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94세 고령인 이희호 여사의 말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이 눈에 뻔히 보인다. 이 여사의 발언을 왜곡한 안철수나 김홍걸을 내세워 반박한 문재인이나 다 마찬가지다.”
최근 동교동계 출신 더불어민주당 당직자가 필자와 만나서 푸념한 말이다. 양쪽으로 쪼개진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최근 잇달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신년인사를 다녀온 뒤 이 여사의 발언을 놓고 진실공방을 벌이는 데 대한 울분이었다.
‘이희호 마케팅’을 둘러싼 논란은 이렇다. 안 의원은 지난 4일 이희호 여사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했다. 기자들을 물리치고 몇몇 측근과 함께 이 여사를 면담하고 나온 안 의원은 “새해 덕담과 함께 신당이 정권교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는 말씀도 해주셨다”고 전했다.
이후 그 자리에 배석했던 한 측근은 6일자 중앙일보를 통해 “이 여사가 안 의원에게 ‘정권교체를 꼭 하세요’라며 지지의사를 표명했다”고 주장했다.
권노갑 고문 등 동교동계의 더불어민주당 집단 탈당이 임박한 시점에서 이 보도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DJ의 정치적 동지이기도 하며 현재 동교동계의 정신적 지주인 이 여사가 야권 분열 국면에서 안철수 신당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된 까닭이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DJ의 3남으로 이 여사의 친자인 홍걸씨가 이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더민주당 김성수 대변인은 6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홍걸 씨가 오늘 아침 보도를 보고 이 여사에게 확인한 결과, 해당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홍걸씨도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오늘 자 중앙일보 8면 보도와 관련해서 어머님께서 직접 확인한 결과, 어머님은 안철수 의원의 말씀을 듣기만 하였을 뿐 다른 말씀을 하신 적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또 “사실과 다른 보도 내용에 대해 어머님께서는 어이없어 하셨다. 어머님 뜻과 전혀 다르게 보도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관련 보도를 정정해 달라고 공식 요구했다.
보도가 나오기 전날 문 대표는 홍걸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의 동교동계 집단탈당을 막아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만남이 있은 다음날 중앙일보 보도와 홍걸 씨의 반박이 잇달아 나왔다.
이를 두고 동교동계 일부에선 문 대표가 홍걸씨에게 총선 공천을 보장하는 등 모종의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교동계의 특무상사로 불리는 이훈평 전 의원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 여사는 동교동계나 김대중 평화센터를 통해 뜻을 밝혀왔는데, 홍걸 씨가 갑자기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누가 중간에 개입한 것 같다”고 의혹을 표시했다.
이희호 여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김대중 평화센터 측도 “홍걸 씨의 행동에 대해선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 대표 측은 “안철수 의원이 이 여사와 만났을 때 자기가 한 말을 마치 이 여사가 말한 것처럼 각색해 언론플레이를 한 것 같다”고 반박했다.
동교동계 당직자는 “누구 말이 맞는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여사의 발언을 놓고 정치적 마케팅을 벌이는 건 DJ에 대한 모독”이라며 “진실이 가려지면 한 쪽이 호남민심의 역풍을 단단히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갈라서면서 동교동계 내부에서도 일치된 입장정리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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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