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빙상연맹, 빛바랜 원칙주의 득실은
누구를 위한 빙상연맹, 빛바랜 원칙주의 득실은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6-01-18 14:47
  • 승인 2016.01.18 14:47
  • 호수 1133
  • 6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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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화 선수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빙상종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최근 빙상연맹이 바뀐 규정을 내세워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상화 선수의 경우 서로 바뀐 규정에 대해 충분히 인지했는지를 놓고 공방을 이어갔고 포스트 김연아로 꼽히는 유영의 경우 바뀐 나이 규정 탓에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태능선수촌에서 짐을 쌓아야만 했다. 더욱이 평창동계올림픽을 2년여 남겨둔 상황에서 그간의 파벌, 폭력, 승부조작 등으로 얼룩진 연맹이 이제는 국가대표 선발 악재까지 겹치며 쇄신과 환골탈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바뀐 국내 규정에 선수들 갈팡질팡…좋은 성적불구 국가대표는 탈락
 파벌·폭력·부정승부로 얼룩진 빙상연맹…스스로의 잘못에는 눈감아


대한빙상경기연맹(회장 김재열)은 지난 12일 이상화 선수의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 5차전 출전에 대해 “규정은 모든 선수들에게 공정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 선발전에 불참한 이상화는 원칙에 따라 5차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이상화는 월드컵 5차 대회 출전이 무산됐다. 앞서 그는 지난해 12월 22일부터 23일까지 태릉국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제 42회 전국 남녀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 및 제 70회 종합선수권에 불참하면서 선발되지 못했다. 이상화는 당시 피로 누적을 이유로 내세웠다.

이에 대해 이상화는 “바뀐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알지 못했다. 바뀐 규정을 알았더라도 쉬고 싶어 전국 스피드 스프린트 선수권에는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깨끗이 승복했다.

물론 그는 그간의 무릎통증과 피로누적, 5차 대회를 건너뛸 경우 2달여간의 공백기 등을 고려해 연맹 측에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같은 결과는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이상화의 잘못이 크다. 지난달 펼쳐진 전국 스피드 스프린드 선수권 대회는 지난 시즌과 달리 월드컵 5차 대회, 2016 ISU 스프린트 선수권 출전권이 걸려 있었다. 이에 대해 이상화는 국가대표 자격이 1년간 유지되던 지난 시즌을 생각해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아 졸지에 두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다만 빙상연맹의 태도도 논란은 남아있다. 연맹 측은 지난해 9월 홈페이지를 통해 이 같은 변경된 규정을 공지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소속팀 없이 캐나다에서 훈련하던 이상화와 그의 에이전트사는 바뀐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던 것.

이에 대해 연맹은 충분히 공지했다는 입장만 내세우며 원칙만을 고수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더욱이 이상화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확실한 메달권 진입이 가능한 선수라는 점에서 공백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타격에 대해 연맹 측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연맹만 위한 새 규정
곳곳에 마찰

이 같은 연맹의 이상한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바뀐 규정을 놓고 곳곳에서 논란과 마찰을 빚고 있어 누구를 위한 연맹이냐는 핀잔을 듣고 있다.

이미 연맹은 지난해 말 바뀐 규정 탓에 홍역을 치렀다. 한국 여자 빙속 장거리 기대주인 장수지(18·유봉여고 졸업 예정)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됐다.

장수지는 지난해 12월 22~23일 열린 제 70회 종합선수권대회 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총점 178.645점으로 종합 3위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는 여자 빙속 장거리 국가대표 5명을 선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장수지는 종합 3위라는 성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에서 탈락했다. 다름 아닌 연맹이 정한 두 종목 이상 ISU의 기준 기록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ISU의 현행 규정은 한 종목만 기준 기록을 통과해도 월드컵 대회에 출전할 수 있고 통과한 종목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도 출전할 수 있다고 명시하면서 국내 규정이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이에 대해 연맹 관계자는 “이전까지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 선수들 모두 두 종목 이상 기준 기록을 통과했다. 올해만 이런 문제가 불거졌는데 공정하게 심사했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지에 대한 판단은 의혹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자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A 선수가 한 종목(5000m)만 ISU 기준 기록을 통과하고도 지난해 노르웨이 하마르 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5차 대회에 출전하면서 연맹이 말하는 형평성이 무너졌다.

이에 장수지 부모는 지난 5일 문화체육관광부에 공식 질의했고 스포츠 비리 신고센터 조사관이 현재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렸다.

갈길 잃은 유망주
대책은 뒷전

▲ 유영 선수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포스트 연아로 떠오른 피겨스케이팅의 유영(12·문원초)이 바뀐 규정으로 인해 어이없이 국가대표 태극 마크를 반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영은 지난 10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끝난 종합선수권 여자 싱글에서 합계 183.75점을 기록해 최다빈(177.29점), 박소연(161.07점) 등 고등학생 선배들을 누르고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특히 그는 지난해 대표선발전에서 7위에 오르며 스포츠 전 종목을 통틀어 가장 어린 만 10세 7개월 나이에 국가대표가 되는 등 기대주로 주목받아왔다. 더욱이 이날 시상자로 나선 ‘피겨여왕’ 김연아로부터 축하의 악수를 받는 등 차세대 김연아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우승의 기쁨도 잠시 유영은 올해부터 바뀐 대표선발 규정인 ‘2003년 7월 1일 이전에 태어난 선수’로 인해 종합선수권 우승도 무색하게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않았다.

빙상연맹은 “어린 선수들의 지나친 경쟁과 부상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제 13세가 되지 않으면 각종 주니어 대회에 출전할 수 없으니 차라리 대회에 나갈 수 있는 13세 이상의 선수를 선발하겠다는 의도로 규정을 바꿔버린 것이다.

문제는 나이규정으로 탈락해 그간 누려온 국가대표 혜택을 모두 내려놓으면서 당장 연습할 훈련장을 찾는 것부터 난항에 빠졌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사용하는 태릉선수촌 빙상장은 대표선수들만 사용할 수 있어 훈련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 빙상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 훈련 스케쥴을 잡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영 선수의 어머니는 최근 한 매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앞으로 어디에서 훈련해야 할지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며 “다른 빙상장은 일반 이용객이 너무 많아 점프를 제대로 할 수 없고 충돌 위험도 높아 스피드도 낼 수 없다. 태릉선수촌 의과학팀의 전문적인 치료도 받기 어렵게 됐다”고 난처한 입장을 전했다.

이에 유영의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그제서야 빙상연맹은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연맹은 지난 14일 “전날 경기위원회에서 나이 제한 때문에 국가대표에서 제외된 유영 등의 지원책을 검토 중”이라며 피겨 유망주 육성 지원금 지급과 태릉선수촌 대관 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는 지원책에 불과할 뿐 유영이 당장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유망주 육성을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더욱이 이번 종합선수권 대회 여자 싱글에서 1~5위에 오른 선수 가운데 초등학생이 무려 3명이나 된다는 점과 피겨 강국인 러시아의 경우 10~11세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유망주들을 육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 평창올림픽을 앞두고서라도 체계적인 유망주 집중 육성에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반면 연맹 내부에서는 새 규정 적용이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유영에게만 특혜를 줄 경우 형평성 논란에 빠지게 된다며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은 것으로 전해져 연맹 측이 언급한 지원책 역시 언제 실현될지 알 수 없다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잇단 악재에
피해자는 선수들 뿐

이처럼 연맹이 새로 바꾼 국내 규정 적용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피해 선수들 역시 늘어나면서 동계체육을 책임지고 있는 빙상연맹의 위상 역시 다시 추락하고 있다.

앞서 빙상연맹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통해 금메달 3개를 목에 걸며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한 쇼트트랙 안현수 선수의 모습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 안현수 선수
안현수 선수는 러시아로 귀화하기까지 파벌 논란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국가대표 시절에도 위상에 걸맞지 않은 대우와 2000년대 후반 소속팀마저 해체되는 위기에 몰리며 결국 러시아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안현수의 경우 연맹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고 해도 연맹이 선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점은 명확하다. 또 지금도 상당수 재능을 타고난 유망주들이 타국에서 자비를 털어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허울 속에 실질적 지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체육계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민낯이다.

또 유망주를 길러내고 최고의 성적을 통해 국위선양에 앞장서야 하는 연맹이 자신들의 규정으로 인해 유망주를 외면하고 응급처방에만 머무르고 있는 대응방법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원칙을 고수하며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주장하는 연맹이 정작 자신들이 저지른 큰 실수로 인해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혼란을 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ISU가 지난해 8월 3일 발표한 ‘통신문 1958’에 따르면 오는 3월 11일부터 네덜란드 헤이렌베이에서 열리는 월드컵 파이널 대회 각 종목별 엔트리(정원) 규정에서 남녀 500m부터 5000m까지 개인 종목의 경우 각 종목당 월드컵 랭킹 상위 12명만 출전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로부터 한 달 뒤인 지난해 9월 14일 빙상연맹은 홈페이지를 통해 ‘월드컵 파이널대회를 각 종목 월드컵 랭킹 20위 이내 선수를 파견한다’고 공지했다.

결국 연맹 측은 ISU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지도자와 선수들에 잘못 알린 셈이 됐다. 문제는 빙상연맹이 이 같은 실수를 발견하기까지 무려 2개월 넘게 소요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실제 바뀐 내용을 홈페이지에 다시 공지한 것은 지난해 12월 10일로 ISU 통신문 1958을 발표한지 무려 4개월이나 지난 후였다. 이는 이미 월드컵 3차 대회가 끝난 뒤라 선수, 지도자들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선수들에게는 원칙을 고집하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푸는 모양새를 취해 누구를 위한 연맹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게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평창동계올림픽이 2년여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동계종목의 활성화와 국민적 관심을 위해 연맹 스스로의 쇄신과 환골탈태를 통한 체질적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todida@ilyoseoul.co.kr

<사진=뉴시스>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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