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사라진 외국인 여행객들 ‘무사증 제도’악용 심각
제주서 사라진 외국인 여행객들 ‘무사증 제도’악용 심각
  • 김현지 기자
  • 입력 2016-01-25 09:48
  • 승인 2016.01.25 09:48
  • 호수 1134
  • 2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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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취업’ 무더기 이탈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경기도 ㄱ시에 있는 지하철 역 인근.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이 밀집해 사는 이 곳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한 인종간의 칼부림 사건은 물론, 불법 체류가 의심되는 외국인들을 단속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몇 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 이주노동자는 최근 불법체류·취업자를 쫓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고 말했지만, 더 자세한 건 이야기할 수 없다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과거부터 종종 있어온 일…편견은 자제해야


외국인들의 불법 체류·취업은 꾸준히 문제로 거론됐으나, 최근 발생한 ‘제주도 내 무단이탈자’ 사건 이후 이목이 더욱 쏠리는 양상이다.


지난 13일 제주도에 무사증(비자 없이 30일간 체류가 가능한 제도)으로 입국한 베트남 여행객들이 무더기로 사라졌다. 21일 현재 총 이탈자 수는 59명으로,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최근 이탈자 27명을 찾아내 베트남으로 강제추방했다고 밝혔다.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21일 “현재까지 추가로 적발한 베트남인은 없으며, 해경 등과 함께 협조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관광객들이 여행 중 종적을 감춘 건 지난 13일. 베트남 단체여행객 총 155명은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제주도 여행을 위해 입국했다. 하지만 두 번째 날인 13일, 이들 중 59명이 단체로 숙소에서 사라져 ‘불법취업’ 논란이 확대됐다. 제주도는 무사증 도입 이후 여행객 중 무단이탈자가 꾸준히 있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종적을 감춘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무단이탈자 증가

이번 사건을 두고 여행객들이 불법취업 및 체류를 위해 이탈했다는 여론이 지배적 상황인 가운데, ‘터질 게 터졌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부터 있던 일이지만 매년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중 무단이탈자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2002년 제주도가 도입한 무사증 제도를 외국인 관광객들이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제주도가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무사증 입국 허용 국가를 192개국으로 확대하면서, 무사증 입국자 중 무단이탈자가 증가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애초 이 제도는 과거보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증 없이 제주도를 방문할 수 있도록 관광활성화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한국 체류가 어려운 일부 외국인들이 불법 체류·취업을 위해 이 제도를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왔다.


실제로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무사증 제도 도입 이후 증가했다.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의 ‘제주관광 월별통계’ 자료에 따르면, 무사증 제도 도입과 함께 이 제도가 192개국에 확대 적용된 2006년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이 크게 증가했다. 다만 지난해 한국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2015년 제주도를 방문했던 외국인 관광객 수가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무사증 제도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여행객들 중 상당수가 무단이탈을 하고 있는데, 곧 외국인들의 불법체류·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부 통계 및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 등에 따르면 무사증 제도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은 2008년 2만 3000명에서  2010년 10만8679명, 2011년 11만3825명, 2012년 23만2929명, 2013년 42만9221명, 2014년 64만5301명, 2015년 62만9724명 등으로 해마다 크게 증가해왔다.


이와 비례해 무단이탈자 수도 증가해왔다. 무사증 입국자 중 무단이탈자 수는 2012년 371명, 2013년 731명, 2014년 1450명, 2015년 4353명이었다.


특히 전체 불법체류자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하다. 법무부의 2014년도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불법체류자 중 사증면제(B-1)로 인한 불법체류 비율이 22.1%에 달했다. 비전문취업(E-9)에 이어 두 번째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2015년 무사증 입국자 중 무단이탈자는 2014년 대비 약 3000명 증가했기 때문에, 지난해 역시 B-1로 인한 불법체류 비율이 2014년 통계보다 증가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몇 년 전쯤 제주도를 방문한 중국 여행객이 갑자기 없어져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고 말해, 무사증 여행객 중 무단이탈자 문제가 과거에도 있었다는 지적에 힘을 보탰다.


이 관계자는 “그 중국인은 브로커를 통해 한국에 불법 체류할 목적으로 들어왔었던 것으로 소문이 났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 여행객 중 브로커를 끼고 들어와 무단이탈하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며 “제주도에 거주하며 불법 유인책, 즉 브로커만 전담으로 하는 이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여행업계 안에서 듣곤 했다. 다만 이들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문제”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김현희 판사)는 무사증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온 뒤 무단이탈(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위반 혐의)한 중국인에게 징역 6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인 및 중국인 브로커가 서로 연락해 일을 모의한 뒤 10월 중국인을 이탈시키려 했지만, 해경이 이들을 현장에서 적발했다. 
 
지나친 색안경 우려 
 
최근 제주도를 일주일간 방문했다는 A(여·26)씨는 자신이 머물렀던 펜션의 한 중국인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A씨는 “그 중국인이 항상 펜션에 있었는데, 내가 머무르는 동안 한 번도 외부로 나간 적을 본 적이 없다”며 “이 외에도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당시 ‘불법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인가’란 의문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다만 A씨는 이런 내용에 대해 ‘정황상’이란 단어를 덧붙였다.


무사증 제도를 통해 들어온 여행객 중 무단이탈자가 증가하는 데 따라, 일각에선 A씨처럼 외국인들에게 근거 없는 의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일부의 사례를 ‘집단 전체’로 확대해석해, 그릇된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이어 발생한 무단이탈자 사건 때문에,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무조건적인 불편한 눈길은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기업 하청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인 이주노동자 B씨는 “범죄 등 좋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면, 제3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나쁘게 보는 경우를 많이 겪어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B씨 및 B씨와 함께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한 목소리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 불편한 시각 등을 자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yon88@ilyoseoul.co.kr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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