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철밥통 회장님들의 이상한 판결
대한민국 철밥통 회장님들의 이상한 판결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6-01-18 10:15
  • 승인 2016.01.18 10:15
  • 호수 1133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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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원·도성환·홍원식 등 모두 무죄, 늘어가는 건 국민들의 한숨뿐…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천태만상의 비리와 잘못을 저지르고 경제사범으로 기소된 이들이 모두 무죄로 풀려나 사회적인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앞서 자원 개발 비리로 구속 기소됐던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과 70억 원대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홈플러스 도성환 전 사장 및 관계자 등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미 세간에서는 이들을 지탄하고,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일요서울]은 연초부터 일어나고 있는 이른 바 경제사범들의 무죄 대란의 막후를 들여다봤다.

배임·횡령·도박 등 경제인 기소만 있고 유죄 없어
지난해부터 계속된 무죄의 악몽…비판 목소리 고조

이러한 논란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시작됐다. 앞서 강 전 사장은 지난 2009년 10월 캐나다 하베스트를 4조6000억 원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NARL을 1조3700억 원에 인수해 5500여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김동아 부장판사)는 지난 8일 검찰이 징역 7년을 구형한 강영원 전 사장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하베스트 인수가 업무위배에 해당하지 않고, 이로 인해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정유부문 자회사 노스아틀랜틱리파이닝(NARL)을 함께 부실 인수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피고인은 인수 과정을 직접 관여하지 않고 직원들의 가치평가를 받아들였으며 자문사인 메릴린치가 NARL의 가치를 과대평가했다고 의심할 만한 사정도 없다”고 판시했다. 또 회사가 입은 손해 역시 대부분 인수 후 사후적인 사정들이 주된 원인이었다고 해석했다.

당연히 이와 관련된 비판은 줄줄이 이어졌다. 특히 검찰 내 2인자로 불리는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법원의 무죄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는 이례적인 사건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영렬 지검장은 강영원 전 사장이 풀려난지 사흘 뒤인 지난 11일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강 전 사장은 나랏돈 5500억 원의 손실을 입혔다. (그런데도 법원은) 무리한 기소이고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중으로 날아간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은 누가 책임지느냐. 단호하게 항소해 판결의 부당성을 다툴 것”이라며 법원을 강하게 비난했다. 결국 국고 5500억 원을 날려도 무죄라면, 무엇이 유죄냐는 강한 어조였다.

강영원 전 사장이 무죄판결을 받았던 지난 8일 경품 행사를 통해 수집한 고객정보 2400여만 건을 팔아 230억 원 이상의 이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던 홈플러스 전직 경영진과 법인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도 논란의 불씨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 됐다. 

앞서 홈플러스가 보험사에 제공한다며 수집한 ‘생년월일’, ‘자녀 수’ 등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건당 1980원에 판매했다. 홈플러스를 중간 연결고리로 해서 고객들이 자신의 개인정보로 경품권을 사들였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사안이다.

고객 동의 여부와 정보수집의 적법성 여부 등이 법원의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지만 복권법이나 보험업법 등 다른 법률의 위반 가능성을 재판부가 간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파다했다. 

결론적으로 “법원 판단을 달리 해석하면 대형마트가 경품 응모를 대가로 보험사 제공을 위한 개인정보를 수집해도 된다는 것이냐”는 지적이다. 현행 복권 및 복권기금법은 복권을 ‘다수로부터 금전을 모아 추첨 방법으로 결정된 당첨자에게 당첨금을 지급하고자 발행한 표’라고 규정한다.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제공한 것도 보험업법과 상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다. 보험업법은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자’를 보험중개인으로 간주해 금융위원회에 반드시 등록하도록 하고 있는데 검찰 역시 항소심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이에 따른 시민 단체 등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참여연대 등 무려 13개 시민단체는 13일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에 1㎜ 크기 글씨로 쓰인 ‘판사님은 이 글씨가 정말 보이십니까?’라는 제목의 항의 서한을 제출했다. 재판부가 “홈플러스가 보험사에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응모권에 표기했으며, (공지의 글자 크기인) 1㎜ 글씨는 사람이 읽을 수 없는 정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힌 데 대한 항의다.

이들은 또 이번 판결이 소비자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개인정보보호법 입법취지에 어긋나는 ‘재벌·대기업 봐주기 판결’이라고 주장하면서 검찰이 국민의 편에 서서 홈플러스에 책임을 물어 달라고 요구했다.

수년째 되풀이

강영원 전 사장과 도성환 전 사장 등의 무죄 판결에 이어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1월의 무죄 판결 바통을 이어 받았다. 그는 항소심에서 70억 원대 세금을 탈루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 13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조세,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홍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0억 원 등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1억 원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던 증여세 20억원, 양도소득세 6억5000만 원을 포탈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41억여 원 상당의 상속세를 포탈한 혐의, 6억 원 상당의 증여세 포탈 혐의에 대해서도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국민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면서 한숨을 쉬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기업인들의 무죄 판결을 지켜본 한 시민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제 2의, 제 3의 지강헌 사건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한편 올해 연초부터 일어나고 있는 경제인 무죄 판결 대란은 지난해부터 줄곧 이어져 왔던 터라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판결에는 사업을 망하게 한 횡령과 배임, 해외도박 등 어느 혐의 하나 인정되지 않는 모습만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대장균군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시리얼 제품을 재가공해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동서식품과 131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석채 전 KT 회장, 해외도박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이 무죄 파문을 낳은 바 있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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