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비 깎아줄게, 사귀자” “항문이 예쁜 경우도 있잖아요”
2015년 7월 23일 오후 수술 상담을 위해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를 찾은 22살 여성 장모씨. 병원장인 64살 양모씨에게 성형 수술 상담을 받던 중 불쾌한 일을 겪었다.
양 씨가 “수술비가 1500만 원인데 (성형외과 광고용) 초상권에 동의하고 600만 원으로 해주면 너는 나한테 뭘 해줄 거냐?”며 갑자기 장 씨의 왼쪽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두 번 탁탁 때렸다.
양 씨는 재차 “수술비를 깎아줄 테니 밖에서 다섯 번만 만나자”고 수술비 할인을 미끼로 교제를 요구하며 장 씨의 무릎 윗부분을 은근슬쩍 쓰다듬기도 했다.
모욕감에 화가 난 장 씨의 고소로 검찰에 불려나온 양 씨는 “일부 신체 접촉이 있었지만, 성적인 의도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양 씨에게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하고 정식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김덕길 부장검사)는 양 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지난 11일 불구속 기소했다.
상담女에게 성적 수치심 줘
양 씨가 성범죄를 저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유사한 범행을 저질러 처벌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양 씨는 2006년 한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여성 출연자 2명을 자신의 병원에서 성추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양 씨는 2006년 2월 한 케이블 방송에서 제작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성형수술 담당 의사로 선정됐다.
이 프로그램은 각종 수술과 시술을 통해 출연자의 외모가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제작됐다.
한 달 뒤 양 씨는 프로그램 출연자 2명을 같은 날 차례로 성추행했다. 양 씨는 코와 이마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며 찾아온 A씨에게 “가슴은 어떠냐”고 물었다. A씨가 가슴은 수술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양 씨는 “그래도 한번 봐야겠으니 웃옷을 올려보라”고 해 A씨의 가슴을 수차례 만졌다. 또한 A씨의 치마를 강제로 걷어 올리게 해 역시 수차례 만졌다.
양 씨는 코와 광대뼈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며 찾아온 B씨에게도 똑같은 수법을 썼다. 그는 B씨에게 “웃옷을 벗어봐라, 티셔츠를 올려봐라”면서 속옷을 강제로 걷어올린 후 B씨를 추행했다. 이어 “바지를 내려 보라”고 한 뒤 B씨를 또 추행했다.
양 씨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2007년 5월 약식기소돼 벌금 700만 원형이 확정됐다. A씨와 B씨는 양 씨와 케이블방송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함에 따라 2008년 1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김수천 부장판사)는 양 씨에게 A씨와 B씨에 대해 각각 1133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한편 ‘안면 윤곽 수술’ 전문가로 강남에서만 20년 넘게 성형외과를 운영해온 양 씨는 TV프로그램에 수차례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유명인사로서 성형 관련 칼럼과 책 등도 집필한 바 있다. 병원은 주차 대행 직원까지 따로 둘 정도로 손님이 몰리는 곳이며 국내 1세대 성형외과 전문의인 양 씨의 집안은 3대에 걸쳐 의사를 하고 있다.
의사 상습 성추행 은폐
연간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찾는 ‘H재단’의 강남 대형 건강검진센터 의사가 ‘수면 내시경’ 중인 검진자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간호사들에 의해 폭로됐다.
지난 13일 JTBC ‘뉴스룸’은 연간 수십만 명이 검진을 받고 가는 대형 건강검진센터 강남센터장 양모씨가 수면 마취 중인 여성 검진자를 상습 성추행한다는 내용을 담은 내부 문건에 대해 보도했다.
해당 문건은 지난 2013년 10월에 센터 간호사들이 작성했으며 양 씨의 성추행 방법, 일시, 장소 등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양 씨는 2013년 11월에도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다.
문건에 따르면 내시경 전문의인 양 씨가 위내시경이 아닌 하반신 노출이 필요한 대장내시경만 고집해왔고 수면 마취 중인 검진자에게 필요 이상의 마취제를 더 놓은 일도 있었다.
여성의 주요 부위에 대한 성희롱뿐 아니라 가슴에 젤을 바르고 손으로 만지거나 항문진찰을 한다며 손가락을 삽입하는 등의 성추행도 서슴지 않았다.
“뭘 쳐먹었길래 이렇게 살이 쪘냐”, “항문이 예쁘다” 등의 음란한 발언도 쉽게 했다.
수면내시경이 끝난 뒤에도 진찰을 빌미로 성추행이 이뤄진 것으로 나온다.
이런 내용의 문건이 2013년 ‘근로자 고충처리 현황’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됐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재단은 “보고 받은 일이 없다”고 일축했다.
간호사들은 문서뿐만 아니라 구두로도 센터장의 성추행 의혹을 수차례 보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진센터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반복적인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다른 의사)이 당장 없었고 성수기 때는 하루에 150~200명씩 하니깐 그냥 둔 거다”고 해명했다.
양 씨는 간호사들로부터 의혹이 제기돼 센터장을 그만뒀지만 버젓이 지방 병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진료를 이어갔다.
취재진이 확인한 양 씨 이력서에는 검진센터에서 일한 이력이 아예 빠져 있었다.
검진센터 관계자는 “본인이 안 밝히면 알 수가 없는 상황인 데다 의사들의 범죄를 견제할 장치도 전무한 상태다”고 밝혔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영국처럼 최소한 진료실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도록 CCTV나 블랙박스를 설치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의사들의 범행은 간호사들조차 고발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간호사들은 절대복종하지 않으려면 알아서 나가야 한다. (이 때문에) 알아도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보고를 해도 의료재단이나 병원장이 이를 은폐하는 경우가 많아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사무관은 “그러한 부분에 대한 법 규정이 없어 우리가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며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은 물론, 이를 은폐하는 병원에 대한 처벌 규정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면 의사자격을 박탈하는 등 아주 엄하게 처벌해서 다시는 환자에 대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 병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양 씨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대장내시경 진료를 하면서 환자를 성추행했고 언론에 의해 그 사실이 밝혀지자 곧바로 해당병원으로부터 해고됐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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