도 호가가 떨어지지 않자 매매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향후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매매 수요가 한꺼번에 전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점이다.
또 강남권은 재개발로 인한 전세 수요 급증이 예상된다. 강남4구에서 지난해 2월 개포주공2단지를 시작으로 개포주공3단지, 고덕주공2단지, 고덕주공3단지, 고덕주공4단지 등 1만 가구 이상이 이주에 들어갔다.
여기에 지난 7일 1970가구 규모의 개포시영아파트가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다. 올해만 약 2만 가구의 이주가 계획돼 있다. 단기간 내 수만 가구의 이주가 동시에 이뤄지다 보니 이들 지역에서 전셋집을 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매매가 수월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신축매물의 고분양가 논란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최고급 단지라는 점을 내세우고 일반분양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편과 좋지 않은 시장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고분양가 경쟁이 지나치다는 편이 대립하고 있다.
일례로 올해 강남권 신반포자이의 분양가는 3.3㎡당 평균 4290만 원으로 책정됐다. 강남권에서 공급된 재건축 단지의 평균 분양가 중 역대 최고가로, 지난해 10월 분양한 반포 래미안 아이파크(3.3㎡당 4240만 원대)보다 약 50만 원이 비싸다.
강남권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분양시장이 활황이라는 기사들을 수두룩하게 봤는데,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면서 “시세가 오르는 것도 아니고, 다들 돈이 많아서 매매에 나서는 것도 아닌데 분양가만 계속 오르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안 보이는 해결책
공급 과잉 영향으로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 곳은 오피스텔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공급된 오피스텔은 6만 494실로 2014년(4만2805실)보다 41.3%(1만 7689실) 많았다. 특히 경기도는 2014년 7415실에서 지난해 3만303실로 4배 이상 늘었다. 이렇다보니 공실만 늘어나고 있다.
전세 구하기에 실패하고, 매매를 할 자금이 없는 이들이 선택해야 하는 마지막 답안인 월세도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월세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 선택을 한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임대차거래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11%포인트 이상 올랐다. 확정일자를 신고하지 않은 순수월세가 제외된 통계라 전체 임대차거래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상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주택 전월세 거래량은 147만2398건이다. 전체 임대차거래 중 월세 비중은 전년도 41%에 비해 3.2%포인트 증가한 44.2%로 나타났다. 2011년 33%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5년 사이 무려 11.2%포인트나 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아파트 전세 수요는 많은 반면, 매물은 적고 덩달아 전셋값까지 급증하자 부담을 느낀 세입자가 월세시장으로 몰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자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을 굴려도 은행 금리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자 월세로 전환한 전세의 월세화 현상도 힘을 보탠 꼴이다.
한편 부동산 정책 역시 월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당분간 세입자들의 주거안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서민·중산층의 주거안정을 강화하고, 주거비 절감을 통한 가계 소비여력 증대를 유도하기 위한 올해 주택정책 방향이 설정됐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주거비 부담이 큰 월세 주택 공급만 나열돼 있는 현실이다. 주거비 지출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전세난 해소 방안은 다소 미흡하다. 전세를 못 구하고 월세살기 싫으면 어쩔 수 없이 집을 사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반복될 여지가 많다는 평가다.
올해 5월 전세 계약이 만료가 된다는 한 세입자는 “단순히 월세가 싫다는 것이 아니다. 매월 주거비 지출이 많아지면 아예 일상생활이 안 된다. 그렇다고 매매를 할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나한테 지금 나와 있는 부동산 정책은 전혀 쓸모가 없다”고 지적한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