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의 손학규 벼랑끝 문재인 노린다
산중의 손학규 벼랑끝 문재인 노린다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6-01-18 09:57
  • 승인 2016.01.18 09:57
  • 호수 1133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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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총알 한 발 안철수와 함께 쏘나
▲ photo@ilyoseoul.co.kr

“산중의 손학규가 벼랑 끝 문재인을 노린다”
탈당 고민의원에 훈수…이번에 실패 땐 정치생명 끝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4·13 총선을 앞두고 둘로 쪼개진 야권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치열한 인재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손학규 전 대표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더민주의 문재인 대표는 김종인 전 의원을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기 직전에 최고위원들과 손 전 대표를 단독 선대위원장으로 끌어들이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안철수 의원이 창당한 국민의당에선 손 전 대표를 신당의 간판으로 내세우려 한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상태인 손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말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매일같이 빈소를 지키며 존재감을 과시한 뒤 다시 전남 강진의 야산 토담집으로 들어간 상태다. 그런 그가 야권의 두 축으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고 있는 시점에 잠시 하산(下山)해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13일 오후 3시 순천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의 삶과 그림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했다. 무위당은 1968년 농촌과 광산촌의 발전을 위해 강원 일대에서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손 전 대표는 1975년 무렵 (학생·노동운동으로) 2년 정도 도피생활을 할 때 원주에서 무위당 선생의 보호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행사장에서 기자들이 ‘요즘 야권 정치상황이 혼잡한데…’라며 정치복귀 여부를 물으려고 하자 중간에 말을 자르며 손사래를 친 뒤 차량에 올라 다시 강진으로 갔다.

순천 전시회 모습 드러내

4·13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분열된 지금 ‘손학규의 생각’은 무엇일까. 취재 결과 문 대표의 러브콜에 대해선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친노·운동권과 DJ(김대중 전 대통령)·호남 세력이 완전히 갈라지는 국면에서 친노·운동권의 손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실제로 문 대표가 이끄는 더민주에서 그의 입지는 제한적이다. 손 전 대표가 다시 정치를 한다면 그 목표는 ‘대권’인데, 친노가 장악한 더민주에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문 대표가 버티고 있는 까닭이다.

손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인 김부겸 전 의원은 필자에게 “손 전 대표를 다시 불쏘시개로 쓰려 해선 안된다. 만일 정계에 복귀시키려면 ‘에이스’로 모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문 대표와 안 의원이 갈라서기 이전이라면 손 전 대표가 야당정치의 통합을 위해 뭔가 역할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선 복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문 대표가)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임시방편 책으로 ‘손학규 영입’을 얘기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손 전 대표가 4·13 총선 이전에 야권의 공멸을 막기 위해 하산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특히 진보학자 출신이면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몸담기도 했던 그의 이념적 신축성으로 볼 때 ‘중도개혁’을 기치로 내세운 안 의원과 행보를 같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안철수 의원은 지금 신당의 중심축이지만 김한길 의원 등 노련한 정치인들이 포진하기 시작한 신당에서 뒷전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손학규 전 대표가 대타로 나서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굳이 안철수의 대타는 아니더라도 손 전 대표가 국민의당에 조기 참여해 총선을 앞두고 발생할 수 있는 사정변경에 대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안철수 당’에서 안 의원이 공천을 둘러싼 내부 갈등 끝에 2선으로 물러날 경우 국민의당을 접수해 ‘손학규 당’으로 변신시키는 시나리오다.

현재 안 의원은 자신의 경제 과외교수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내세워 ‘손학규 영입’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장 교수 역시 문 대표와 안 의원 모두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한때 국민의당으로 간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현실정치는 안 한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그가 자신은 정치를 하지 않지만 40년 지기인 손 전 대표에게 안철수 신당 행(行)을 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장 교수는 최근 강진에 내려가 손 지사를 만나 “이제 그만 하산하고 정치를 재개할 때”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자리에서 현재의 야권 상황을 설명하며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도 한다. 손 전 대표는 즉답을 하지 않았지만 장 교수의 말을 경청했다고 한다.

장 교수의 ‘마지막 기회’ 발언은 의미가 깊다. 손 전 대표는 그동안 정치적 고비마다 당을 옮기거나 춘천에서 칩거하며 닭을 치는 등 ‘야인 생활’을 되풀이했다. 그러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 출마했다가 패배한 이후엔 정계은퇴까지 선언했다. 따라서 손 전 대표는 자신이 품었던 대권 꿈을 이루기 위해선 ‘정계은퇴 선언 번복’을 해야 하고, 그 건 정치적으로 마지막 기회다.

이낙연 지사가 직접 설득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런 상황을 두고 “손학규에게 단 한 발의 총알만 남아 있다”고 했다. 현재로선 여러 정황을 볼 때 마지막 한 발을 안철수 신당의 안착을 위해 쏠 가능성이 높다. 그 길이 곧 손학규의 대권 가도를 여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까닭이다. 일각에선 4·13 총선 결과 야권이 참패하면 그에게 길이 열리는 만큼 그 때까지 기다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현 야권 상황을 보면 오히려 지금이 손학규의 존재감을 과시할 기회일 수도 있다. 만일 선거를 앞두고 야권이 다시 통합하거나 선거연대를 한 뒤 승리를 거둔다면 손 전 대표가 파고들 여지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시절 손학규계로 분류됐던 이낙연 전남지사도 국민의당 합류를 적극 건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더민주를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참여한 문병호 의원은 “이낙연 지사를 통해 손 전 대표의 합류를 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최근 호남지역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손 전 대표와 단둘이 목포의 한 식당에서 ‘막걸리 회동’을 했다. 손 전 대표가 정치적 언급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언제 조용히 한번 봅시다’라는, 나름 의미있게 들리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손 전 대표가 안철수 신당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징후는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손 전 대표가 정계를 떠난 뒤 손학규계의 좌장 역할을 했던 신학용 의원이 14일 더민주를 탈당하고 국민의당 합류를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신 의원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임에도 안철수 신당에 힘을 실어줬다. 이를 두고, ‘손심(孫心·손학규의 의중)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총선에 나갈 것도 아니면서 굳이 더민주를 탈당하고 국민의당으로 간 배경을 곰곰이 짚어보면 그런 분석도 무리가 아니다. 선도적으로 안철수 캠프에 들어가 분위기를 탐색하며 손 전 대표가 들어올 터를 닦아놓는 역할을 자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손 전 대표는 강진 토담집으로 찾아오는 측근 의원들이 탈당 여부를 고민하면 “본인의 판단을 믿으라”고 조언을 한다. 더민주 이개호 의원은 최근 “손 전 대표를 만나 ‘지역 분위기가 아주 강경하게 흘러 버티기 너무 힘들다. 탈당을 심각하게 고민 중인데 조언해달라’고 했더니 ‘본인의 판단이 제일 중요하고 옳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본인이 직접 판단하라’고 했다”고 밝혔다고 한 언론이 보도했다.

원론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해석하기엔 따라선 탈당 후 안철수 신당 합류를 권유한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손 전 대표는 정계은퇴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복귀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 때 마다 “정치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 않았다. 그저 웃음으로 넘겼다. 그러자 야당가에선 “산중의 손학규가 벼랑 끝 문재인을 노린다”는 말이 나왔다. 문 대표가 위기에 빠질수록 손 전 대표가 하산하는 시점이 앞당겨질 것이란 예측이었다. 지금이 딱 적기일 수 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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