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맹주’가 새롭게 부상한다면, 대선 판도가 바뀌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압도적인 정당 지지율과 유력 대선후보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대선 주도권 경쟁을 토대로 재보궐 선거 압승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전 서구을과 전남 신안·무안에서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는 ‘이겨봤자 본전’이지만, 패배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
대전 서구을은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한나라당 이재선 후보를 역전시킨 상태다. 신안·무안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차남 홍업씨가 무소속 이재현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질렀다. 이들은 공히 범여권의 통합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는 인사들이다.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시장과 박근혜 전대표를 동원하고도 선거에 진다면, 올해 대선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심대평 후보의 선전은 충청표심을 읽는 동시에 ‘패권’을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선거 막판까지 전력을 투구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가 가지고 있는 함수는 매우 복잡하다. 이에 따라, 4·25재보선 결과로 인해 빚어질 정국지형 변화를 예측해 봤다.
4·25재보궐 선거 결과가 가져올 정치적 파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선 전초전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가 그만큼 정치적 함수를 다양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대선정국 초반부터 사실상 ‘독점’ 형세를 유지해온 한나라당 차기주자들의 위상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역시 3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재보궐 선거다.
경기도 화성지역은 한나라당 고희선 후보가 열린우리당 박봉현 후보를 크게 따돌리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대전 서구을과 전남 신안·무안지역은 아직까지 안개 속 혼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패배를 안긴 충청과 호남에서 역시 한나라당이 밀리고 있는 양상이다.
치열한 선거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재보선이 올해 대선의 나침반이 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차기 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 전서울시장과 박근혜 전대표 진영의 손익계산이 복잡해지고 있을 터.
여기에 호남민심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김대중(DJ) 전대통령의 위상까지 심판대에 올려진 상황이다. DJ의 차남 홍업씨가 전남 신안·무안지역 재보선에 출마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치러진 재보궐 선거는 한나라당이 거의 독식하다시피했다. 박근혜 전대표의 지원유세에 힘입어 집권여당이 ‘0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안팎에서 이 전시장과 함께 박 전대표의 위력을 다시 한번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물론, 상황은 예상과 달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 전시장과 박 전대표가 지방 곳곳을 누비며 지원유세전을 하고 있지만, 충청권에서조차 한나라당 이재선 후보가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의 ‘토박이론’에 밀리고 있다.
전남 신안·무안은 차치하더라도 충청권의 중심인 대전에서 승기를 놓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 이재선 후보의 ‘스타트’는 산뜻했다. 정당 지지율에 힘입어 지난해 치러진 재보궐 선거처럼 상당히 앞서나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때는 바야흐로 대선 시즌이다. 지역 일꾼이 필요하다는 충청민심에 밀려 전세가 역전 된 것.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는 배경에는 충청권 대표주자가 필요하다는 지역 여론이 깔려 있다. 충청지역은 자민련 김종필 전총재가 2선으로 물러난 뒤, 자민련 해체 등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사실상 ‘무주공산’이 되어 버렸다.
지난해 재보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완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지역을 대변하는 중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민련의 전통을 이어받은 국민중심당은 심대평, 이인제 등을 필두로 재기를 모색해왔지만, 한나라당 일변도의 정국구도에 매몰되고 말았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또 다시 일종의 ‘신(新)지역주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여권에서 올해 대선 전략 중 하나로 2002년 대선을 모방한 측면이 없지 않기에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지역 일꾼론이 그 어느 때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예상과 달리 고전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속내는 복잡해지고 있다. 50% 안팎의 정당 지지율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전 서구을에서 패배한다면, 지역적으로 영남 색채가 강해지게 된다. 책임론이 부상할 경우, 가뜩이나 ‘줄세우기’로 내부 분위기가 흉흉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물론, 한나라당 일각에선 ‘결과적으로’ 전세가 역전될 것이라는 다소 긍정적 반응도 나온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전대표의 수행팀들이 전하는 지역 분위기는 상당히 좋다”면서 “선거 막판에 가서는 결국 당내 대선주자의 지원에 힘입어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이 전시장과 박 전대표의 ‘활약상’을 지켜봐 달라는 것이다. 반면, 이러한 기류가 차기주자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오히려, 양대 주자를 앞세우고도 대전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당의 이미지는 물론, 올해 대선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당초 박근혜 진영은 이번 재보궐 선거를 ‘반격’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을 정도로 자신감을 보였다. 박 전대표가 지난해 선거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충청지역 출신 정치권 인사들은 “‘박풍(朴風)’의 위력을 새삼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그러나 정치가 언제나 그랬듯이, 결과가 가장 중요한 잣대다. 현지 분위기와 구도를 꺾지 못하면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에게 간발의 차로 패배할 가능성이 있다. 바꿔 말하면, 박 전대표가 오히려 패배의 멍에를 짊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범여권 한 인사는 “충청권을 누가 접수하느냐에 따라 대선 정국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이것은 당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선주자들에게 당면 과제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시장도 박 전대표에게 질세라, 선거 현장을 열심히 누비고 있다. 박 전대표의 ‘막강한’ 선거지원을 염두에 두고 동일시간대를 최대한 피해가면서 말이다.
범여권은 이러한 선거 구도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듯하다.
범여권 일부 세력들이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언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심 후보 본인이 가진 통합론에 대한 생각이 어떻든 간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또, 심 후보가 충청권 대표성을 확보한 이후에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흔들겠지만, 결국 범여권의 통합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전 서구을 선거는 올해 대선정국의 최대 변수임에 틀림없다. 한나라당 패배는 곧, 범여권 통합의 지렛대가 될 공산이 크다.
우리당 탈당파인 통합신당 모임이 조만간 민주당과 합당을 계획하고 추진 중이다. 여기에 국민중심당과 열린우리당 일부 세력이 규합하면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영남 대 비영남 구도가 재연되는 셈이다.
전남 신안·무안에서 치러지는 재보선도 이러한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DJ의 차남인 홍업씨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민주당은 DJ의 입김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DJ는 이미 범여권에 ‘3단계 통합론’을 던지면서 대선에 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두 곳의 선거 결과가 결국에는 범여권 진영의 통합과 역동성을 키우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은 자명하다. 노무현 대통령 주변에서 신설되고 있는 각종 포럼 등의 조직까지 결국 하나로 집결할 수밖에 없다.
일부 정치인들은 “노무현 대통령도 지금은 지역주의를 거부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을 더 반대하고 있는 입장 아니냐”며 범여권의 통합의 불가피성을 지적하고 있다.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도 이와 관련 “여권은 한나라당과 달리, 언제든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인간적인 끈끈함을 가지고 있다”며 “이들이 각자의 입장차를 가지고 있다지만, 저변에 깔린 동지애를 바탕으로 결국 하나의 울타리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권 분열이 일단락되고 통합작업으로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재보궐 선거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나라당 차기주자들이 점령하고 있는 대선정국 ‘독점시대’가 선거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을지가 관심의 포인트다.
한편, 일각에선 이번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범여권의 통합작업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과거와 달리, 치열해진 선거전 양상은 정국 주도권을 범여권이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손’만 흔드는 손학규
한나라당을 탈당해 ‘나홀로 대선’을 치르고 있는 손학규 전경기지사의 향후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이 정국 주도권을 놓치게 될 경우, 손 전지사의 여권 합류는 정국을 뒤집는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미 4·25 재보궐 선거를 기점으로 범여권이 주도권을 되찾아 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6~7월까지 전열을 정비하지 않으면, 일정상 올해 대선을 치르기가 어렵기 때문에 5월부터는 범여권 진영이 진통을 겪으면서도 통합을 하는 과정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일부 한나라당 인사들은 이 시기에 손 전지사가 자신의 행보를 결정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전지사가 통합신당으로 ‘말을 갈아 탈’ 경우 한나라당에 보이지 않는 타격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이 지난 2002년에 이어 또 한 차례 역동적인 ‘축제’에 손 전지사를 영입, ‘스펙트럼의 폭’을 넓힌다는 계산이다. 반한나라당 정서가 아닌, 통합의 가치를 주창할 수 있다는 것.
반면, 손 전지사가 범여권 경선구도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이도 그리 많지 않다. 치열한 정치투쟁을 거쳐 자신의 기반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범여권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움직이는 예비주자들을 넘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래저래 손학규의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현 suv1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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