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지난 6일 검찰은 지난해 7월부터 5개월간 이어온 KT&G비리 의혹 수사를 사실상 일단락했다. 검찰은 그동안 KT&G 전·현직 임직원과 협력업체 대표 등 18명을 재판에 넘겼다. 전임 CEO인 민영진 사장은 구속기소했다.
새로 부임한 백복인 사장은 지난해 10월 취임하면서 “과거 부조리와 적폐 근절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종합적으로 마련하겠다”며 과거씻기에 앞장서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KT&G의 신뢰 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에 뇌물로 사용된 시계가 북한 김정은의 애용품으로 알려지면서 또 한번 이목을 끌었다.
인사청탁 뒷돈·축의금·명품시계…민 전 사장 구속기소
백복인 현 사장 혐의는 확인 못해…‘경영 혁신’ 잰걸음
이번 수사는 검찰이 ‘민 전 사장이 명품 시계를 노조위원장 J씨에게 선물했다’는 첩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J씨는 2003년부터 KT&G 노조위원장을 내리 4번이나 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검찰은 이 첩보를 확인하기 위해 J씨 집을 압수수색해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이 시계는 민 전 사장이 2010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중동의 담배수입상이 준 것이다. 이 담배수입상은 KT&G로부터 담배를 수입하고도 물건값의 70%를 아직 지불하지 않은 상태다. 검찰은 이 같은 미수금 증가가 파텍 필립 선물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민 전 사장과 동석했던 임원 5명은 롤렉스를 하나씩 받았다.
검찰은 임직원들이 받은 롤렉스 시계가 대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직접적인 청탁은 없었지만 청탁이 이뤄진 자리에 민 전 사장이 함께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민 전 사장이 청탁을 받을 때 함께 있었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청탁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숙제로 지적된
‘투명·윤리 경영’
민 전 사장이 중동의 담배수입상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 ‘파텍 필립’에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명 ‘시계의 제왕’이라 일컬어지는 파텍 필립은 지난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동당 기념행사에서 착용한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시계는 1839년 스위스에서 탄생해 176년의 역사를 가진 최고급 명품시계다.
매년 4만5000여 점만 제조되는 희소성 때문에 파텍 필립의 가격은 높게 책정돼 있다. 특히 부품과 기능에 따라 1000만 원부터 100억 원을 호가한다.
최고가의 상위 모델을 사기 위해선 스위스 제네바 본사의 심사를 거쳐야 할 정도로 구매 과정이 까다롭다.
파텍 필립은 왕족, 귀족뿐만 아니라 정치가, 예술가, 과학자 등으로부터 애용돼 지위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파텍 필립을 착용했던 유명인으로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차이콥스키, 리하르트 바그너, 록펠러, 아인슈타인 등이 있다.
한편 검찰은 민 전 사장과 함께 각종 비리 연루 의혹이 제기된 백복인 현 사장은 이렇다 할 범죄 단서를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백 사장의 소환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백복인 사장은 지난해 10월 취임사를 통해 지속성장을 향한 ‘새로운 KT&G’를 만들기 위해 신 경영을 펼칠 것이라고 선언하고 ‘투명·윤리’, ‘소통·공감’, ‘자율·성과’ 등을 3대 경영 어젠다로 제시했다.
그는 “투명·윤리 경영은 회사 생존과 지속 성장에 필수적이라며 윤리경영 담당 조직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한편 과거 부조리와 적폐 근절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종합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소통·공감 경영으로 화합을 실현해갈 것”이라며 “KT&G 기업문화 재구축을 위해 외부전문가와 전·현직 임직원으로 구성된 ‘상상실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KT&G의 기업이미지 회복을 위해서는 현재보다 더 많은 구슬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KT&G가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정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KT&G는 2002년 민영화 이후 기업은행(6.93%)이 최대주주였다가 국민연금이 지분을 늘려 최대주주(7.05%)가 되는 등 사장 선임에 정부의 입김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민 전 사장도 2010년과 2013년 취임 및 연임 과정에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 인사의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KT&G 수사는 KT 이석채 전 회장과 포스코 정준양 전 회장 등에 이은 이명박 정부 공기업 수사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석채 전 회장은 2013년 11월 퇴임한 뒤 100억 원대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앞서 퇴임한 정준양 전 회장은 현재 성진지오텍 고가 인수 의혹 등과 관련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